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없다면 돈을 어디에 맡기고 어디서 빌릴까?
[경제교과서 친구만들기] (46) 금융이야기 - ③ 은행의 역할과 필요성
무언가의 존재가치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만약 그것이 없어진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불편한 점들이 생겨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같은 접근 방식은 오늘의 주제인 은행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데도 유효한 방법일 것이다.

만약 은행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어떠한 불편함에 직면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 봄으로써 은행이 왜 필요하며,구체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학기를 맞이하는 학생의 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은행이 없다면 등록금을 납부하기 위해서 집 앞에 있는 은행은 놔두고 학교까지 직접 가야 할 것이다.

또한 새 학기를 대비한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해서도 인터넷 강의를 제공하는 회사에 가서 직접 돈을 납부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가 새 학기부터 용돈을 올려주기로 하셨다면,앞으로 용돈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도 더욱 신경이 쓰일 것이다.

위의 상황에서 우리는 은행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시적인 기능이자 필요성이 자금의 보관과 결제 기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은행의 형성과정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초창기 은행은 12세기 베니스와 제노아에서 설립되었다.당시 은행들은 선박을 타고 먼 거리를 돌아다니며 상거래를 해왔던 상인들을 위해 그들의 자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객주(客主),여각(旅閣)에서 상인들이 가져온 물건을 비롯한 자금의 보관 업무 및 결제 업무 등을 담당한 바 있다.

그리고 곧이어 은행 역할을 해온 이들을 통해서 예금의 일정액이 구두 지시,가끔은 서면 지시를 통해서 상거래에 따라 다른 계좌로 이체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상거래를 통해 얻은 주화나 자금을 다시 가지고 다니는 데 많은 위험과 비용을 수반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이러한 번거로움 없이 은행에 자금을 맡겨두었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믿고 거래하는 신용거래를 선호하게 된다.

당시 상인들이 이러한 신용거래를 선호하게 된 또 다른 이유로는 초창기 화폐인 주화가 균일하지 못한 데에서도 기인한다.

당시 주화는 그 크기와,무게,금이나 은의 함량 등이 지역,주조시기 등에 따라 서로 달랐으며 위조 또한 성행하였다.

때문에 신뢰하기 어려운 주화를 근거로 하여 거래하는 데는 문제가 많아 상인들은 점점 신용거래에 의존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자금의 보관과 결제 업무에 이어 자연스럽게 대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초창기 은행 역할을 해오던 이들은 상인들이 직접 막대한 자금을 직접 들고 돌아다니며 상거래를 하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자금의 대부분을 맡기고 자신들이 발행해 주는 보관증서를 근거로 거래하는 것을 휠씬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상인들이 보관해 둔 자금을 바탕으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때로는 상인들에게 물건이 판매되기 전에 물건을 담보로 잡고 자금을 융통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상거래로 발생한 자금뿐만 아니라 여윳돈을 굴리길 원하는 사람들도 돈을 가져와 대출금으로 사용해 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대출 업무에 이용하여 신용을 창출하는 행위와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초창기 개인들에 의해 설립되어 활동한 은행들은 19세기 초의 경기침체기를 거치면서 파산하게 된다.

은행의 파산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즉 신뢰할 수 있는 은행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지게 된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여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은행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 여러 사람이 출자하여 대규모의 자본금을 갖춘 회사 형태의 은행들이 출범하거나 소규모의 개인은행들이 합병하여 대규모 은행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은행의 대규모화는 가능한 대출 금액의 규모도 키우게 되어 산업과 기업의 대형화에 기여하게 된다.

규모가 커진 은행들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비약적으로 커진다.

대형화된 은행에서 수행하는 대출 관련 업무는 시중의 통화량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는 다시 투자,소비 등의 경제활동과 물가와 이자율 등의 경제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가 경제정책과 금융감독기관 등을 통해서 직·간접적으로 은행의 경영과 운영 방식을 통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경우에 따라서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직접 은행을 설립해 운영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앙은행이다.중앙은행은 시중에 유통되는 통화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발권 기능을 가지고 있어 직접 화폐를 공급할 수도 있으며,재할인율과 지급준비율 등의 방법을 통해 일반은행의 대출 환경을 조정하여 통화량과 물가를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또한 수출입 환경을 좌우하는 환율을 안정시키는 기능 또한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한국은행이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 다른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경우 산업개발과 국민경제 발전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정부의 목적 아래 설립된 은행으로 기업의 설비자금 공급,성장동력산업 육성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일반은행에서는 제공하기 어려운 장기 신용을 제공하여 수출입 활동과 해외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은행이다.

농업 축산업과 수산업 금융을 취급하는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신용사업부문과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신용사업부문도 특수은행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특수은행들은 일반적인 은행들이 수익성과 재원조달의 문제로 인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운 분야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초창기 은행과 현대의 은행의 모습이 많이 다르듯이,은행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경제 환경이 변하고 있고,각 경제주체들이 요구하는 금융서비스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 통신 환경의 발달과 함께 보다 편리한 지급 방법으로 폰뱅킹,신용카드,인터넷뱅킹 서비스가 보편화되었고,대출 위험 관리 기술의 발달과 고객의 신용도를 측정하는 노하우의 축적으로 인해 다양한 방식의 점차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급보증 수단과 방법도 다양화되고 있다.

은행의 진화는 기존의 은행업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의 은행은 과거와는 달리 고객의 금융서비스 요구에 부응하는 수준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판단 아래 부실기업인수,기업인수합병,부동산 투자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새로운 업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은행의 업무와 형태가 아무리 변해왔다 하더라도 은행의 근본적인 기능은 각 경제주체들의 유휴자금을 모아,이를 필요로 하는 경제주체에게 공급해주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박정호 KDI 책임전문원 aijen@k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