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에 빠진 포드와 인수 계약… 헐값 논란도
[Global Issue] 지리(吉利), 볼보를 먹다… 질주하는 중국 자동차 산업
"찢어지게 가난한 농촌 총각이 고귀한 핏줄의 스웨덴 공주를 아내로 맞다."

중국 지리(吉利)자동차가 미국 포드의 자회사인 스웨덴 볼보를 18억달러(약 2조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던 지난달 28일 중국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하며 묘사한 말이다.

설립된 지 12년밖에 안 된 신생 중국 업체가 83년 전통의 세계적인 브랜드파워를 자랑하는 자동차 명가를 품에 안았기 때문이다.

지리는 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업체로,1~1.8ℓ급 엔진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

영국 택시 제조업체인 망가니스 브론즈 지분 51%를 인수했으며,미국 진출도 추진 중이다.

지리와 포드는 28일 스웨덴 볼보자동차 본사에서 최종 인수계약서에 서명했다.

유럽을 순방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스웨덴을 방문하던 날 이뤄진 것이다.

양사는 올 3분기(7~9월)까지 인수작업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지리는 아울러 협상의 최대 쟁점이었던 볼보 차종의 지식재산권을 모두 이전받기로 해 인수합병(M&A) 효과를 극대화했다.

지리의 리수푸 회장은 "볼보는 지금까지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였다. 이제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우리에서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지리의 볼보 인수 계약은 중국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 규모다.

하지만 포드가 10년 전 볼보를 인수할 당시 가격이 64억9000만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논의 중인 가격은 그야말로 '헐값'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포드는 지난해 10월부터 볼보를 지리차에 매각키로 하고 협상을 벌여왔다.

이번 계약으로 포드는 1999년 인수 후 지속해 온 볼보와의 협력 관계를 끝내게 됐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악인 146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난을 겪어온 포드는 작년 6월 재규어와 랜드로버 브랜드도 17억달러를 받고 인도 타타자동차에 매각했다.

포드는 앞으로 링컨 머큐리 등 핵심 브랜드 육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리는 해외 브랜드 강화와 유럽 시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볼보 인수를 적극 추진해 왔다.

인수금액 중 10억달러는 중국 은행권 대출로 조달할 예정이다.

지리는 볼보 인수 후에도 단기적으로는 중국 내 볼보 승용차 공장 설립을 추진하지 않을 계획이다.

볼보는 현재 중국 창안(長安)자동차와 합작을 통해 중국에서 일부 승용차 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리차의 볼보 인수를 계기로 그동안 공식 관용차로 사용해 온 폭스바겐 아우디A6를 볼보로 대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리는 볼보 인수를 계기로 작년 33만대 수준이던 판매량을 2015년까지 200만대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또 중국 시장을 볼보의 '제2 홈마켓'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지리는 볼보를 모회사와 별도로 운영할 계획이다.

렉스 케서마커스 볼보 해외사업담당 사장은 "지리가 볼보를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한편 스웨덴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파이낸셜타임스는 "전 세계 자동차시장의 무게중심이 미국과 서유럽에서 중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했다.

지리의 볼보 인수 성공과 함께 이번 작업을 추진한 47세의 젊은 경영자인 리수푸 지리 회장에게도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고 있다.

리 회장은 중국에서 '자동차에 미친 남자(汽車狂人)'로 불린다.

그의 피에는 저장 상인의 기업가 정신이 배어 있다.

저장성의 가난한 산촌인 타이저우에서 태어난 그는 19세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120위안(약 2만원)으로 카메라를 사고 거리의 사진기사가 됐고, 그때 모은 종자돈으로 자신의 사진관을 열어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폐기물에서 금을 분리하는 사업에 손을 댄 데 이어 냉장고에서 오토바이, 1998년 자동차 생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창업 행보를 계속했다.

"4개의 바퀴 위에 소파를 얹는다고 자동차가 아니다"는 주위의 만류도 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3년 전 런던 명물택시 블랙캡을 생산하는 망가니스 브론즈를 사들인 데 이어 올해 호주 변속기업체 DSI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행보도 계속했다.

리 회장이 롤스로이스 팬텀을 닮은 '지리-GE'를 지난해 4월 상하이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짝퉁'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중국 언론은 저가 차에 머물던 토종업체가 고급차 시장에 진입하고 그것도 독자브랜드로 승부를 건다며 리 회장을 한껏 띄웠다.

중국 언론은 그를 민족공업 발전에 지극 정성을 다하는 기업인으로 묘사한다.

인재 양성에 대한 열의도 큰 평가를 받는다. 그가 세운 베이징지리대학은 민간이 세운 최초의 대학이다.

리 회장은 2005년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자동차 수준은 한국에 10년 뒤져 있지만 5~8년이면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4년이 흐른 지금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얘기한다.

중국의 해외 자동차기업 M&A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중국 쓰촨성의 건설중장비회사 텅중(騰中)중공업은 미 제너럴모터스(GM) 산하의 브랜드 '허머'를 1억6000만달러에 인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작년 말 GM과의 최종협상까지 끝냈지만, 지난 2월 중국 정부가 인수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결국 무산됐었다.

또 베이징자동차는 작년 12월 GM의 스웨덴 자회사 사브의 차량제작 관련 지식재산권 일부를 2억달러에 사들였다.

최근엔 중국 전기차업체 BYD가 독일 다임러의 최고급 브랜드 마이바흐 인수를 검토 중이란 소문이 돌았다가 지난달 30일 양사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강력 부인하기도 했다.

다임러와 BYD는 현재 전기차 개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지리의 볼보 인수에 대한 평가는 환영이 대세지만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중국 자동차기술연구센터 자오항 주임은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져온 기회를 잘 이용한 것"이라면서 "볼보를 인수함으로써 지리차는 유럽시장 진입의 교두보를 확보했고 중국 자동차산업이 안전 및 환경보호기술 등 여러 면에서 실력을 제고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륭궈청 연구원도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그동안 갈망했던 지리의 브랜드 가치 제고와 국제 판매 루트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경제학자인 마광위안은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탄생한 볼보 차량은 중국시장에는 맞지 않는 점이 많다"면서 "아직 20보를 걸었다고밖에 할 수 없고 앞으로의 80보가 성공하려면 난관이 아주 크다"고 분석했다.

궈타이증권의 장신 애널리스트도 "적자상태인 볼보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자금이 더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