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교육에 열의있는 최고경영자에도 문호 개방해야”

반 “교육행정 이끌어갈 교육감은 교육전문가가 당연”

교육감선거 출마에 필요한 교육경력 조건의 삭제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심의과정에서 시도 교육감 선거 입후보 요건으로 교육경력을 요구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교육감 후보자 자격 중 '후보 등록 개시일로부터 과거 2년간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는 '과거 6개월간'으로 수정해 논란을 빚고 있다.

물론 교육감 후보의 교육경력 제한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쪽에서는 교육감으로서의 전문성과 능력만 갖추면 누구나 입후보할 수 있도록 자격 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일정 수준의 교육경력은 교육감의 기본 자질이라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결국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은 2007년 '일반인도 교육감에 입후보할 수 있게 해달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헌재는 지난해 9월 "교육감 경력제한 규정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이 나온 지 불과 몇 달 만에 교과위가 아예 교육감 경력제한조항 자체를 법률에서 삭제함으로써 다시 논란에 불을 지핀 셈이다.

정치권은 6월에 실시되는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의 현행 출마 자격을 대폭 완화하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교육에 열의가 있는 유능한 인사들이 입후보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측과 "교육경력을 삭제하려는 것은 교육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측이 팽팽히 맞서 있다.

교육감 후보의 교육경력 조건폐지 논란을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교육에 열의있는 최고경영자에도 문호를 개방해야"

교육감 선거 출마자의 교육경력 조건 삭제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우리 교육의 당면 과제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이루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육성하는 일"이라며 교사와 교수는 물론 교육에 열의를 갖고 청렴하면서 도덕성이 검증된 인사들이 입후보할 수 있도록 문호를 적극 개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개혁 기수로 떠오른 미셸 리 미국 워싱턴DC 교육감도 3년간 초등교사를 했을 뿐이며 성공한 교육사업가 출신이라며 우리에게도 전문성을 가진 CEO(최고경영자)형 교육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교육감의 업무는 학생을 대상으로 현장에서 교육을 실시하는 게 아니고 교육행정을 다루는 것"이라며 경력을 기준으로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게다가 고작 5년 경력의 교사와 학교행정실 직원도 교육감이 될 수 있도록 한 현행 자격요건은 객관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합리성 타당성도 없다고 지적한다.

교육의 전문성과 교육행정의 전문성은 반드시 구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교육사무 맡는 교육감에 전문성 요구는 당연한 일"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교육감의 법정 직무인 '교육과정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직접 가르쳐 본 경험이 필요하다"며 후보자 자격으로 교육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교육감의 자격기준을 폐지하면 교육을 다른 지방사무로부터 분리할 필요가 없어지고,교육감을 따로 뽑아야 할 이유도 없으며,결국 헌법에 규정된 지방교육자치도 실현할 수 없게 된다는 논리다.

특히 후보자 자격으로 5년 이상의 교육경력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공무원 이외 사람들의 입후보를 제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지방교육자치의 구현과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은 반헌법적이며 비교육적이므로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교육감 후보자의 교육경력 기준을 폐지하거나 완화할 게 아니라 오히려 10년 이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교육이 정치판에 휘둘리는 사태가 발생해서는 결코 안될 일

현행 교육감 선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엄청난 선거 비용을 들이고도 투표율은 20%에도 못 미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효율성과 대표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후보 자격을 교사나 교수 등 교육공급자들로 제한함으로써 교대나 사대를 중심으로 한 '순혈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런 사태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권이 나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이란 헌법정신을 훼손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교육감의 교육 경력을 요구한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9월 합헌으로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이를 뒤집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지명도가 높은 정치인 등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길을 터줌으로써 자칫 교육의 정치 예속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이 개정안 처리에 보다 신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교육계의 목소리부터 적극 수렴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지방자치단체의 교육 · 과학 · 기술 · 체육과 그밖의 학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의 설치와 그 조직 및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으로, 1991년에 제정됐다.

지자체의 교육 · 학예에 관한 사무는 특별시 · 광역시 · 도에서 관장하고 중요 사항을 심의 · 의결하기 위해 교육위원회를 두며 사무 집행기관으로 교육감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해 12월30일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열고 국회 계류중인 개정안을 심의해 시도 교육의원 및 교육감 선거 입후보 요건으로 교육경력을 요구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교육감 후보자자격중 '후보 등록 개시일로부터 과거 2년간 정당의 당원이 아닌 자'는 '과거 6개월간'으로 수정했다.

또한 교육의원 선거는 주민 직선이 아닌 정당비례로 치르도록 내용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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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2009년 12월 31일자 보도기사

내년 6월 시도교육감 선거부터 교육 경력이 없는 일반인도 출마할 수 있게 된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는 30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확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교육 경력이나 교육행정(장학관 장학사 등) 경력' 5년 이상인 교육감과 10년 이상인 교육의원 출마 자격이 전면 폐지된다.

이에 따라 교사 · 교수 등이 아닌 일반인도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후보 등록일 기준으로 '2년 이상' 당적을 보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건도 '6개월'로 완화된다.

또 교육감 선거 출마자도 앞으로는 시도지사처럼 후원회를 결성하고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어 선거운동이 훨씬 쉬워진다.

개정안은 시도지사에게 적용되는 주민소환제도를 교육감에게도 적용하기로 했다.

시도의원이 되는 교육의원은 정당 비례대표로 선출한다.

정당이 교육의 전문성을 고려해 후보자를 추천하면 비례대표 득표수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된다.

교육감이나 교육의원의 겸직은 금지된다. 교육감이 정당의 당원이 될 경우에도 퇴직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여야 합의안은 교육 관련 경험이 없는 정치인들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교육계는 '교육 자치'에 위배된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교육의원을 지역구에서 선출하지 않고 비례대표제로 뽑는 것은 '주민직선'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교육감을 정당에서 공천받을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남겨둔 것과 달리 교육의원은 정당이 추천키로 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논란도 있다.

정태웅/이준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