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무기 투자받아 인질 몸값으로 지난해 작년 1억5000만弗 벌어

오랜 내전 따른 가난과 무정부상태가 해적 양산
[Focus] 소말리아 해적은 주민 먹여 살리는 국민기업?
동화와 팬터지의 해적은 무법자이면서도 우리에게 꿈과 모험심을 불러일으키는 낭만적 존재다.

피터팬의 쿠크 선장이나 4탄까지 나온 할리우드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 선장이 그렇다.

해적은 이야기를 넘어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지난주 초 한국인 5명을 포함한 선원 24명이 탄 유조선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마셜군도 선적의 30만t급 초대형 유조선 삼호드림호는 이라크에서 원유를 싣고 페르시아만을 빠져나와 미국 루이지애나로 향하던 중이었다.

피랍 지점은 소말리아의 뿔이라고 불리는 아덴만 앞바다였다.

이곳에서 한국인이 탑승한 선박이 피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4월4일 원양어선 동원호가 이곳에서 조업 중에 납치당한 후 만 4년 동안 모두 6번이나 발생했다.

현대판 소말리아 해적의 창궐을 어떻게 봐야 할까?

⊙ 해적의 역사

해적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닌 약탈집단이다.

일설에 의하면 인류의 교통수단 역사상 바퀴 달린 수레보다 배의 발명이 먼저였음을 감안하면 배를 이용하는 해적이 일반 도적떼나 산적보다 훨씬 앞섰다고 한다.

해적의 활동무대는 주요 해상무역로를 기반으로 했다. 고대와 중세의 지중해 연안,그리고 대항해시대 이후의 카리브연안이 그렇다.

산물의 왕래가 활발한 곳에 해적들이 창궐했고,왕조는 이들을 상대로 제해권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금은의 확보를 최고가치로 쳤던 중상주의 시대에는 왕조 자체가 해적을 장려하고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14세기 이후 일본의 왜구가 유명하다.

특히 17세기 이후 왜구가 극성을 떤 것은 중국이 공식교역을 금지한 때문이었다.

다만 왜구는 일반 해적과 달리 해상약탈이 아니라 상륙약탈과 노략질을 주로 했다.

지난 세기부터는 대륙과 대양을 잇는 길목인 운하가 해적들의 주요목표가 됐다.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가 그랬고, 인도양의 말래카해협은 현재도 해적행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길이 970㎞,폭이 좁게는 2.5㎞밖에 안되는 수로는 하루평균 2000척의 선박이 통과하는 가장 붐비는 곳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남아 각국이 소비하는 중동 원유의 90% 이상이 이곳을 통과한다.

그러다보니 이곳에서는 해적에 의한 선박 공격행위가 연간 100건이 넘게 발생했다.

유조선을 억류하고 선원들을 인질로 잡아 몸값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세계교역의 생명선'의 안전문제가 국제적 도마에 오르자 인접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싱가포르 3국이 해적방지 협조에 나섰고,특히 안정적 원유 확보가 절박한 일본 같은 경우는 1억엔 상당의 고속정과 감시장비를 무상 제공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 지역의 해적행위는 최근 급감 추세에 있고,해적들의 소굴이라는 오명도 벗게 됐다.

⊙ 최근엔 소말리아 해적행위가 빈발

그렇다고 해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양안의 나이지리아와 소말리아가 해적행위 빈발지역으로 부상한 것은 1990년부터다.

특히 소말리아 앞바다의 해적행위는 2008년 이후 폭증하는 추세다.

2004년만 해도 10건에 불과했던 민간선박 피랍은 2008년 111건,2009년 217건에 달했다.

현재 선박 27척과 400여명의 선원을 억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양과 수에즈운하를 낀 홍해를 잇는 이 지역은 연 3만척 이상의 선박이 지나며,세계 원유의 25% 정도가 움직인다.

게다가 3000㎞에 달하는 긴 해안선은 해적들이 서식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소말리아 해적은 처음에는 고무보트를 타고 소총과 기관총만 든 '생계형 해적'이었지만,규모와 세력이 날로 강대해지고 있다.

요즘에는 위성통신과 위성항법장치(GPS)를 갖춘 모선을 타고 이동하며,대전차포까지 갖춘 쾌속정으로 대형 선박을 공격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화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선원을 인질로 잡고 석방대금을 현금으로 챙기는 것이 목적이다.

인질의 억류 기간 동안 발생한 숙식비와 선박 관리비까지 석방대금에 포함해 청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지난해 11월 피랍된 그리스 초대형 유조선 마란 센타우루스호는 선원 18명의 몸값으로 700만달러를 챙겼다.

지금껏 해적들에게 지불된 몸값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다.

현재 아덴만지역과 소말리아 앞바다는 해상안전 순찰해역으로 선포돼 있으며,유엔안보리결의(2008년 10월)에 의해 20여개국이 파견한 다국적 군함이 해상 감시활동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도 작년 3월 선박호송과 해적차단 등의 사명으로 청해부대를 파병해놓고 있다.

청해부대는 4500t급의 구축함 1척과 대잠헬기(LYNX) 1기,고속정(RIB) 3척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대해적 작전에 53회 참여해 해적퇴치 10회의 성과를 올렸다.

반면 유엔안보리 결의 이후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이 더욱 조직화되고 활동영역도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강화된 감시와 단속을 피해 해적 활동영역이 인도양과 오만 앞바다까지 넓어지고 있다.

이번 삼호드림호 피랍도 아덴만의 동남쪽 1500㎞ 지점에서 발생했다.

일종의 풍선효과인데,20여개국이 파견한 군함만으로 서유럽 전체 넓이에 맞먹는 해역을 지키기 어렵다는 얘기다.

⊙ '소말리아 해적기업'의 뿌리

해적의 발생배경은 소말리아의 오랜 내전 상황에 따른 무정부 상태에서 찾을 수 있다.

1991년 시아드 바레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후 정부는 통제력을 상실했으며,각 세력들이 발호하면서 내전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현재 10여개의 크고 작은 군벌들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해적들의 수입이 이들의 자금줄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해적단은 모두 군벌들과 연결돼 있으며,인질의 몸값은 군벌들에게 넘어가 마약사업 같은 곳에 투자된다. 군벌들은 그 수익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무기를 구입한다.

일설에는 내전 초기 정부가 부재한 상황에서 바다와 어장을 지키기 위한 어부들의 자위노력이 해적의 단초라는 분석도 있다.

산업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외국 선박과 어망을 탈취하는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보상금이 적지 않은 수입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너도나도 무장단속에 나섰고,이것이 단속 차원을 넘어 무차별 공격으로까지 비화했다는 것이다.

해적들은 지난해 인질 몸값으로 1억5000만달러 정도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다보니 소말리아에서 해적행위는 국민 70%가 지지하는 가장 큰 '사업'이자,일종의 지역공동체운동으로 간주되고 있다.

해적 근거지인 하라르데레에는 100여개의 '해적 기업'들이 상장된 일종의 증시가 있으며,주민들은 이들 기업에 돈이나 무기를 투자하고 이익을 받는다고 한다.

지난해 해적 근거지의 한곳인 하라르데레에는 100개가 넘는 '해적 기업' 들에 돈이나 무기를 투자하고 이익을 배당받는 증시가 열렸다고 한다.

우종근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