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판결은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합치돼야
[Cover Story] 사법부 독립,판사 개인의 정치적 이념으로부터도 독립해야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 103조)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 (헌법 106조 1항)

법관의 독립,사법부의 독립은 이렇게 헌법으로 보장돼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기도 6년으로 헌법에 명시돼 있다.

법관은 판결에 대해 청와대는 물론 국회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법원의 정치적 판결,판사마다 서로 엇갈리는 판결에 대해 비판 여론이 일자 이용훈 대법원장은 20일 "사법부의 독립을 굳건히 지켜내겠다"고 말했다.

사법부의 독립,법관의 재량은 어디까지일까.

⊙ 판사 개인의 개성 아닌 법적 이성의 독립

사법부 독립이라는 것을 단순히 법관 개인의 독립과 법관의 재량권으로만 볼 수는 없다.

판사가 자기 주관이나 소신에 따라 제 멋대로 재판하는 것을 독립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판사들이 지휘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재량적으로 판단한다면 재판 판결은 판사 개개인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사법에 대한 신뢰체계는 무너지고 만다.

'법률과 양심에 따른다'는 사법부 독립의 대원칙은 당연히 사법부 전체의 '기관 이성'을 전제로 한다.

개별 판사는 이 보편적 이성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권위를 나눠 갖는다.

똑같은 사안이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재판결과가 달라진다면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는 법적 안정성의 종말이다.

사법부 독립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며 정치로부터의 독립일 뿐 아니라 판사 개인의 주관으로부터 독립이다.

어떤 법관으로부터 재판을 받더라도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판결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사법의 방종을 스스로 통제하는 사법 행정권은 그래서 그 존재 의미를 갖는다.

법원장 등 고위 판사들의 사법 행정권을 복권시키는 게 당장 시급한 문제다.

⊙ 판사들 튀는 판결 나오는 이유

그러면 예전과 달리 왜 이렇게 '튀는 판결'이 많이 나오는 걸까.

한나라당과 일부 보수 시민단체는 법관의 정치성과 편향적 행태를 지적하며 이념 성향이 강해진 것이 법조계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 대법원장의 측근들이 창립멤버로 있는 진보 성향 법관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최근 튀는 판결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관이 급증한 것도 한 요인이다.

2004년 사법연수원 수료생 1000명 시대가 열리면서 최근 경력 법관까지 매년 100명이 넘는 신규 법관이 법원에 들어오고 있다.

그만큼 법관마다 경력과 성향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는 얘기다.

법원 내부의 소통이 약화됐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재판 사건이 폭증하고 있는 데 반해 법원 내부의 소통은 오히려 어려워지면서 법관들 사이에 사회 상규에 맞는 합리적 판단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감대의 정도가 느슨해졌다는 것.

그렇다고 해서 개별 법관의 독립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것이어서 대법원 수뇌부는 물론이고 일선 법원장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를 해결하기를 꺼린다는 게 지금 사법부 내의 분위기라는 것이다.

⊙ 사실에 대한 과도한 해석은 정치 영역

법관은 사실에 근거해 법률과 판례를 적용하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따른 판단을 재판에 반영한다면 이는 사실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며 이미 정치의 영역이다.

법원이 강기갑 대표의 국회난동 사건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공무가 아니다'고 한 것이나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에서 '국가공무원법이 공무 이외의 일을 위한 집단적 행위를 제한하고 있지만 이는 모든 집단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하여 직무전념 의무를 소홀히 하는 영향을 가져오는 행위로 축소해석한다'고 한 것은 사실을 그 자체로 해석했다고 보기 어렵다.

PD수첩 사건에서도 '방송에 등장하는 주저앉은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거나 '한국인의 인간광우병 발병률이 94%라고 한 게 과장이나 오해일 뿐 전체 취지가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인간광우병에 취약한 것이기 때문에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문 내용도 마찬가지다.

⊙ 40년 전 일본은 이렇게 해결했다

일본도 40여년 전 '사법부 혼돈'의 시대를 겪었다.

1960년대 진보성향의 최고재판소 장관(한국의 대법원장격) 다수를 진보성향 인사들이 차지하면서 '진보적' 판결이 쏟아졌다.

하급심에서는 진보성향의 판사와 변호사들이 참여한 모임인 '청년법률가협회(청법협)' 소속 판사들의 '튀는 판결'이 이어졌다.

한국의 '우리법연구회'를 연상시키는 청법협 소속 판사 회원의 숫자는 1970년 225명으로 전체 판사의 10%를 차지했다.

이들의 이념적 편향성을 우려한 한 지방법원장이 '자위대 관련사건'을 맡은 청법협 판사에게 재판과 관련한 의견을 담은 서신을 보냈는데,이 판사가 서신을 외부에 공개해 '재판권 독립' 논란이 폭발했다.

이 사태로 당시 법원장에게 일본 최고재판소는 '주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이시다 가스토 당시 최고재판소 장관의 조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시다 장관은 당시 청법협 판사에게도 같은 징계처분을 내리면서 청법협 소속 판사들을 주요 재판에서 배제하는 등의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자민당 등 정치권이 '재판제도 특별조사위원회' 등을 발족하면서 사법권에 개입하려는 데 맞서,'재판 독립을 지키기 위해선 사법부의 일은 사법부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당시 최고재판소 주요 보직을 맡고 있던 청법협 소속 판사들은 최고재판소의 압박에 따라 청법협을 탈퇴했다.

지방법원에서는 형사사건 재판도 맡지 못했다.

이시다 장관이 '정치적 신념을 재판에 반영하는 판사들'을 인사권을 활용해 법원 주변부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