ECFA 체결해 무역장벽 철폐…한국 등 對 중국 비즈니스 설 자리 좁아질까

중국과 대만이 29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서명,상품무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 철폐에 나섰다.

서비스산업 개방과 함께 투자보장,지식재산권 보호를 포함한 광범위한 무역협정을 체결해 ‘차이완(차이나+타이완)’ 단일 경제권 형성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평이다.

양안(兩岸) ECFA 체결로 폭스바겐이 대만에 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등 대만이 중국 비즈니스의 새로운 허브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양측은 이날 중국 충칭 소피텔호텔에서 양안 ECFA에 최종 서명했다.

폐지 또는 감면을 거쳐 2년 내에 관세를 없애는 ‘조기 수확 대상 상품’에 대만이 539개 품목을,중국은 267개 품목을 포함시켰다.

대만의 조기 수확 품목 중 108개는 ECFA 발효 직후부터 무관세 혜택을 받고 나머지는 2년 동안 최대 3단계를 거쳐 관세가 없어진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중국이 은행 증권 연구·개발 등 11개 업종을,대만은 영화 은행 등 9개 업종을 우선 개방한다.

양측은 올해 말 추가 협상을 개최,투자자 보호 등에 대한 구체안을 마련하고 무관세 대상 품목을 확대할 예정이다.

중국과 대만의 ECFA 체결은 ‘제3차 국공합작’으로 불릴 만큼 각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과 장제스의 국민당은 외세 침략과 군벌의 발호로 얼룩졌던 중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대립과 협력의 줄타기를 반복했다.

1차 국공합작은 1924년 제국주의와 군벌 타도를 내세우며 시작됐다.

하지만 공산당 세력이 커지자 이를 두려워한 장제스가 1927년 상하이에서 반공 우파 쿠데타를 감행,국공합작은 결렬됐다.

10년간의 국공 내전을 종식시키고 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낸 것은 일본의 중국 침략이었다.

1949년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으로 국민당은 대만으로 물러났고 양안을 두고 국공은 다시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후 양안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굴곡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 중국 샤먼이다.

남북한의 군사분계선처럼 지금도 샤먼과 대만의 진먼다오에는 미사일과 해안포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지금 샤먼은 양안경제특구의 금융 허브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대만은 1981년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특별자치구가 돼 달라는 중국의 제안을 거부했지만 1987년에는 본토 출신자 200만명의 비공식 중국 방문을 용인하기도 했다.

양안 간 해빙 조짐이 보이던 때였다.

2000년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민진당이 집권하면서 양안관계는 다시 얼어붙었다.

2008년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취임하면서 양안에는 3차 국공합작을 예고하는 조짐들이 이어졌다.

그해 59년 만에 대만과 중국 간 항공기 직항로가 개설된 게 대표적이다.

양안 ECFA 체결은 또 세계 경제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안이 ECFA를 맺으면서 중국과 대만 기업의 상호 투자 확대는 물론 ‘밴드왜건 효과(편승효과)’를 노린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 비즈니스 전략을 재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한 부품을 활용해 대만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거나,대만을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기업들이 속출하면서 대만이 중국 비즈니스의 관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 대만 푸방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잇따라 중국에 영업허가를 신청했으며 융칭 등 부동산개발 회사들도 중국 진출을 본격화할 태세다.

대만 전자부품 및 석유화학 업체들도 중국의 수요 폭증에 대비,증산 계획을 세우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만 국립 정즈대학의 인나이핑 교수는 “ECFA는 대만이 해외 투자 중심지로 부상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지식재산권 보호가 잘 돼 있고 전자업 등의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돼 있어 대만을 통한 중국 진출이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도 업종별로 직·간접적인 파급효과가 미칠 전망이다.

우선 중국 수출 비중이 큰 석유화학 및 기계 분야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반도체 및 액정표시장치(LCD) 등의 전자·전기 분야와 자동차산업은 제한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석유화학 제품은 관세율이 평균 5~6%인데 대만산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내 업체가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호남석유화학 관계자는 “중국과 아세안이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데다 대만과도 관세가 없어지면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 석유화학 업체들만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감을 표시했다.

공작기계,승강기 등 기계류도 마찬가지다.

대만에서 생산된 기계 제품 중 27%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어 무관세 혜택을 등에 업은 대만 회사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업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공산이 커졌다.

이 밖에 면사 합성섬유 부직포 수건 신발 등을 생산하는 방직산업 분야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이미 FTA를 맺은 아세안 국가들과 대만 업체들이 동등한 가격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업체의 국제 경쟁력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중국 시장에서 대만과 한국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반도체와 LCD 분야에선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반도체는 오래전부터 무관세가 적용돼온 시장인 데다 LCD는 이번에 조기수확 품목에서 빠졌다는 이유에서다.

철강분야 역시 무관세 시장이어서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업계에 미치는 영향 역시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에 조선업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및 관련 부품업종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대만에선 중국과의 ECFA 체결 직후부터 ‘한국 타도’를 외치고 있다.

후중잉 대만경제회 부위원장은 이날 연합보와의 인터뷰에서 “ECFA 체결로 대만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ECFA 체결로 대만은 중국 시장에서 D램과 LCD 패널 등 주력 분야에서 한국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다”며 “앞으로 한국은 대만을 ‘질투’하게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류이주 대만 경제건설발전위원회 주임(장관)도 “한국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중국과 FTA 협상을 시작하는 만큼 대만 기업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고 평가했다.

류 위원장은 “한국은 아직 법인세가 22%로 17%인 대만보다 높다”며 “대만은 또 한국 기업보다 중국 시장을 더 잘 이해하는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