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문명화 따른 인구의 밀집과 인간의 활동 영역 확장 등이 원인
[Focus] 자연재해가 옛날보다 커진 건 아닌데 왜 피해는 더 크지?
올 들어 지구촌에 대형 자연재해들이 잇따르고 있다.

아이티와 칠레 중국에서 대형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고, 브라질에서는 폭우와 산사태로 250명이 죽었다.

최근에는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했다.

지진과 달리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화산재가 날아오르면서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되고 유럽의 경기 회복에도 재를 뿌리고 있다.

이런 자연재해는 사람들에게 어두운 심리적 그림자를 드리우게 마련이다.

지진과 화산을 세상의 종말로 해석하는 현대인들은 드물겠지만,그래도 이런 재해를 인간의 행태와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 같다.

빈발하는 자연재해, 어떻게 봐야 할까?

⊙ 대형지진,올 들어서만 벌써 세 번

새해 벽두인 지난 1월12일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리히터 규모 7.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5.0 이상의 여진만도 20여 차례나 잇따랐다.

이 지진으로 이 나라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쑥대밭이 됐다.

대통령궁(르네 프레발 대통령은 다행히 무사했다)과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등 주요 건물이 붕괴되거나 부서졌다.

교도소가 무너져 4000명의 수감자가 탈출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아이티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300만명이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고,사망자는 23만명에 이르렀다.

한 달여 뒤인 2월27일 이번에는 남아메리카 칠레에서 강진이 발생했다.

사람들의 새벽잠 속에 덮친 이 지진은 리히터 규모 8.8의 대형급으로,1900년대 이래 5번째 큰 규모였다.

강진 이후 한 달 동안 200여 차례의 여진이 이어졌고,공식 사망자는 452명로 집계됐지만 700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관측도 있다.

가옥 20여만채가 무너지거나 부서졌고,2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칠레 정부 추산으로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가 국내총생산(GDP)의 17%에 달하는 300억달러에 달했다.

지난달 14일 오전에는 중국 북서부 칭하이성 위수현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했다.

험한 날씨와 지형 때문에 구조작업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사망자와 중상자가 계속 늘고 있다.

정부 구조대와 티베트 승려까지 구조에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외신이 전하고 있지만,눈까지 내리는 영하의 추운 날씨와 강풍 때문에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검은 화산재의 악몽

칭하이 지진과 거의 동시에 아이슬란드에선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했다.

대서양 상공 11㎞까지 솟아오른 거대한 화산재와 연기가 기류를 타고 확산되면서 전 유럽의 항공기 운항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이웃 영국은 물론 유럽 각국이 항공기 운항 중단 조치를 취했고,프랑스 정부는 샤를르 드골 공항을 비롯한 25개 공항을 폐쇄했다.

언론들은 이번 항공기 운항 중단 사태를 2000년 9 · 11테러 이후 최악의 항공대란이라고 불렀다.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은 한 달 전부터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대폭발이 예상됐기 때문에 별다른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경기회복을 기대했던 유럽 경제에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는 평가다.

문제의 화산은 지난 1100년간 4차례나 폭발했으며,마지막 폭발은 1821년에 있었다.

지질 전문가들은 문제의 화산 주위에 대규모 폭발 잠재력을 지닌 화산 2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제2의 화산 폭발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 화복은 자연과 인간 교감의 결과(?)

올 들어 이처럼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자연의 이상현상이 잇따라 발생하자 "뭔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탄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인간이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재해가 발생한다는 논리다.

환경주의자들의 경고도 결국은 이 같은 배경을 깔고 있다.

현대과학을 도외시한 발상이지만,자연재해 앞에서 스스로 반성하는 것은 오랜 인간의 습성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동아시아의 재이설(災異說)이다.

중국에서 최초로 공자의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제도화한 동중서는 자연계의 현상과 인간 행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을 주장했다.

하늘(天)은 인간을 지켜보면서,인간이 좋은 일을 하면 풍년 같은 것으로 응답하고 나쁜 일을 하면 천변지이(天變地異) 현상으로 벌한다.

하늘과 인간이 교감한다고 해서 천인감응(天人感應)이라고도 한다.

이런 생각이 더욱 정교해진 것이 재이설이다.

하늘은 처음에는 인간에 대한 경고로서 비교적 작은 재해(災)를 내리는데,이것을 인간이 받아들여 깊이 반성하고 행실을 고치면 된다.

그렇지 않고 경고를 무시하면 하늘은 다시 무거운 이변(異)을 세상에 내린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서는 가뭄이나 홍수,지진 같은 대형 재해를 단순한 자연현상을 넘어서 인간,특히 왕이나 위정자의 잘못된 정치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예컨대 일식은 왕이 신하에게 침해당하리라는 징조로 해석되고,지진은 신하의 횡포 또는 하극상 풍조에 대한 경고로 풀이된다.

중국에서 고대부터 천문관측이 강조돼온 것은 이런 것들을 해석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자연재해 원인을 인간의 잘못에서 찾는 것이 비단 고대 동양뿐만은 아니다.

서양 고대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두고 폼페이에서 빚어진 로마인의 사치와 방종에 대한 응징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고전적인 사례에 속한다.

⊙ 산업과 문명의 발달 탓?

확실히 최근 자연재해는 그 강도가 더 세지고 발생 빈도도 더 잦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산업과 문명의 발달로 피해규모가 더 커졌을 뿐 자연재해가 과거에 비해 더 심해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최근 내놨다.

인간기원론의 비관적 분위기를 덜어주는 주장이다.

타임은 "23만명이 죽은 아이티 지진의 경우 대재앙으로 부를 만하지만 강도 면에서는 리히터 규모 7.0으로 그리 강한 지진은 아니었다"며 "피해가 컸던 것은 지진이 발생한 포르토프랭스가 인구 밀집지역이었고 지진에 대처할 만한 준비가 안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도 마찬가지다.

화산재로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항공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세계 항공산업의 손실 규모가 하루 2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화산 폭발이 항공교통이 없었던 과거에 발생했다면 그 피해는 아이슬란드 일부 주민들에만 국한됐을 것이다.

이는 세계화되고 상호 의존도가 높아진 지구촌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은 자연재해도 발생 시점이나 위치에 따라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타임은 지적했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재난역학센터(CRED)에 따르면 피해규모가 커 대재난으로 분류되는 자연재해는 1980년대 이후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또 적십자사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6290억달러로 1985년에 비해 5배로 증가했다.

타임은 그러나 "이것은 자연재해가 더 강해지거나 자주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 영역이 확장되면서 자연스럽게 피해가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종근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