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 이었다.

예년처럼 언론에서는 장애인 관련 기사를 많이 다뤘다.

이런 노력들이 어우러져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배려는 아직 후진국 수준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체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이동권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정부에서 휠체어 구입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교통,건축 등 사회적 인프라 대부분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맞춰져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는 지체장애인 입학생 한 사람을 위해 건물 개조공사를 했다는 기사를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우리에겐 아직 멀게 느껴지는 얘기다.

장애인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OECD 국가 중에서 10년째 꼴찌라고 한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승자독식 사회는 외눈박이 성장이 되기 쉽다. 사회적 갈등도 그만큼 커질 테니까.

더 큰 문제는 장애인들의 취업문이 좁다는 것이다.

일을 통해 자립하고 싶어하는 장애인이 많지만 이들을 고용해주는 기업은 소수에 그치고 있다.

다른 기업보다 장애인을 조금만 더 고용해도 뉴스거리가 되는 게 현실이다.

정부가 장애인 의무고용을 법으로 정해놨지만 이를 지키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이 미군 군복을 재단하고,청각 장애인들이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등 왕성하게 일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니 부러운 생각까지 든다.

특히 우리나라의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은 매우 열악하다.

지적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장애아보다 하루만 더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장애아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수록 비극적인 이야기다.

종교단체나 사설 복지관이 일부 있지만 지적장애인 수용능력이 턱없이 부족해 돈을 내고도 못 들어 간다고 한다.

가끔 지적장애인들에게 쇠고랑을 채워 짐승처럼 수용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우리 사회의 복지 수준이 얼마나 허술하고 야만적인지 실감하게 된다.

선진국의 기준은 경제적으로 잘사는 나라일 수도 있고 문화적으로 앞서가는 나라일 수도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의식이 널리 퍼진 사회란 생각이 든다.

삶의 향기는 배불리 먹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약자를 보호할 줄 아는 배려에서 나오니까.

청소년들이 성숙한 인격을 쌓고,이들이 사회인이 됐을 때 우리 사회의 갈등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은 봉사활동을 통한 인격수양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봉사활동을 학교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면 좋겠다.

대학 입학을 위한 스펙쌓기가 아니라 실제로 장애인과 노약자를 찾고 돌봄으로써 참교육을 배울수 있지 않을까.

최예원 생글기자(백양고 2학년) yewonstar@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