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저출산대책 앞세워 여성의 선택권 짓밟으면 안돼”

반 “낙태는 범죄와 다를바 없어 태아의 생명권 존중해야”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불법낙태 시술 의혹이 있는 동료 의사들을 고발하자 여성계가 이에 강력 반발하고 나서 낙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낙태를 반대하는 쪽은 "낙태 문제가 오죽 심각했으면 의사들이 동료를 고발했겠느냐"며 "인간의 생명은 존엄한 것으로 어떤 경우에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낙태를 찬성하는 측은 "우리 사회가 아이를 길러주지도 않으면서 왜 여성들에게 낳으라고 강요하느냐"며 여성의 신체 자유에 대한 권리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 쪽에서는 태아의 생명권을, 또 다른 쪽에서는 산모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우선해야 한다며 서로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산모의 건강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금지하고 있다.

법으로는 낙태금지 국가인 셈이다. 하지만 낙태 건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결국 법과 현실의 괴리는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나 산모를 모두 잠재적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형편이다.

엄연한 불법이 묵인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이고,더구나 신성한 생명과 직결된 일이라는 측면에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번에 일부 의사들이 낙태시술 병원을 검찰에 고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일 것이다.

문제는 낙태 시술의 절반 가까이를 미혼모 등의 원치 않는 임신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낙태에 대한 단속과 처벌에 나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점이다.

낙태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낙태 허용범위 넓혀도 결코 만연하지는 않아"

낙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저출산 극복이라는 논리에 밀려 여성 낙태권이 짓밟히고 있다"며 "낙태는 여성의 권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성들은 성관계와 임신 · 출산 등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스스로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얘기다.

특히 완벽한 피임법이 없는 상황에서 낙태를 금지하면 결국 해외 원정낙태나 약물 낙태,무자격자에 의한 '뒷골목 낙태'와 태아 유기 등 부작용을 불러올 게 뻔하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선 한국 여성들도 낙태선박을 타길 바라느냐고 되묻는다.

이들은 또 "낙태 관련법의 궁극적 목표는 낙태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며 찬반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관련 법을 운용할 일은 아니라고 꼬집는다.

낙태금지 만능의 부작용을 감안하고,사회경제적 통념과 출산환경 수준에 맞는 낙태 관련 규정을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낙태 문제는 저출산 대책으로 활용해서도 안 되며,임신 출산 낙태에서 여성이 신중하게 내린 자기 결정권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 반대 측, "낙태 폭넓게 허용하면 태아 생명권 위협받아"

낙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많은 나라에서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낙태가 범죄이기 때문"이라며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 모자보건법이 일정한 경우 임신부에게 선택적인 낙태를 허용하고 있음에도 불구, 일부에서 그 외의 낙태까지 자유롭게 허용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고 부당하다고 꼬집는다.

단지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그리고 사회적인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유 때문에 발생한 범죄를 용서하고,나아가 아예 모든 유사한 상황을 법률로 허용하자는 논리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이들은 또 낙태는 타인인 태아의 생명을 침해하는 행위이므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여러 상황이 다른 데도 어느 나라는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것은 곤란하며, 불법낙태를 단속하면 음성적인 낙태가 늘 것이라는 주장도 궤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 사회적 합의점 찾고 제도개선에 힘써야

낙태는 태아의 생명뿐만 아니라 여성의 건강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불법낙태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공공연한 낙태시술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이 능사일 수 없는 이유다.

법적 처벌을 피해 낙태시술이 무면허자에 의해 몰래 이뤄진다면 여성의 건강은 보장될 수 없으며 특히 경제적 부담도 커질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태아 생명과 여성 건강보호를 위해 불법낙태를 줄이는 방법을 찾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결론이다.

물론 불법낙태 원인이 복합적인 데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를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엇갈리는 만큼 대책마련이 쉽지 않다.

법과 현실의 괴리도 문제다.

하지만 골치 아프다고 방치할 일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머리를 맞대고 사회적 공감대를 도출하기 위한 진지한 토론과 제도개선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성교육 등을 통해 원치 않는 임신을 최소화하되 아이를 낳게 되는 경우 이른바 '싱글맘'이나 '미혼모'들이 편견 없이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양육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모자보건법

모성 및 영유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건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꾀함으로써 국민보건 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제14조에는 본인 또는 배우자에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에 의한 임신, 인척 간 임신, 임신이 임산부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 의사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낙태선박

네덜란드의 급진적 낙태옹호단체인 '위민온웨이브스(WoW)' 대표이며 의사인 레베카 곰퍼르츠가 전 세계 낙태 금지국을 직접 찾아다니며 낙태수술을 원하는 여성을 배에 태우고 공해로 나간 뒤 약물을 이용해 낙태시술을 한 데서 나온 용어이다.

싱글맘

양부모가 아닌 어머니뿐인 가정을 말하며 '비혼모' 등 자발적 싱글맘과 미혼모 등 비자발적 싱글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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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월 4일자 보도기사

서울중앙지검은 불법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의 고발 사건을 의약 전담부서인 형사2부(안상돈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고 4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낙태는 우리 사회에서 찬반 논쟁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예민한 문제인 만큼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신속하게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일선 산부인과나 미인가 의료업소에서 낙태가 공공연하게 시술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고발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불법 낙태 전반에 대해 폭넓은 수사를 벌이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 근절운동을 하는 의사들 모임인 '프로라이프(Prolife) 의사회'에 따르면 낙태 시술 산부인과가 고발된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인 이날 5건의 낙태 수술 제보가 접수됐으며 상담전화도 폭주하고 있다.

의사회는 3일 불법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산부인과 3곳을 검찰에 고발,낙태 문제에 대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