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기업에 토지이용 자율권 부여해 효율성 높일 것”

반 “급한 불 끄기식 발상…기업·대학에 개발이익 특혜”

부지 조성공사를 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토지를 의미하는 이른바 '원형지' 공급 확대 문제가 논란을 빚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시도지사들과의 간담회에서 "세종시와 마찬가지로 혁신도시나 지방 산업단지에도 원형지로 기업에 공급하는 게 원칙에 맞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이 중간에서 조성공사를 한 뒤 분양하고 기업이 이를 필요에 따라 다시 손질하는 건 불필요한 낭비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혁신 · 기업 도시의 땅값 수준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건 아니지만 세종시 특혜 시비와 다른 지역과의 역차별 논란이 가중되는 상황을 의식해 '원형지 저가(低價)공급 확대'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국민 세금을 재벌에 퍼주는 특혜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는 반면 또 다른 쪽에서는 "세종시 이외 지역과의 역차별 우려를 없애기 위해 다른 혁신도시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라며 크게 반기고 있다.

정부가 세종시에 적용키로 한 원형지 공급을 혁신도시와 산업단지로 확대키로 하면서 원형지 저가 공급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국토 균형 발전의 취지나 지역별 형평성 만을 고려한다면 다른 지역에도 세종시 수준의 혜택을 확대 적용하는 게 합당할 수도 있다.

땅 공급 방식 또한 나대지 형태로 공급해 기업이 필요에 맞게 조성공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 효과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저가 원형지 공급이 자칫 포퓰리즘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원형지 공급 확대 방안이 과연 바람직한지 살펴본다.

⊙ 찬성 측, "토지 이용 자율권 부여해 투자 대비 효율성 크게 높일 것"

원형지 공급 확대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택지개발의 경우 사업 진행 단계에서 융통성 있는 개발 행위가 제약을 받았다"며 원형지 공급이 기업 유치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원형지 공급은 토지 이용상의 자율권을 기업에 부여해 기업의 입맛에 맞게 토지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투자 대비 효율성을 크게 높일 것이라는 얘기다.

세종시 원안 고수와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리는 판에 세종시에 들어올 기업 등에 원형지 공급을 허용한다면 비례의 법칙에 따라 지방 혁신도시에도 원형지를 공급하는 게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방에 따라서는 혁신도시 개발공정이 25% 이상 진척된 곳도 있고 공급할 토지가 부족하거나,또 이미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분양한 사례도 있는 만큼 원칙적으로 지방에도 원형지 공급을 적용하되 지역의 실정에 맞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예컨대 개발비용 경감이나 세제 혜택을 주는 방법 등이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반대 측, "'급한 불 끄기식' 원형지 공급 확대 혼란만 가중시킬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세종시의 경우 원형지 공급가격은 애초 정부가 책정했던 조성원가의 6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라며 "기업과 대학에 개발이익에 따른 시세차익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엄청난 특혜"라고 꼬집는다.

원형지의 지나치게 낮은 토지공급가로 다른 지역과의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자 정부는 '급한 불 끄기 식'으로 혁신도시까지 원형지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더 큰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종시 수정안을 그대로 둔 채 혁신도시,기업도시에 원형지 개발 방식을 허용한들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대규모 부지가 민간에 원형지로 공급되면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토지가 개발될 수밖에 없어 계획의 공공성이 지켜지기 어렵다"며 국토공간은 특정 기업이나 세대의 전유물이 아닌 미래 세대가 함께 사용할 공간이므로 원형지 공급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혁신 · 기업도시 땅도 헐값,투기 시비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세종시 개발사업은 워낙 중대한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일부 특혜 논란을 감수해야 할 부분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헐값 시비가 빚어지는 땅 공급 방안을 지방의 혁신 · 기업 도시로까지 무차별적으로 확산시켜 물타기를 하는 건 옳은 해법이 아니다.

우선 '균형발전'이란 미명 아래 전국을 땅 투기장으로 만들었던 지난 정부의 실정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국민 세금을 투입해 민간 소유 땅을 사들인 뒤 특정 기업에 싼 값에 안겨주는 특혜는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하기 어렵다.

땅을 원형지 형태로 공급해 기업들이 마음대로 시설을 짓게 할 경우 짜임새 있는 도시계획이 무시된 채 난개발이 빚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원형지 저가 공급 방식은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만한 방안부터 제대로 마련하고 추진해도 늦지 않다.

당장 다가오는 6 · 2 지방선거가 급하다고 나중에 뒷감당하지 못할 일을 벌여선 결코 안 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원형지

간선도로와 상 · 하수도 등 기초적인 기반시설만을 갖추고 부지 정리 등 조성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토지를 말한다. 그만큼 땅 값이 싸고 기업이 원하는 대로 개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혁신도시

한국도로공사 등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계기로 지역의 성장 거점지역에 조성되는 미래형 도시를 말한다. 이전된 공공기관과 지역 대학 연구소 산업체 지자체가 협력하는 클러스트 형태의 도시다.

기업도시

민간 기업이 토지수용권 등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개발한 특정 산업 중심의 자급자족형 복합 기능도시를 말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도시특별법안을 제출하면서 본격 추진되기 시작했으며 삼성전자 탕정기업도시와 LG디스플레이의 파주기업도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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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1월13일자 A5면

세종시에 입주하는 기업 · 대학들에 적용하는 원형지 공급 방식이 신도시 · 혁신도시 · 산업단지 등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국토해양부는 12일 국토부 대회의실에서 '세종시 추진지원단' 첫 회의를 열고 세종시 발전 방안 후속 조치에 대한 논의에 착수했다.

지원단장인 권도엽 국토부 제1차관은 이날 "지방권을 중심으로 세종시 발전 방안으로 인한 '블랙홀' 우려가 높은 만큼 혁신도시 등 각종 지역개발 정책에 차질이 없도록 사업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며 "특히 지방권 택지개발지구나 신도시,산업단지 등에서도 원형지로 공급하는 토지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형지란 주 · 간선도로,상 · 하수도 등 기초 인프라 외에 부지 조성 공사를 하지 않고 미개발 상태로 공급하는 토지를 말한다.

성토나 절토 작업 등을 줄일 수 있어 조성 용지에 비해 땅값이 싸고 토지 수요자가 맞춤형 개발을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원형지 형태로 공급한 세종시 첫마을의 경우 분양가가 조성원가(3.3㎡당 227만원)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3.3㎡당 89만4900원 선이다.

권 차관은 또 "세종시 발전 방안에는 법(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 개정 후 5개월 안에 기본 · 개발계획 변경을 완료하도록 돼 있지만 국가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인 만큼 사업을 조기 착수할 수 있도록 관련 일정을 최대한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원단은 이날 회의에서 지방 혁신도시에도 세종시와 같은 투자 유치가 이뤄지도록 원형지 공급,조세 감면,산업용지 분양가 인하,선도 기업 유치 등의 보완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또 특혜 논란을 막기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 개정 때 원형지 공급에 대한 절차 및 기준 등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강황식 한국경제신문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