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스페인으로 확산 우려…유로貨 가치 급락
[Focus] 유로존에 그리스發 재정위기 전염…유로화 체제 붕괴의 서막?
유럽연합(EU) 27개 국가 가운데 16개국에서 공통으로 쓰고 있는 단일통화인 유로화의 운명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스 재정적자 위기가 심화되면서 출범 11년째인 유로화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위기가 포르투갈 스페인 등으로 전염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면서 유로화 가치는 14개월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리스 위기가 본격화된 이후 달러 대비 13% 이상 떨어졌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심리적 저지선이라 불리던 유로당 1.30달러대마저 붕괴됐다.

한때 미국 달러를 대체할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오히려 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유로화가 장기적으로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세계 기축통화가 되거나,적어도 달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론은 물론 폐지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를 예언했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유로존이 공중분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상품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역시 "앞으로 15~20년 뒤 유로화가 쪼개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 그리스 사태로 유로화 취약성 부각

유럽경제통합 과정이 한창 진행되던 1994년.

당시 독일 내 보수파들 사이에선 독일과 프랑스,베네룩스(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국가 등 선진국으로만 구성된 '핵심유럽(Kerneuropa)' 리그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경제격차가 큰 북유럽과 남유럽을 하나의 경제체로 묶을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유럽통합이란 대의에 밀려 소수의 목소리로 묻혀버렸다.

1999년 유로화가 등장한 이래 전 세계 외환보유액 중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9년 17.9%에서 2008년 28%로 증가하면서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로 유로화가 지닌 근본적인 취약성이 노출되면서 유로화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의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총괄하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경제상황이 판이한 데다 국가마다 이해가 달라 일관성 있는 정책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리스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유로화의 취약성이 확인됐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유로화가 결과적으로 유럽에 무거운 짐이 될 뿐이란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 단일통화가 역내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는데 한계를 보인다는 약점도 이번 위기를 계기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각국이 다른 통화를 사용할 때는 한 나라의 무역적자가 커지면 그 나라의 통화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해 수출 경쟁력이 향상된다.

무역적자가 늘어나면 →통화가치가 떨어지고→수출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무역적자가 다시 줄어드는 '통화의 메커니즘'이 무역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에선 이 같은 매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럽 내 남부와 북부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국제금융통계(IFS)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경상수지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4%의 흑자를 기록한 반면 포르투갈은 GDP 대비 10.2%,그리스는 8.8%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 유로화 체제 붕괴 우려 커져

이처럼 근본적인 약점을 지닌 유로화 체제가 붕괴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최근 "유럽 대륙의 전반적인 국가 부채 급증이 유로존의 존속에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많은 경제학자는 유로화가 붕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 소위 'PIGS' 국가들이 모두 유사한 재정적자 위기에 봉착해 있는 만큼 이들 국가로 위기가 번질 경우,유럽 대륙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란 게 이 같은 우려의 가장 큰 근거다.

그리스 사태는 대붕괴의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럽 4위의 경제대국 스페인이 부실화되면 그리스의 경우와는 규모에서 비교가 안 되는 만큼 유로존 전체가 위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악의 사태가 현실화되면 독일이나 프랑스 핀란드 네덜란드 같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나라들이 그리스 등 부실국가의 재정적 실책에 자국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경제수준이 상이한 국가들이 같은 통화를 사용하면서 얻게 된 이익은 거의 없었던 반면,어느 한 나라에서 발생한 문제는 모두가 떠안아야 하는 부작용만 극대화된 것이다.

⊙ 유로존 재편론 힘얻어

유로존에 급박한 상황이 닥쳤지만 분열된 유럽은 문제를 해결해 나갈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고만고만한 나라들의 집합인 EU가 각 국가 간 견제와 균형에 중점을 두면서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역내 대국에 결정적 리더십을 주는 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단일통화 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다는 유럽의 오만한 믿음이 근본적인 문제였고 이는 반드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유로존을 독일 네덜란드 등 건실한 '메이저리그'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부실한 '마이너리그'로 나눠 환율을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6년 전 독일에서 제기됐던 논란이 최악의 경제상황을 맞아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이번 그리스 문제 해결 과정에서 독일 등에선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그리스가 자발적으로 유로존에서 나가는 것 외에는 유로존이 강제로 그리스를 퇴출시킬 법적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 퇴출론'이 격렬하게 제기된 것이다.

그리스 문제 해결에 IMF(국제통화기금)가 개입한 것을 두고 "유로존이 그리스를 포기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유럽에선 IMF를 '미국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도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