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적대적 인수합병 막을 기업의 경영권방어 수단”

반 “부실경영 책임 물을수 없어 시장경제에 악영향”

기업 경영진이 적대적 인수 · 합병(M&A) 시도에 맞설 수 있도록 '포이즌 필(poison pill · 독약 처방)' 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포이즌 필은 경영권을 노리는 공격자를 제외한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싸게 주식을 살 수 있는 신주인수선택권을 줌으로써 경영권을 방어해주는 제도다.

법무부는 외환위기 이후 경영권 보호 제도가 많이 폐지됨에 따라 상장사들이 경영권 방어에 몰두하며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해 이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제도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드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국내 기업의 대부분이 재벌 총수 등 지배주주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는 우리 현실에서 포이즌 필 제도 도입은 기존 재벌 총수 일가에게 경영 능력과 무관한 방패막이를 제공함으로써 사실상 '재벌 특혜 정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우리의 경우 지난 2000년 이후 적대적 기업 인수 시도 사례는 16차례 정도에 불과할 뿐 아니라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로 기업들은 계열회사 등의 내부 출자를 통해 보다 손쉽게 경영권 방어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인수 · 합병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적대적 인수 · 합병이 쉬워진 만큼 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하면 경영자들이 인수 · 합병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면서 기업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기업 지배구조 등으로 인해 이 제도 도입으로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포이즌 필 제도 도입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적대적 인수 · 합병에 대비한 기업 경영권 방어 수단"

포이즌 필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자본시장 개방을 계기로 외국인의 국내 기업 지분율이 크게 높아진 만큼 적대적 인수 · 합병으로부터 기업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제도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이 이미 포이즌 필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는 너무 늦은 감조차 없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법 개정안은 포이즌 필 도입을 위한 조건을 너무 까다롭게 정해 과연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고 꼬집는다.

포이즌 필을 발동하려면 회사 정관에 이를 도입해야 하고,정관 도입은 주주총회 특별 결의(출석 주주 의결권 3분의 2,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 찬성)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까닭이다.

대부분 선진국들이 주식 1주에 2주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와 단 1주만으로도 주총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까지 허용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다른 경영권 방어 수단들도 원천 봉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 반대 측, "재벌 지배구조를 더 왜곡시키는 결과 몰고올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적대적 인수 · 합병 대상이 될 수 있는 국내 기업은 대부분 재벌 총수 등 지배주주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 있으며 이사회도 기업 자체의 이익보다는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에 봉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포이즌 필을 도입하면 재벌의 지배구조를 더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기업 인수 · 합병은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는 순기능을 한다"며 적대적 인수 · 합병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포이즌 필을 도입할 경우 부실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돼 시장경제 발전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한다.

게다가 포이즌 필 도입을 투자 활성화와 연결짓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우리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는 경기와 수익모델,즉 투자환경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정부가 '경영권 방어에 신경쓰느라 투자를 못한다'는 재계 주장을 포이즌 필 도입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는 얘기다.

⊙ 포이즌 필 제도 남용 막을 실효성 있는 장치부터 마련해야

포이즌 필은 특정 주주를 차별하는 것이므로 제도 도입과 운영에 최대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기존 경영진이 자의적으로 포이즌 필을 남용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경영권 보호가 지나쳐 무능한 경영진 퇴출과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어려워지면 경제의 효율성과 역동성이 떨어지고 외국 투자자들에게 '코리아 디스카운트' 빌미를 줄 수도 있는 까닭이다.

상법 개정안은 포이즌 필 남용을 막기 위해 신주인수선택권 도입 때 주총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회사 가치와 주주 일반의 이익을 유지 · 증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적대적 공격자에게 차별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은 자의적 해석 논란을 불러올 소지가 많다.

사외이사 견제가 세고 오너 지배가 드문 미국과 우리를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다.

포이즌 필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견제 장치부터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포이즌 필 제도

적대적 인수 · 합병이나 경영권 침해가 발생하는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싼 값에 발행해 기존 주주의 지분율을 높여줌으로써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으로 신주인수선택권으로 불린다. 인수자가 대상 회사 이사회의 의사에 반해 일정 지분 이상의 주식을 취득할 경우 인수자 이외 주주에게 미리 정한 낮은 값으로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차등의결권 제도

주식 종류별로 의결권 수에 차등을 두는 것을 말한다. 현행 상법 규정으로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따라 1주에 1개 의결권만을 부여하고 있고,이는 정관으로 변경할 수 없으므로 차등의결권 부여는 불가능하다.

황금주 제도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후에도 자산 처분, 경영권 변동, 합병 등 주요 의사결정시 국가 이익이나 사회 후생에 어긋나지 않도록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특별주를 보유하는 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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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3월3일자 A2면

정부는 기업의 적대적 M&A(인수 · 합병)를 방어하는 수단인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2일 정운찬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신주인수선택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의결,조만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포이즌 필이란 적대적 M&A 상황에서 공격자를 제외한 주주들에게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줘 공격자의 지분율을 낮춤으로써 적대적 M&A 시도를 저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는 1980년대 초 처음 등장했으며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에서 시행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주식의 3분의 2 이상,총 주식의 3분의 1 이상 찬성)로 회사 정관에 신주인수선택권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신주인수선택권을 부여할 때는 이사회 총수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도록 했다.

또 '회사가치 및 주주 일반의 이익을 유지 · 증진시키기' 위해 필요하고,'제3자가 중요 경영사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등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공격자의 신주인수선택권 행사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발동요건을 엄격히 제한했다.

회사는 이사회 결의 또는 주주총회 일반결의(출석주식의 2분의 1 이상,총 주식의 4분의 1 이상 찬성)로 신주인수선택권을 소각할 수 있으며,공격자도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해 소각을 제안할 수 있다.

장진모 한국경제신문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