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꿈나무들이 우리 한을 풀어줄 것이다."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올해,경술국치의 잊을 수 없는 상처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분들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12~13살의 어린 나이로 일본의 '미쓰비시 군수공장' 등으로 끌려가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근로 정신대 할머니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해방 후 한국에 돌아와 일본에 갔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고 살아왔다. 정부는 그동안 이 할머니들에게 변변찮은 보상 한 번 해 준 적 없으며,일본 측 역시 자신들은 소녀들을 강제 동원한 적이 없다며 발뺌해왔다.

그러다가 증거 문서가 발견되자 일본은 작년 12월 근로 정신대 할머니 1인당 99엔,지금의 환율로 우리나라 돈 1300원에 해당하는 돈을 후생연금 탈퇴수당금으로 건넸다.

이러한 일본의 무성의한 조치와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힘겨운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들이 경술국치 100주년의 3 · 1절을 맞이하여 광주 NGO센터에서 광주시민들과 만남을 가졌다.

"내가 그 의원 만나기 전에 근처 매점에 갔어요. 99엔으로 뭘 살 수 있나,그런데 껌 한통이 110엔 하더라고,99엔으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내가 그 놈들한테 돈을 딱 던져주면서 도로 가져가라 그랬어요. 가서 이걸로 너네 자식들 껌이나 사줄 수 있느냐 그랬어요.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다,일한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내가 딱 엉덩이를 보이면서 봐라,이게 내가 너네 나라에서 60년 넘게 노예처럼 맞아가면서 내가 이렇게(…) 그래서 내가 마지막에는 그랬어요. 한국이 60년 전 그 한국이 아니다. 내가 죽더라도 우리나라의 꿈나무들,청소년들이 많이 있다. 우리 시민들이 지금 내 한을 풀어주려고 함께하고 있다. 우리 꿈나무들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랬다고(…)."

지난달 22~25일 '근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함께 일본에 가서 사죄와 전후 과거사 보상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및 일본의 주요 의원들과의 만남을 가진 양금덕 할머니께서는 그 날의 일을 회상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초등학생 중 3 · 1절이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이 약 40%에 달한다고 한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느끼는 일제 강점기란 그저 역사책에서 배우는 몇 장의 시간들에 불과하다.

이는 3 · 1절,8 · 15 광복절 등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 보는 기념일들의 의미가 점점 퇴색하고 그저 쉬는 날에 그치기 때문이다.

꽃 같은 청춘을 일본에 바치고 강제로 노동력을 착취당했으며 한국에 돌아와서는 온갖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할머니들은 '아이스크림처럼 역사를 골라먹는' 정부에 변변찮은 보상조차 받지 못했다.

그런 이들이 이제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것은 '시민,그리고 청소년'이다.

지난 60여년간 아픔을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살아온 이들에게 우리는 지금까지 '무관심'이라는 또 하나의 상처를 준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처럼 잊혀져가는 과거사 문제를 단순히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국민 전체의 문제임을 깨닫고 각 학교나 단체,가정에서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교육과 3 · 1절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김신영 생글기자(광주 장덕고 2년) 02035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