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일본에서 생산된 나이롱실을 한국으로 수입해 직조업자에게 공급하고 있지만 곧 나이롱실을 한국에서 만들겠습니다. 우리가 죽어라고 일해서 남의 나라 장사만 시켜주어서 되겠습니까?"
지금의 코오롱그룹을 세운 고 이원만 명예회장(1904~1994)은 한국에 나일론사(絲)를 들여와 화섬산업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나일론을 접한 것은 1952년 말,일본에서 삼경물산을 세워 사업하던 시절이다.
그는 한눈에 나일론이 요샛말로 '대박'거리임을 알아봤다.
이듬해 그는 일본으로부터 나일론 원사를 들여와 독점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좀 더 큰 데 있었다.
1953년 대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가 "곧 '나이롱실'을 한국에서 만들겠다"고 공언한 다짐은 1957년 한국 최초의 나일론 제조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실현됐다.
그 회사 이름이 '한국나이롱주식회사'다.
당시의 '나이롱'은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나일론'이다.
제대로 된 외래어표기법이 없던 시절에 '나일론(nylon)'을 일본식으로 읽은 말이었다.
이렇게 이 땅에 들어온 '나이롱'은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말에도 몇 가지 그 흔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게 환자가 아니면서 환자인 척하는 사람을 익살스럽게 이르는 말인 '나이롱환자'이다.
지금은 '나이롱'이란 말을 안 쓰지만 '나이롱환자'는 당당히 사전에 올라 있는 정식 단어다.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 환자 행세를 하던 나이롱환자가 경찰에 구속됐다"처럼 쓰인다.
'나이롱환자'에서 나이롱은 '사이비'란 뜻으로 전의돼 쓰인 것이다.
그리 된 까닭은 나일론이 인조섬유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볍고도 질긴 그래서 좋은 '나이롱'이지만 전통적인 천연섬유와는 대비되는 '인공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스레 '겉은 그럴 듯하지만 그 속은 가짜'란 뜻으로 확대돼 쓰인 셈이다.
'나이롱환자'는 대부분의 일반 소사전이나 중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또 금성판 국어대사전(1995년)이나 연세한국어사전(중사전),최신국어대사전(숭문사,1992년),국어대사전(한국어사전편찬회 편,1992년),국어대사전(이희승 편,민중서림) 등에서도 단어로 취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어문각,1991년)이나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1999년)에서는 '나이롱환자'를 표제어로 올려 단어로 처리했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이 정상적인 단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남아 있으나,적어도 우리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익숙한 말임에는 틀림없다.
섬유의 일종을 가리키는 말 '나이롱'은 요즘 '나일론'으로 바뀌었지만,'나이롱환자'는 여전히 '나이롱'이어야 말맛이 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나이롱의 인기에 힘입어 등장한 새 말에는 '나이롱뽕'도 있다.
"나,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야.내가 이 자리를 나이롱뽕으로 오른 줄 알아?" "그 사람이 일등을 나이롱뽕으로 딴 게 아니다"처럼 쓰인다.
'나이롱뽕'은 민화투나 육백,월남뽕,섰다,고스톱,짓고땡 등 같은 화투놀이의 하나로 생겨났다.
이 '나이롱뽕'도 예문처럼 쓰일 때는 '고생하지 않고 운좋게 거저먹기 한 것'이란 뜻으로 확대돼 쓰였다.
하지만 '나이롱뽕'은 '나이롱환자'와 달리 사전에 오르지 못 했다.
그 쓰임새가 지속적이면서도 광범위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말들에는 나이롱신사(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맹탕인 신사),나이롱박수(소리는 안 내고 흉내만으로 치는 박수) 같은 게 더 있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우리 언어생활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나이롱' 자리를 '나일론'이 대체함으로써 이들 말도 요즘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말에서 '나이롱'의 흔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말은 '코오롱'이란 이름일 것이다.
한국나이롱주식회사는 1963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 원사를 생산해 냈는데 그 상품명이 'KORLON'이다.
KOREA와 NYLON의 합성어인 이 말에는 '한국에서 만든 나이롱' '한국의 나이롱'이란 뜻이 담겨 있다.
이 이름은 1968년에 다시 KOLON으로 바뀌었는데,이것이 뒤에 한국나이롱주식회사와 한국포리에스텔이 상호를 통합해 '주식회사 코오롱'이란 상호를 낳는 모태가 되었다.
이어 1981년에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의 두 코오롱이 법인통합함으로써 지금의 코오롱그룹 체제를 갖추게 됐다.
지금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읽으면 '콜론' 정도 됐을 말이 '코오롱'으로 정해진 데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지금의 코오롱그룹을 세운 고 이원만 명예회장(1904~1994)은 한국에 나일론사(絲)를 들여와 화섬산업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가 처음 나일론을 접한 것은 1952년 말,일본에서 삼경물산을 세워 사업하던 시절이다.
그는 한눈에 나일론이 요샛말로 '대박'거리임을 알아봤다.
이듬해 그는 일본으로부터 나일론 원사를 들여와 독점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좀 더 큰 데 있었다.
1953년 대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가 "곧 '나이롱실'을 한국에서 만들겠다"고 공언한 다짐은 1957년 한국 최초의 나일론 제조회사를 설립함으로써 실현됐다.
그 회사 이름이 '한국나이롱주식회사'다.
당시의 '나이롱'은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나일론'이다.
제대로 된 외래어표기법이 없던 시절에 '나일론(nylon)'을 일본식으로 읽은 말이었다.
이렇게 이 땅에 들어온 '나이롱'은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우리말에도 몇 가지 그 흔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게 환자가 아니면서 환자인 척하는 사람을 익살스럽게 이르는 말인 '나이롱환자'이다.
지금은 '나이롱'이란 말을 안 쓰지만 '나이롱환자'는 당당히 사전에 올라 있는 정식 단어다.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 환자 행세를 하던 나이롱환자가 경찰에 구속됐다"처럼 쓰인다.
'나이롱환자'에서 나이롱은 '사이비'란 뜻으로 전의돼 쓰인 것이다.
그리 된 까닭은 나일론이 인조섬유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볍고도 질긴 그래서 좋은 '나이롱'이지만 전통적인 천연섬유와는 대비되는 '인공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스레 '겉은 그럴 듯하지만 그 속은 가짜'란 뜻으로 확대돼 쓰인 셈이다.
'나이롱환자'는 대부분의 일반 소사전이나 중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또 금성판 국어대사전(1995년)이나 연세한국어사전(중사전),최신국어대사전(숭문사,1992년),국어대사전(한국어사전편찬회 편,1992년),국어대사전(이희승 편,민중서림) 등에서도 단어로 취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어문각,1991년)이나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1999년)에서는 '나이롱환자'를 표제어로 올려 단어로 처리했다.
그런 점에서 이 말이 정상적인 단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은 남아 있으나,적어도 우리가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익숙한 말임에는 틀림없다.
섬유의 일종을 가리키는 말 '나이롱'은 요즘 '나일론'으로 바뀌었지만,'나이롱환자'는 여전히 '나이롱'이어야 말맛이 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나이롱의 인기에 힘입어 등장한 새 말에는 '나이롱뽕'도 있다.
"나,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야.내가 이 자리를 나이롱뽕으로 오른 줄 알아?" "그 사람이 일등을 나이롱뽕으로 딴 게 아니다"처럼 쓰인다.
'나이롱뽕'은 민화투나 육백,월남뽕,섰다,고스톱,짓고땡 등 같은 화투놀이의 하나로 생겨났다.
이 '나이롱뽕'도 예문처럼 쓰일 때는 '고생하지 않고 운좋게 거저먹기 한 것'이란 뜻으로 확대돼 쓰였다.
하지만 '나이롱뽕'은 '나이롱환자'와 달리 사전에 오르지 못 했다.
그 쓰임새가 지속적이면서도 광범위하지 못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말들에는 나이롱신사(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맹탕인 신사),나이롱박수(소리는 안 내고 흉내만으로 치는 박수) 같은 게 더 있다.
현행 외래어표기법이 우리 언어생활에서 뿌리를 내리면서 '나이롱' 자리를 '나일론'이 대체함으로써 이들 말도 요즘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말에서 '나이롱'의 흔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말은 '코오롱'이란 이름일 것이다.
한국나이롱주식회사는 1963년 국내 최초로 나일론 원사를 생산해 냈는데 그 상품명이 'KORLON'이다.
KOREA와 NYLON의 합성어인 이 말에는 '한국에서 만든 나이롱' '한국의 나이롱'이란 뜻이 담겨 있다.
이 이름은 1968년에 다시 KOLON으로 바뀌었는데,이것이 뒤에 한국나이롱주식회사와 한국포리에스텔이 상호를 통합해 '주식회사 코오롱'이란 상호를 낳는 모태가 되었다.
이어 1981년에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의 두 코오롱이 법인통합함으로써 지금의 코오롱그룹 체제를 갖추게 됐다.
지금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읽으면 '콜론' 정도 됐을 말이 '코오롱'으로 정해진 데는 이런 사연이 담겨 있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