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취학 전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엄마 놀이를 즐겨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롤러블레이드와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누볐다.

고무줄놀이를 하다 구멍난 양말 때문에 매일 어머니께 꿀밤을 맞기도 하였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지금의 초등학생은 스피치 학원부터 중국어 과외까지 수험생보다 스케줄이 많은 '바쁘신 몸'이다.

최근 실시한 국제비교를 통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관적 행복지수 부문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라는 사실이 충격적인 소식은 아니다.

그렇지만 제 88회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접하는 소식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

우리나라는 "주관적으로 정신 및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라는 항목에서도 OECD 국가 중 최악의 비율을 나타냈고,"외로움을 느낀다"라는 응답률에도 2위를 차지했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는 입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부모는 자녀의 친구와 선생님과의 관계를 잘 알고 지내라"고 조언했다.

유엔 세계아동인권선언은 "아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특별한 보호와 정서적 · 경제적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린이 중 55%가 부모님이 일주일에 단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성폭행,신체폭력에 이어 아동학대의 새로운 개념인 '아동 방목'까지 등장했다.

아동에게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물리적 방임을 주로 뜻하지만,의무교육을 시키지 않거나 병에 걸려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 그리고 가출을 해도 찾지 않는 경우 등 다양한 상황을 포함한다.

넘쳐나는 학습량에 허우적거리는 아이들과 부모 없이 스스로를 키우는 아이들로 양극화된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교육열과 입시 스트레스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가구당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높아졌고 수험생 우울증이나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전문의를 찾는 경우도 흔해졌다.

한 정신과 원장은 "학습 스트레스가 과도할 경우 도벽 등 정신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고,상위권 학생 중에도 성취욕구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가면성 우울증(Masked Depression)과 과잉행동장애 등을 포함하는 학습부진 장애는 한 반에 30% 꼴로 나타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인성적으로도 미성숙한 상태에서 자아탐색 이전에 무리한 학습을 요구하는 부모와 그가 속해 있는 사회 전체가 초래한 결과다.

가족보다 돈이 행복의 우선 조건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다.

더 이상 화목한 가정만으로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내 아이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 구김 없이 자라길 원하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서양으로부터 배울 것이 남아 있다면 복지국가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의 공감대와 복지국가 정책의 실행을 위한 정부의 의지일 것이다.

가족 간의 대화가 문제 해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지금까지는 가족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동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가 심화되면서 복지를 담당하던 가족 자체가 오히려 해체의 길을 걷고 있음을 우리는 실감하고 있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데 국가가 옆에서 관심을 갖게 되면 하락하는 출산율,과도한 입시전쟁,생계형 범죄 문제,정치적 무관심을 순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살기 좋은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부르짖는 군중의 함성은 커지고 있다.

구원이 필요한 국민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

조윤경 생글기자 choyunkyung@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