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세'를 대체할 말 없나요?"
2009년 8월 한국조세연구원은 음주자와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조세연구원이 술과 담배에 대해 죄악세(sin tax) 관점에서 세율을 인상하자는 의견을 낸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용어가 음주와 흡연을 마치 범죄행위(crime)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는 게 비난의 골자였다.
급기야 조세연구원은 번역어인 '죄악세'를 다른 말로 바꾸려고 했지만 끝내 적합한 용어를 찾지 못하고 골머리만 앓았다.
말은 언중의 입에 오르내려 일단 세력을 얻게 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다.
'죄악세'처럼 도입 초기에 좀더 폭넓은 공감대를 갖는 말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는 구(句)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말 가운데는 두 개 이상의 단어가 어울려 오랫동안 쓰다 보니 입에 굳어져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 있다. 이를 관용구라 부른다.
이들은 단어 각자의 뜻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띠는 것이다.
가령 '발이 넓다'가 말 그대로 발이 넓은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은 경우를 나타내는 것 따위를 말한다.
일단 관용구가 되면 쓰임새가 제한된다. 관용구의 특성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2층의 눈에 잘 띄는 코너에는 투자입문서 등 주식 투자와 직접 관련 있는 책은 물론 투자의 사회 · 심리적 현상을 다룬 책들까지 진열돼 주식투자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발길을 잡다' '~의 눈길을 끌다' 같은 말은 글쓰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형화된 표현이다.
'오고가는 발걸음을 잡다'라고 하면 '관심을 끌다' '인기가 좋다'는 뜻으로 쓰인 관용적 어구이다.
그런데 이 말을 예문과 같이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하면 어색해진다.
'어떤 일에 꽉 잡혀 벗어나지 못하다' '남에게 어떤 약점을 잡히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관용구 '발목(을) 잡히다'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 시장에서 고수익을 노리는 일반투자자들의 이른바 '묻지마 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관용적 표현은 굳어진 대로 쓰는 게 원칙인데 종종 이를 무시하고 말을 비틀어 쓰는 경우가 있다.
'봇물을 이루다' '봇물처럼 쏟아진다'라는 표현도 자주 접하는 표현이다.
때로는 '철도관광상품 봇물' '신규 투자 봇물' 식으로 '봇물'이란 한 단어로 축약해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란 관용적 어구를 변형해 쓰는 말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이 앞다퉈 밀려나오는 현상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봇물'이란 '보에 괸 물' 즉 흘러가지 못하게 가둬져 있는 물인데 이를 단순히 '봇물'이라거나 '봇물을 이루다'라고 해서는 그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더구나 이를 '봇물처럼' '쏟아진다'고 하면 의미상으로 모순 관계에 있는 표현이다.
'봇물'은 또 '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기도 한데,이 역시 일정하고 적당한 양으로 흐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봇물을 이루다'나 '봇물처럼 쏟아지다'란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봇물'이란 단어의 의미가 '막혔던 곳이 터져 쏟아지는 물'쯤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봇물'을 그런 의미로 쓰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봇물'이나 '봇물을 이루다' '봇물처럼 쏟아진다'란 말은 온전한 표현이 아니고, 반드시 '터지다'라는 말이 들어가야 본래 의도하는 의미를 구성하는 셈이다.
다만 이런 변형된 말들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다'란 표현이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 가운데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지만 들여다보면 이처럼 비논리적인 표현으로 된 게 꽤 있다.
가령 "오늘 그동안 미뤄왔던 머리를 깎았다"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라고 할 때 실은 '머리를 깎게 한' 것이고 '사진을 찍게 한' 것이다.
우리말에도 사동법이 있어서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게 표현할 수 있지만, 굳이 이를 구별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게 우리말법이다.
"맨발 벗고 나서다"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맨발은 이미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인데,거기다 또 '맨발 벗는다'라고 하면 이치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표현이다.
'팔을 걷어붙이다' '팔 걷고 나서다' 같은 표현도 본래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지만 모두 관용구로 굳은 말이다.
이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다'와 똑같은 말로 '어떤 일에 아주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다'란 뜻이다.
이 '소매'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지에서는 '가랑이'다. 가랑이는 '바지 따위에서 다리가 들어가도록 된 부분'을 뜻한다.
어른이 회초리로 종아리를 칠 때 아이에게 "종아리 걷어라"라고 말한다.
종아리는 '무릎과 발목 사이의 뒤쪽 근육 부분'을 가리킨다. 그러니 어찌 종아리를 걷을 수 있겠는가.
제대로 말이 되려면 "바짓가랑이 걷어라" "가랑이 걷고 종아리 내" 식으로 해야 하지만 이래선 영 말맛이 나지 않는다.
'종아리 걷어라' '문 닫고 들어와라' 같은 표현은 허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관용구는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다.
관용구의 요건인 각자의 단어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갖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2009년 8월 한국조세연구원은 음주자와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조세연구원이 술과 담배에 대해 죄악세(sin tax) 관점에서 세율을 인상하자는 의견을 낸 것이 발단이 됐다.
이 용어가 음주와 흡연을 마치 범죄행위(crime)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는 게 비난의 골자였다.
급기야 조세연구원은 번역어인 '죄악세'를 다른 말로 바꾸려고 했지만 끝내 적합한 용어를 찾지 못하고 골머리만 앓았다.
말은 언중의 입에 오르내려 일단 세력을 얻게 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 속성을 갖고 있다.
'죄악세'처럼 도입 초기에 좀더 폭넓은 공감대를 갖는 말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는 구(句)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말 가운데는 두 개 이상의 단어가 어울려 오랫동안 쓰다 보니 입에 굳어져 특수한 의미를 나타내는 말이 있다. 이를 관용구라 부른다.
이들은 단어 각자의 뜻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띠는 것이다.
가령 '발이 넓다'가 말 그대로 발이 넓은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은 경우를 나타내는 것 따위를 말한다.
일단 관용구가 되면 쓰임새가 제한된다. 관용구의 특성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2층의 눈에 잘 띄는 코너에는 투자입문서 등 주식 투자와 직접 관련 있는 책은 물론 투자의 사회 · 심리적 현상을 다룬 책들까지 진열돼 주식투자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발길을 잡다' '~의 눈길을 끌다' 같은 말은 글쓰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정형화된 표현이다.
'오고가는 발걸음을 잡다'라고 하면 '관심을 끌다' '인기가 좋다'는 뜻으로 쓰인 관용적 어구이다.
그런데 이 말을 예문과 같이 '발목을 잡고 있다'라고 하면 어색해진다.
'어떤 일에 꽉 잡혀 벗어나지 못하다' '남에게 어떤 약점을 잡히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관용구 '발목(을) 잡히다'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 시장에서 고수익을 노리는 일반투자자들의 이른바 '묻지마 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관용적 표현은 굳어진 대로 쓰는 게 원칙인데 종종 이를 무시하고 말을 비틀어 쓰는 경우가 있다.
'봇물을 이루다' '봇물처럼 쏟아진다'라는 표현도 자주 접하는 표현이다.
때로는 '철도관광상품 봇물' '신규 투자 봇물' 식으로 '봇물'이란 한 단어로 축약해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란 관용적 어구를 변형해 쓰는 말이다. 한꺼번에 많은 것이 앞다퉈 밀려나오는 현상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봇물'이란 '보에 괸 물' 즉 흘러가지 못하게 가둬져 있는 물인데 이를 단순히 '봇물'이라거나 '봇물을 이루다'라고 해서는 그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더구나 이를 '봇물처럼' '쏟아진다'고 하면 의미상으로 모순 관계에 있는 표현이다.
'봇물'은 또 '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기도 한데,이 역시 일정하고 적당한 양으로 흐르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봇물을 이루다'나 '봇물처럼 쏟아지다'란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봇물'이란 단어의 의미가 '막혔던 곳이 터져 쏟아지는 물'쯤으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일반적으로 '봇물'을 그런 의미로 쓰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봇물'이나 '봇물을 이루다' '봇물처럼 쏟아진다'란 말은 온전한 표현이 아니고, 반드시 '터지다'라는 말이 들어가야 본래 의도하는 의미를 구성하는 셈이다.
다만 이런 변형된 말들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다'란 표현이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 가운데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지만 들여다보면 이처럼 비논리적인 표현으로 된 게 꽤 있다.
가령 "오늘 그동안 미뤄왔던 머리를 깎았다"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라고 할 때 실은 '머리를 깎게 한' 것이고 '사진을 찍게 한' 것이다.
우리말에도 사동법이 있어서 얼마든지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게 표현할 수 있지만, 굳이 이를 구별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게 우리말법이다.
"맨발 벗고 나서다"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맨발은 이미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인데,거기다 또 '맨발 벗는다'라고 하면 이치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표현이다.
'팔을 걷어붙이다' '팔 걷고 나서다' 같은 표현도 본래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것이지만 모두 관용구로 굳은 말이다.
이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다'와 똑같은 말로 '어떤 일에 아주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다'란 뜻이다.
이 '소매'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지에서는 '가랑이'다. 가랑이는 '바지 따위에서 다리가 들어가도록 된 부분'을 뜻한다.
어른이 회초리로 종아리를 칠 때 아이에게 "종아리 걷어라"라고 말한다.
종아리는 '무릎과 발목 사이의 뒤쪽 근육 부분'을 가리킨다. 그러니 어찌 종아리를 걷을 수 있겠는가.
제대로 말이 되려면 "바짓가랑이 걷어라" "가랑이 걷고 종아리 내" 식으로 해야 하지만 이래선 영 말맛이 나지 않는다.
'종아리 걷어라' '문 닫고 들어와라' 같은 표현은 허용되는 말이긴 하지만 관용구는 아니라는 차이점이 있다.
관용구의 요건인 각자의 단어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갖춘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