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호르몬 치료법은 되레 범죄자 인권보호 수단”

반 “성폭력범 성욕 일시 억제로는 문제해결 안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 범죄의 재범을 막기 위해 성기능을 억제하는 이른바 '화학적 거세'제 도입 문제를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보건복지가족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우리도 캐나다처럼 성폭력범은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성폭력범의 화학적 거세 문제를 둘러싼 네티즌들의 공방을 달구었다.

화학적 거세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성폭행범의 인권을 지켜줄 바엔 차라리 멸종동물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게 낫다"는 등 어린이 성범죄자에 대해선 다른 범죄에 비해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동 성폭력범의 경우 성 충동 조절에 문제가 있고 도덕적 의식이 결여된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일종이라는 점을 내세워 반드시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부에서는 "성 폭행범은 재범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들을 격리시키거나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거세'는 너무하다"고 지적한다.

일각에서는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차라리 무기징역 등 처벌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8세 초등학생을 참혹하게 성폭행해 영구장애아로 만든 소위 '조두순 사건'은 많은 시민을 분노케 하고,대통령까지도 공개적으로 심정을 토로하는 등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지난해 발의한 '화학적 거세치료법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제는 화학적 거세가 성범죄자의 성욕을 억제함으로써 범죄 재발을 막는 효과를 과연 거둘 수 있느냐는 점이다. 화학적 거세제 도입 논란을 짚어본다.

⊙ 찬성 측, "호르몬 치료요법은 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수단"

화학적 거세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소아기호증(pedophila)과 성도착증을 지닌 상습적 성폭력범들은 자기조절이나 행동 수정 등을 통해 쉽게 치료될 수 없다"며 화학적 거세 같은 강력한 법적 개입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아동학대를 하나의 병리로 보는 의료적 모델의 관점에서 그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남자의 성기를 거세하는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호르몬 주사를 놓는 것이며 호르몬요법 치료가 끝나면 성적능력이 회복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범죄자 인권을 보호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인권 선진국이라는 미국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 오래 전부터 화학적 거세법을 시행해오고 있으며, 근래 들어 많은 나라들이 관련 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우리도 새겨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야만적인 신체절단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화학적 거세라는 용어 대신 '호르몬 치료요법' 또는 '약물치료 요법'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반대 측, "성폭력범 성욕 일시 억제하는 것으론 문제해결 안돼"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성폭력을 성욕의 산물로 보는 것은 편견일 뿐 아니라 그 동안 가해자가 쉽게 범행을 저지르고 면죄부를 받게 만든 논리였다"며 성폭력범의 성욕을 일정 기간 억제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고 지적한다.

화학적 거세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을 억제함으로써 발기와 성욕을 일시적으로 제재하고,약물주입을 중단하면 성적능력은 곧바로 회복되는 만큼 이 방법으로는 소아성기호증 같은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성호르몬 투입으로 성 정체성의 혼란을 몰고 오고 여성형 유방 등 신체적인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약물이나 호르몬 강제 투입으로 인한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성폭력은 성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강자가 약자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이므로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성 폭행범 신상공개 확대하고 자발적 화학거세제 도입해야

아동 성폭행은 신체적 · 정신적 피해가 평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은 폭력이라도 용서될 수 없는 무관용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모든 아동을 안전하게 양육,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나가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아동 보호를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성폭행은 근절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만큼 '필벌'과 '엄벌'을 통해 잠재적 아동 성폭행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아동 성폭행범은 반드시 처벌받고,그 처벌도 엄격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동 성폭력범에 대해 엄중한 형벌을 지우고,심지어 강제로 화학적 거세까지 가능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추진 중인 외국의 사례를 감안할 때 우리도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신상공개를 확대하고 자발적인 화학적 거세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폭력범에게 약물만 주입할 게 아니라 심리치료를 병행해 인지행동적으로도 성적 욕구와 반응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화학적 거세(castration)

성범죄자에게 약물이나 여성호르몬 주입을 통해 성욕에 관여하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를 차단함으로써 성적 욕구를 없애는 것을 말한다. 약물 투입을 중단하면 성욕을 회복할 수 있다. 성기를 자르는 물리적 거세와는 다르다. 미국 캐나다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화학적 거세법을 시행해오고 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평소에는 정신병질이 내부에 잠재되어 있다가 범행을 통하여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다. 1920년대 독일의 쿠르트 슈나이더가 처음 소개한 개념으로 보통 반사회적 인격장애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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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10월 1일자 보도기사

여덟 살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장애를 입힌 이른바 '조두순 사건'의 범인에 대한 형량이 징역 12년으로 확정돼 솜방망이 처벌 논란과 함께 대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한나라당 박민식(부산 북 · 강서갑) 의원이 지난해 9월 대표발의한 '화학적 거세법'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상습적 아동 성폭력범의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률안'으로 명명된 이 법안은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상습적 성범죄자 가운데 성도착증 환자에게 주기적으로 화학적 호르몬을 투입,일정기간 성적 욕구를 감소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검사가 성폭력범의 동의를 얻어 치료감호소에서 집행하고,한 차례 치료는 6개월을 넘길 수 없도록 했다.

이와 함께 심리치료를 병행하도록 하고,치료 대상자가 '화학적 거세 치료요법'이나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위반할 때는 7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아동 성폭력범에 대한 약물치료법은 미국의 8개주와 스웨덴,덴마크 등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다.

박 의원은 1일 "현행 아동 성폭력 방지제도는 사법당국의 검거 편의를 증진하는 효과는 있어도 성폭력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화학적 거세 치료요법 처리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