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국민들의 보편적 시청권 훼손해서는 안돼”

반 “공동중계야말로 채널 선택권 박탈하는 것”


지난 2월에 열린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방송 3사 가운데 SBS만이 단독 중계했다.

당시 KBS MBC 두 방송사는 SBS가 당초 약속을 깨고 비싼 돈을 내고 중계권을 따내 이를 혼자서 독점 중계했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이런 갈등 와중에 우리 선수의 첫 금메달 소식을 KBS MBC는 의도적으로 축소 보도, 스포츠 뉴스 시간에 단신으로 처리하는 어이 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제 오는 6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린다. 이번 월드컵 역시 SBS가 독점 중계권을 가지고 있다.

KBS는 최근 이 문제를 둘러싸고 방송 3사 간 합의를 깬 SBS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민 · 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고 MBC 역시 KBS가 취한 것과 같은 유사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사태의 발단은 2006년 3사 간 체결된 소위 '스포츠 합동방송 합의사항'에서 비롯됐다.

당시 방송 3사는 2016년까지 치러질 월드컵과 올림픽에 대한 방송권 협상 창구를 단일화하고 방송권과 관련한 어떤 개별 접촉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SBS가 이런 합의(소위 코리안 풀)를 깨고 거액의 중계권료를 주고 2010~2014년 월드컵 및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하는 대회의 중계권, 2010년 동계올림픽부터 2016년 하계올림픽까지 4차례의 올림픽 중계권 등을 단독으로 확보해 경쟁사들과 갈등을 빚게 됐다.

⊙ 찬성 측 "단독 중계는 보편적 시청권을 훼손한다"

KBS는 SBS에 대한 소송 제기 방침을 밝히는 자리에서 "2006년 SBS가 방송 3사 사장들의 합의를 깨고 몰래 올림픽 · 월드컵 중계권 단독 계약을 체결해 막대한 국부를 유출하고 국가적 행사를 이윤 추구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빚었다"며 "중계권 협상 과정에서 SBS가 저지른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에 대해 민 · 형사상 소송을 제기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조대현 부사장은 "월드컵과 올림픽 경기는 국민 모두의 것인데 상업방송이 자사의 이익만을 좇아 국민의 채널 선택권은 물론 보편적 시청권을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KBS 측은 또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하는 일종의 공공재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상업방송인 SBS가 영업의 자유만을 내세우며 단독 중계하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공영방송 여부를 떠나 국민들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경기를 보고 싶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한 방송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방송 서비스보다는 보다 풍부한 해설과 영상편집,보충자료화면,연출 등 다채로운 방송 서비스가 제공되는 그런 스포츠 중계를 원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동계올림픽에서도 한 방송사의 단독중계로 인해 답답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며 올림픽과 같은 경기에서는 특히 시청자의 채널선택권이 존중될 필요성이 크다고 한다.

⊙ 반대 측 "공동 중계야말로 채널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SBS 측은 보편적 시청권이란 지상파 방송을 통해 국민들의 대다수가 무료나 최소비용으로 시청할 수 있을 경우 확보되는 것으로 전국 방송인 SBS가 중계하는 방송은 보편적 시청권을 당연히 충족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래 보편적 시청권이란 유료방송의 독점 중계로 대다수 국민들이 방송을 시청하지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대두된 개념인데 SBS 중계는 본질적으로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단독 중계가 채널선택권을 박탈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종전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방송 3사가 일제히 하루 10시간이 넘게 이들 경기를 싹쓸이 편성하는 통에 시청자들은 다른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었던 상황이야말로 채널선택권이 박탈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오히려 지상파 3사 중 일부는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고 다른 방송에서는 평소와 같은 편성을 하는 것이 진정한 국민들의 채널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같은 경기를 여러 채널을 통해 다양한 해설 등을 비교해가며 보려는 시청자들의 요구는 충족시키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이는 채널선택권 문제가 아니라 해설선택권 정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 3사 간 합의를 파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도덕적인 책임은 있을 수 있지만 법적인 책임은 질 게 없다는 주장도 편다.

⊙ 방송사가 아닌 시청자 이익이 우선시돼야

사실 국민들은 '누가'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느냐는 관심이 없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대형 스포츠 경기의 중계권을 둘러싼 방송 3사의 논쟁을 보고 있으면 시청자의 권익보다는 자사의 이익만 앞세우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 될 수밖에 없다.

방송 3사는 국민들의 알권리나 시청자의 권리를 내세우며 자신들의 논리를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위 공영방송이라고 자처하는 방송사까지도 이런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방송사들의 자사 이기주의를 떠난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 안 된다면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국민들은 '어떤 방송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월드컵 경기를 즐길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용어풀이

보편적 시청권

2007년 개정된 방송법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유럽의 '보편적 접근권' 개념을 원용한 것으로 국민적 관심이 되는 스포츠 경기 및 행사가 공영방송을 포함한 무료 방송사가 주요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방송권을 확보함으로써 많은 시청자에게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유료방송에 의한 스포츠 중계권 독점에 대한 지상파 방송사의 견제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스포츠 마케팅회사인 IB스포츠가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모든 경기의 국내 독점권을 독점 계약, 2006년 2월 축구국가대표팀의 시리아전이 케이블 스포츠 채널을 통해서 독점 중계되는 한국방송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 일을 계기로 국민적 관심 스포츠는 반드시 지상파 방송사가 '무료'로 우선적으로 방송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편적 접근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방송법상 SBS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단독중계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구 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방송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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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4월13일자 보도기사

KBS에 이어 MBC도 SBS의 월드컵 중계 방송권 취득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MBC는 13일 오후 MBC 방송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BS가 방송권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행한 불법 행위에 대해 민 · 형사상 소송 제기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기로 했다"며 "곧 변호인단을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BC는 이날 발표한 '월드컵 방송권 협상에 대한 MBC의 입장'에서 "SBS가 방송 3사의 공동 협상에 참여해 입찰 금액을 알아낸 뒤 공동 중계하기로 한 방송 3사 사장단 합의를 위반하고 단독으로 코리아풀이 합의한 금액보다 더 높은 액수를 제시해 방송권을 따냈다"며 "이는 명백하게 MBC를 속인 것이고 MBC의 입찰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SBS의 방해로 입찰 권리조차 빼앗긴 MBC는 월드컵 방송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영업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MBC는 "소송 준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3월18일 방송통신위원회의 3사 협상 권고 이후에도 SBS가 협상 과정에서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어 협상이 진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SBS는 보도자료를 통해 "민 · 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은 합의서의 성격이나 SBS의 방송권 획득 과정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형사상 입찰 방해죄가 성립되려면 입찰 절차가 공식적으로 있어야 하지만 월드컵 방송권은 입찰 방식이 아니라 FIFA와의 개별 계약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