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올려 노동자 파업에 대응···세계 공장서‘세계 소비시장’으로 전환
[Global Issue] 中, 근로자 임금 5년내 2배로···값싼 노동력 ‘이젠 옛말’
중국 정부가 2015년까지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금의 2배 수준으로 올리기로 했다.

최근 노동자들의 돌발 파업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국내 시장을 키우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파업도 계속 확산되고 있어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9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12차 5개년 계획에서 근로자의 임금을 2배로 인상하는 '소득배증 계획'을 검토 중이다.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 산하 노동임금연구소의 쑤하이난 소장은 "평균 임금을 매년 15% 이상 올릴 경우 5년이면 2배가 된다"며 "정부가 올 가을에 확정할 제12차 5개년 계획에 임금 상승 목표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저임금 노동=경쟁력' 공식 깨져

중국 정부의 이러한 방침은 최근 잇단 대규모 연쇄 파업의 영향으로 노동 정책이 빠르게 전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포산 지역의 혼다자동차 부품 공장 쟁의와 선전 폭스콘 공장의 연쇄 자살 사건 이후 노동자들의 파업은 쿤산 둥관 선전 등 남부 산업 도시벨트에서 도미노처럼 확산되고 있다.

장쑤성 쿤산에 있는 대만계 회사 KOK인터내셔널에서 노동자 2000여명이 8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에 나섰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둥관의 신발공장에서,선전의 대만계 메리전자에서 각각 파업이 일어났고, 후이저우의 야청전자 노동자들은 임금인상 시위를 벌였다.

혼다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포산펑푸자동차부품의 근로자 250여명도 지난 7일부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사흘째 파업을 벌이고 있다.

노동자들의 월급을 최대 120% 올리기로 한 대만계 폭스콘은 일부 생산라인을 철수,본국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두고 2013년 임기 만료를 앞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내세우고 있는 '조화사회' 목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사회 안정과 임금 상승을 통한 소비 진작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각 지방 정부에 최저 임금을 인상하라고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발전 공식은 '저임금 노동력=경쟁력 확보'였다.

그러나 임금상승률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따라 가지 못하면서 빈부격차가 확대돼 왔고 이는 최근의 도미노 파업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평복 KOTRA 칭다오KBC 노무관리 고문은 "저임금에 의존한 위탁생산 업체를 중심으로 임금 상승속도가 갈수록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혼다자동차 부품공장 파업 중 노동자들이 요구한 생산직 근로자 호봉제 도입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중국 진출 기업들의 전면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 선부론에서 공동부유론으로

이에 따라 중국 노동정책의 전환 가속화로 저임금에 억눌려온 노동자들의 복지 향상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003년 취임 이후 덩샤오핑의 선부론 대신 조화사회 건설을 통한 공동부유론을 내세우며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계약법 실시 등 친노동자 행보를 보여왔다.

중국 노동정책의 전환에는 인민의 복지향상 외에도 다목적 포석이 깔려있다.

노동자들의 사회불만이 반체제 운동으로 번지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한다는 측면이 있다.

또 30년간 두자릿수 고성장을 지탱해온 경제구조를 바꾼다는 의미도 있다.

수출위주의 경제구조를 내수주도형으로 바꾸고,이를 통해 '세계의 시장'이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마찰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 상승을 유도함으로써 산업구조 역시 설비와 첨단기술에 의존한 고부가치 산업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업그레이드시키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포석이다.

펑카이핑 칭화대 교수는 "폭스콘의 연쇄자살 사건은 근로자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값싼 노동력에 기댄 과거의 발전방식으로는 중국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는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쇄자살 사태로 열악한 노동환경이 부각된 대만계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 폭스콘은 1주일새 세 차례에 걸쳐 임금 인상 계획을 발표,900위안이었던 월평균 임금을 10월1일부터 2000위안으로 높이기로 했다.

폭스콘 선전공장의 한 근로자는 중국 동방조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일주일 오른 임금이 지난 10년 새 오른 임금과 맞먹는다"며 그동안 '임금 착취'에 분개했다.

폭스콘은 최근 외신들을 초청,올림픽경기장 수준의 수영장을 보여주며 복지시설까지 갖추고 있다고 강변해왔지만 한 근로자는 "30분만 주어지는 점심시간 중 오가는 시간을 빼면 10분만에 식사를 해야 한다"며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삼켜왔다"고 말했다.

⊙ 중국 노동정책의 무게중심 이동

저임금과 가혹한 근로환경이 폭스콘을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업체로 키운 밑거름이었지만 이젠 회사의 위협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고성장이 만들어낸 부(富)는 중국의 젊은 근로자들의 박탈감을 키웠다.

폭스콘 근로자들은 화려한 쇼핑몰에서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이 BMW를 몰고 루이비통 핸드백을 사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소득격차를 보여주는 중국의 지니계수는 0.47로 한계점인 0.40을 훨씬 뛰어넘었다.

중국의 노동정책 전환은 세계 공장 건설에서 세계 시장 건설로 노동정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금이 인상되면 근로자들이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돼 중국 경제가 대외적인 경기변동에 덜 민감한 체질로 전환하게 된다(월스트리트저널)는 것이다.

바이총언 칭화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은 모든 영역에서 빠른 임금 상승이 일어날 것"이라며 "임금 인상이 계속된다면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소비를 증가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에 세계 시장이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미국 등 서방과의 마찰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최근 중국의 감소하는 수출과 빠르게 늘어나는 내수시장을 지적하면서 "중국이 내수소비를 향해 튼튼한 전환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관리들은 위안화 절상과 함께 중국의 가계소득 및 소비지출 증가를 계속 주장해 왔다.

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진작이 위안화 절상 요구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분석도 미국에 시장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다.

근로자들의 임금 인상은 기업들이 공장 자동화에 대한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폭스콘은 노동생산성을 올리기 위한 이 같은 전략을 올해부터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비 및 자동화 투자 확대는 저사양(Low-End)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지만,전자제품 등 고사양 제품 생산에 주력하는 기업들에 좋은 공식이 될 수 있다는 게 월지의 분석이다.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