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기분이 흐리멍덩한 이유는,어쩌면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의 설날이 우리에게는 둘이나 있어 오히려 이것도 저것도 설 같지 않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마 유치환은 1963년 내놓은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 설을 두 번에 걸쳐 쇠는 탓에 정작 이도저도 설 같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것을 그는 '음력 과세' '양력 과세'라고 했다.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 또는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이 날은 정월 초하룻날,즉 음력으로 새해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설'이나 '설날'이란 말은 이 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정월(正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첫째 달 첫날을 '정월 초하루'라고 한다.
이 날은 또 한자로 '으뜸 원(元)'이나 '머리 수(首)''처음 초(初)' 자를 써서 '원단(元旦: 설날 아침),원일(元日),세수(歲首),정초(正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유치환이 말한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를 함께 묶어 '이중과세(二重過歲)'라 한다. '설을 두 번에 걸쳐 쇠다'는 뜻이다.
세금을 이중으로 매긴다는 뜻의 '이중과세(二重課稅)'와는 한글 표기가 같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설을 쇠는 것을 '과세(過歲)'라고 한다.
예전에 정부에서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공식화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민간에서는 뿌리 깊은 전통에 따라 여전히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에 걸쳐 설을 쇠는 꼴이 됐는데 양력의 것을 신정(新正),음력의 것을 구정(舊正)이라 해 구별했다.
우리나라에서 이중과세의 문제점은 근대 이후 100년 이상을 끌고 온 해묵은 과제이다.
우리말에서 양력설과 음력설을 낳고,신정과 구정이란 말을 구별해 쓰게 된 것도 '이중과세'란 단어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이들은 모두 사전에 올라 있는 정식 단어이다.
<한국세시풍속사전> 등에 따르면 '양력설'은 우리나라에 태양력 제도가 도입되면서 생겨났다.
태양력은 1894년부터 1896년까지 3차에 걸쳐 추진된 개혁운동인 갑오개혁 때 도입됐다.
당시 재래의 문물제도를 근대식으로 고치는 혁신을 사회 전반에 걸쳐 단행했는데,이때 도입된 제도가 태양력 사용,종두법 시행,단발령 등이다.
그 중 태양력은 1896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이것이 '양력설'의 시작인 셈이다.
이후 양력설을 장려한 나라 정책이 1980년대 말까지 이어졌으나 뿌리 깊은 음력설을 대체하지 못했다.
결국 1985년 정부는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음력설을 다시 인정한 데 이어 1990년부터는 사흘 연휴와 함께 공식적으로 '설날'이란 이름을 복원했다.
그러니 요즘 양력설이니 음력설이니,또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이중과세를 하던 시절의 낡은 명칭일 뿐이다.
지금은 우리 전통 명절로 쇠는 날은 음력 1월1일 하나뿐이므로 이날이 곧 설이다.
'설'이란 말은 한 해의 첫날을 명절로 부르는 것이므로 '설'이란 말 자체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양력설,즉 양력 1월1일은 '명절로서의 설'인 게 아니라 단지 '한해가 시작하는 첫날'이라 쉬는 공휴일일 뿐이다.
이는 우리 전통풍습에서 양력 1월1일은 설날이 아니므로 당연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설'이란 말 자체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므로 '음력설'이란 것도 군더더기 표현일 뿐이다.
그냥 '설'이라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과거에 오랫동안 양력설 쇠기를 권장해온 영향으로 지금도 실제로 양력 1월1일 설을 쇠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택이지 우리 민족의 명절로서의 '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설날을 '구정'이라 하는 것도 바른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정'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옛 설날' '구식 설날'이란 뜻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정'이란 말도 '구정'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역시 버려야 할 말이다. '새해 첫날'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새해에 들어선 덕담을 나누는데,대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십시오" 정도가 흔한 표현인 것 같다.
예전에는 "과세 안녕하십니까" "만수무강하십시오" 같은 게 많이 쓰였다.
하지만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요즘은 "오래오래 사세요/만수무강하십시오" 같은 덕담도 자연스레 사라져 가고 대신에 건강이나 복을 비는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조항범 충북대 교수(국어학)는 저서 <말이 인격이다>에서 세배하고 난 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보다는 "강녕하십시오"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청마 유치환은 1963년 내놓은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에서 설을 두 번에 걸쳐 쇠는 탓에 정작 이도저도 설 같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것을 그는 '음력 과세' '양력 과세'라고 했다.
'설'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설' 또는 '설날'은 추석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절이다.
이 날은 정월 초하룻날,즉 음력으로 새해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설'이나 '설날'이란 말은 이 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정월(正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첫째 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첫째 달 첫날을 '정월 초하루'라고 한다.
이 날은 또 한자로 '으뜸 원(元)'이나 '머리 수(首)''처음 초(初)' 자를 써서 '원단(元旦: 설날 아침),원일(元日),세수(歲首),정초(正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유치환이 말한 '음력 과세'와 '양력 과세'를 함께 묶어 '이중과세(二重過歲)'라 한다. '설을 두 번에 걸쳐 쇠다'는 뜻이다.
세금을 이중으로 매긴다는 뜻의 '이중과세(二重課稅)'와는 한글 표기가 같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설을 쇠는 것을 '과세(過歲)'라고 한다.
예전에 정부에서 양력 1월 1일을 명절로 공식화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민간에서는 뿌리 깊은 전통에 따라 여전히 음력 1월 1일에 설을 쇠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에 걸쳐 설을 쇠는 꼴이 됐는데 양력의 것을 신정(新正),음력의 것을 구정(舊正)이라 해 구별했다.
우리나라에서 이중과세의 문제점은 근대 이후 100년 이상을 끌고 온 해묵은 과제이다.
우리말에서 양력설과 음력설을 낳고,신정과 구정이란 말을 구별해 쓰게 된 것도 '이중과세'란 단어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
이들은 모두 사전에 올라 있는 정식 단어이다.
<한국세시풍속사전> 등에 따르면 '양력설'은 우리나라에 태양력 제도가 도입되면서 생겨났다.
태양력은 1894년부터 1896년까지 3차에 걸쳐 추진된 개혁운동인 갑오개혁 때 도입됐다.
당시 재래의 문물제도를 근대식으로 고치는 혁신을 사회 전반에 걸쳐 단행했는데,이때 도입된 제도가 태양력 사용,종두법 시행,단발령 등이다.
그 중 태양력은 1896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이것이 '양력설'의 시작인 셈이다.
이후 양력설을 장려한 나라 정책이 1980년대 말까지 이어졌으나 뿌리 깊은 음력설을 대체하지 못했다.
결국 1985년 정부는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음력설을 다시 인정한 데 이어 1990년부터는 사흘 연휴와 함께 공식적으로 '설날'이란 이름을 복원했다.
그러니 요즘 양력설이니 음력설이니,또는 신정이니 구정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이중과세를 하던 시절의 낡은 명칭일 뿐이다.
지금은 우리 전통 명절로 쇠는 날은 음력 1월1일 하나뿐이므로 이날이 곧 설이다.
'설'이란 말은 한 해의 첫날을 명절로 부르는 것이므로 '설'이란 말 자체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양력설,즉 양력 1월1일은 '명절로서의 설'인 게 아니라 단지 '한해가 시작하는 첫날'이라 쉬는 공휴일일 뿐이다.
이는 우리 전통풍습에서 양력 1월1일은 설날이 아니므로 당연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설'이란 말 자체가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므로 '음력설'이란 것도 군더더기 표현일 뿐이다.
그냥 '설'이라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과거에 오랫동안 양력설 쇠기를 권장해온 영향으로 지금도 실제로 양력 1월1일 설을 쇠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택이지 우리 민족의 명절로서의 '설'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설날을 '구정'이라 하는 것도 바른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구정'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옛 설날' '구식 설날'이란 뜻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정'이란 말도 '구정'이 있을 때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역시 버려야 할 말이다. '새해 첫날'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새해에 들어선 덕담을 나누는데,대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십시오" 정도가 흔한 표현인 것 같다.
예전에는 "과세 안녕하십니까" "만수무강하십시오" 같은 게 많이 쓰였다.
하지만 이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요즘은 "오래오래 사세요/만수무강하십시오" 같은 덕담도 자연스레 사라져 가고 대신에 건강이나 복을 비는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조항범 충북대 교수(국어학)는 저서 <말이 인격이다>에서 세배하고 난 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보다는 "강녕하십시오"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