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정부 간섭에 길들여진 관료적 운영의 틀 깨야”

반 “등록금 오르고 교육의 공공적 반 기능 훼손될 것”

서울대를 독립법인으로 바꾸는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 · 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서울대 법인화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조직 형태인 국립대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해 인사와 조직,재정 등의 측면에서 자율성을 높이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서울대 법인화 문제를 놓고 찬반의견이 맞서고 있는 셈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쪽에서는 "법인화로 경쟁력을 한층 높여 서울대를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다른 국립대도 개혁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서울대 쪽에서도 "법인화가 발전을 저해하는 구시대적 대학 구조를 혁파하고 세계 정상급 대학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크게 반기고 있다.

하지만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는 "'서울대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서울대가 국립대학의 맏형답지 않게 '개혁을 가장한 시장주의' '서울대 이기주의'를 선택하려 한다"며 서울대 법인화에 반발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독립하는 법인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부법안만으로 자율성 확보와 재정 확충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서울대 법인화는 대학 자율을 통한 교육의 질적 향상과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논의돼 왔다.

1987년 법인화 필요성이 제기된 뒤 20년 넘게 추진됐으나 별 진전이 없었다.

정부와 서울대의 입장 차이가 클 뿐 아니라 서울대 구성원들의 의견도 엇갈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울대 법인화 추진은 쉽지 않은 사안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대의 요구사항을 거의 다 수용하면서 법인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나섰다.

서울대 법인화 조치가 과연 타당한지 분석해 본다.

⊙ 찬성 측, "정부 간섭에 길들여진 관료적 운영 틀부터 깨야"

서울대 법인화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상당수 서울대인들의 반대는 보호막이 걷히면서 살벌한 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고,또 개인적으로는 신분상의 안정성이 약화하는 것을 우려한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서울대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정부 간섭에 길들여진 관료적 운영의 틀부터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수와 직원들은 공무원 신분이며 학교 조직을 바꾸려고 해도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정부지원 예산은 지정된 세목대로만 쓰게 돼 있는 현행 체제로는 세계 일류대학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법인화가 이뤄지면 운영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법인화 자체가 세계적 대학으로 가는 길을 보장해주진 않는 만큼 보다 엄격한 실적 평가와 함께 책임을 묻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기회에 다른 국립대에 대해서도 법인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반대 측, "등록금 오르고 교육의 공공적 기능도 약화될 것"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정부 법안은 법인화 이후에도 서울대에 국가 재정을 계속 지원하고 서울대가 관리하는 국유재산이나 공유재산은 무상양도하며 장기차입과 학교채 발행은 물론 수익사업도 허용키로 했다"며 이 정도면 특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재정 부문만 놓고 볼 때 굳이 서울대를 법인화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얘기다.

특히 "정부는 서울대의 요구사항을 거의 다 수용했다"며 정부와 서울대가 세종시 제2캠퍼스 건립 문제를 놓고 '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받을 만하다고 꼬집는다.

대학을 시장논리에 맡기는 법인화로 인해 등록금이 오르고 서울대가 갖고 있던 교육의 공공적 기능이 약화되며 기초학문도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울대 법인화는 다른 국립대의 모델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는 그들이 서울대와 같은 수준의 지원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되묻는다.

정부가 세종시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서울대 법인화를 이용한다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 대학과 정부가 동시에 변하는 게 법인화 성공의 최대 관건

지금까지와 같이 정부 통제와 간섭을 받는 상황에서는 서울대가 세계 일류대학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독립법인의 출범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만하다.

그런 맥락에서 국립대학법인으로 자리잡을 때까지는 정부의 재정 지원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서울대가 자율성을 토대로 세계적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정적 독립성 확보를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서울대는 국립대의 상징이고,대학사회의 얼굴과 마찬가지인 위치에 있는 만큼 교수와 교직원들이 기존 공무원의 습성을 버리고 개혁 마인드로 새롭게 무장해야 할 것이다.

대학은 자율이 강화되는 만큼 책임감도 높여야 한다.

우수한 교수들은 파격적인 대우를 해야 하지만 무능하고 태만한 교수는 가차없이 퇴출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상업화를 지나치게 추구한 나머지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일도 중요하다.

기초학문을 소외시키거나 무리하게 등록금을 인상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명실상부하게 국가로부터 독립된 서울대 법인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려면 대학과 정부가 동시에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 풀이

서울대 법인화

정부조직 형태인 서울대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해 인사와 조직,재정 등의 측면에서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 ·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 규정돼 있다. 대표인 총장은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자 중 이사회가 선임하고 교과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간선제로 바뀌고 서울대가 관리하던 국유재산은 대학에 무상 양도하고 교육 · 연구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수익사업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서울대 설치령

서울대가 국가기관의 하나임을 명백히 하고,정부의 육성의지를 내보이기 위해 1970년 제정됐다. 서울대에 '국립 중의 국립'이란 특권적 지위를 법으로 보장한 셈이다. 특정대학을 위한 별도의 법령은 한국교원대학교 설치령과 서울대학교 설치령이 있으며 종합대학으로서는 서울대가 유일하다.

-------------------------------------------------------------

☞ 한국경제신문 12월 9일자 보도 기사

서울대 법인화 안이 8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이르면 2011년 서울대가 독자 법인으로 재출범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날 서울대 법인화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서울대가 현재 관리 중인 국공유 재산을 필요하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무상으로 넘겨받되 국유재산은 무상 양도의 필요성을 교과부 장관과 기획재정부 장관이 협의하도록 했다.

재정부는 일종의 견제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서울대 직원의 신분과 관련,교직원의 경우 법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해 본인이 원하면 일정기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하도록 바꿨다.

그러나 교수는 법에 의해 향후 5년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