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국가부도 같은 만일의 사태 대비하는 보험 필요”

반 “물가·통화관리 부담 늘어 적정수준서 조절해야”

지난 4월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대 규모인 2788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적정 외환보유 수준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일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은 올해 들어서만 88억8000만달러가 늘어 2800억달러는 물론 3000억달러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이유는 보유 외환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입 증가, 보유 외환의 가치 상승, 당국의 시장 개입에 따른 달러매입액 증가등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최근 외환보유액이 급증하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원 · 달러 환율의 지나친 하락을 억제하기 위해 외환당국이 시장에 개입한 결과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시장에선 지금 추세로 볼 때 외환보유액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운용수익이나 평가이익은 들쑥날쑥할 수 있다고 해도,경상수지 흑자나 외국인 주식매입 자금 유입 등 최근 외환수급상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가 나가는 달러의 양보다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국내로 들어오는 달러를 당국이 시장 개입을 통해 얼마나 흡수하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볼 때 일정 부분은 보유액으로 쌓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전체적 흐름에 비춰본다면 내년 초쯤엔 3000억달러 고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외환보유액 증가 추세에 대해 2~3년 전만해도 "2000억달러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었지만,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3000억달러는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반면 한편에서는 과잉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기도 한다.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을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 본다.

⊙ 많을수록 좋다는 측, "국가부도 위기를 되풀이 않으려면 충분한 비축이 필요하다"

아직 국제적으로 금융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데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자본에서 단기성 헤지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외환보유액 과다논란은 성급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1997년 말과 2008년 두 차례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국가부도 위기라는 최악의 사태를 겪었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당시 경험한 엄청난 국가경제적 손실에 비춰보면 외환보유액에 따른 얼마간의 비용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 경제 처지에서 3000억달러도 안 되는 외환보유액을 놓고 과다논란을 빚는 것은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이다.

국가부도 사태와 같은 최악의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웬만한 악재가 불거져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충분한 외환을 비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이던 시절에 위기설이 제기된 점을 볼 때 외환보유액을 지금보다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위기가 10년에 한 번 터질까 말까 하더라도 이에 대비한 보험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글로벌 금융불안이 계속되고 있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외부충격을 방어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외환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정부 역시 현 정부 출범 초만해도 "적정 보유액은 2100억달러"란 얘기까지 나왔지만,한차례 위기를 거치면서 3000억달러에 대해서 별 거부감이 없는 분위기다.

⊙ 적정관리 필요하다는 측, "물가와 통화관리에서 부담이 늘어난다"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해 외환을 사들였지만 외환보유액이 증가하면 원 · 달러 환율이 추가로 떨어져 결과적으로 수출경쟁력이 저하되고 해외 부문에서 통화증발이 초래돼 물가 불안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어 적정 수준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당국이 달러화를 사들이는 만큼 원화가 풀리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많은 시중 유동성을 더욱 늘리는 부작용이 있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물가 상승을 부추기게 되고 이 유동성을 거둬들이려면 한국은행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이를 다시 흡수해야 하는데,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외환보유액은 미 국채 등 수익률이 낮은 안전자산에 주로 투자하기 때문에 통안증권 발행 비용과 비교하면 역마진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우리나라는 "각국이 외환보유액을 지나치게 쌓기보다는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만들자"고 주창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의 외환보유액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점은 국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등이 중국의 지나친 외환 보유에 대해 '글로벌 불균형의 주범'이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데 이 같은 화살이 언젠가 우리에게도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절대 수치보다는 융통성 있게 운용해야

외환보유액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적정인지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

한 국가의 경제 규모나 구조,특성에 따라 모두 다른데다 한 나라에 있어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적정 수준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특정 국가의 외환시장이 얼마나 개방되어 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한 변수가 되며 정부의 외환 시장 개입 정도, 그리고 글로벌 경제의 안정성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따라서 "2000억달러는 부족하고 3000억달러는 돼야 한다"든지 "3000억달러는 과잉"이라는 등의 논의는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외환보유액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대내외 경제활동이 어우러진 결과이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의 절대치보다는 오히려 외환시장의 안정적 관리가 더 시급한 이유다.

국내 외환시장 규모가 지나치게 작아 그리 많지 않은 외환거래로 시장이 크게 출렁거린다는 점은 잘 알려진대로다.

따라서 외환시장을 키우고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용어풀이

외환보유액

한 나라가 일시점에서 보유하고 있는 대외 외환채권의 총액이다. 국가의 지급불능 사태에 대비하고 외환시장 교란시 환율 안정을 위해 한 나라의 통화당국(정부 및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 달러 엔 유로 등 대외지급 준비 외화자산을 의미한다. 외환보유액은 정부(외국환평형기금) 및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보유외환(외국통화,해외 예치금,외화증권 등),해외 및 국내 보유 금,SDR(특별인출권),IMF포지션(IMF 가맹국이 출자금 납입으로 보유하게 되는 IMF로부터의 교환성 통화 인출 권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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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5월4일자 보도기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3개월 만에 사상 최대규모를 경신했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한 달 전보다 65억4000만달러 증가한 2788억7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종전 최고 기록인 지난 1월 말 2736억9000만달러를 넘는 규모다.

월별 증감액은 지난해 11월(67억달러) 이후 최대다.

외환보유액 구성 항목 가운데 미국 국채와 정부기관채 등 유가증권은 한은의 환매조건부(RP) 채권 매각으로 51억5000만달러 감소했다.

반면 예치금이 117억3000만달러 증가했다.

한은은 외환보유액이 증가한 이유로 외환 보유 규모가 커지면서 운용수익도 함께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돈이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월평균 외환보유액이 지난해 2352억달러에서 올해 1~4월 2739억달러로 늘면서 보유 증권의 이자와 매매 차익이 자연스럽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남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을 큰 폭으로 내리고 일본의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자 유로화와 엔화 등이 약세를 보여 이들 통화로 표시된 대외 자산의 달러화 환산액이 조금 줄었다고 한은은 덧붙였다.

3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중국 일본 러시아 대만 인도에 이어 세계 6위를 유지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