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스노우 상원의원 찬성표 던져 정치적 용기 찬사

[Global Issue] 오바마 '의보 개혁' 구한 소신파 의원 …한국엔 없나요?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사당 상원 재무위원회 회의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우선 국내 정책인 의료보험 개혁법안 표결을 앞두고 회의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많은 의원 가운데 TV 카메라와 사진기자들은 유독 한 사람을 집중 추적했다.

ABC방송은 그가 반대표를 던질 확률을 40%로 점쳤다.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는 80%로 예상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고,여당인 민주당에 힘을 실어준 주인공은 야당인 공화당의 올림피아 스노우 연방 상원의원(63)이었다.

재무위는 의보 개혁법안을 찬성 14표,반대 9표로 가결했다.

공화당 의원들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것은 스노우 의원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표결 직후 "의보 개혁의 중대한 이정표가 마련됐다"며 "스노우 의원의 정치적 용기에 감사를 표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 소속의 맥스 보커스 재무위원장은 "찬성을 결정해줘 고맙다"며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스노우 의원은 "나의 오늘 투표는 단지 오늘 투표일 뿐이다. 내일도 다시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예단하지는 말라"고 고 말해 본회의에서 법률안의 문제점을 발견하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오바마와 민주당이 스노우 의원의 찬성 한 표에 감복한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의미 때문이다.

우선 상원 공화당 의원 40명 중 한 명이라도 찬성표를 이끌어내 초당적 법안이라는 구색을 겨우 갖추게 됐다.

민주당은 현재 상원에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한 매직 넘버인 60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최고령 상원의원인 로버트 버드 의원(91)이 최근 몇 달 동안 표결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회피할 수 있는 의석에는 한 석이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민주당 상원의원 가운데 중도파에 속하는 메리 랜드류, 벤 넬슨, 에반 바이 의원 등도 개혁법안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넬슨 의원은 공화당의 지지 없이 민주당 의원들만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반대해왔다.

그래서 스노우 의원의 지지는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의 표심을 돌릴 촉매제가 됐다.

스노우의 '소신표'에 동참하려는 공화당 내 움직임도 있다.

스노우와 같은 메인주의 수전 콜린스 연방 상원의원은 14일 성명을 내 의보 개혁안에 찬성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국방위원회 소속인 그는 "지금의 상원 법안으로는 많은 가계와 영세 사업장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우려하며 수혜자를 확대하는 훨씬 개혁적인 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노우와 콜린스의 태도로 민주당 지도부는 일부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온 당내 의원들을 설득할 큰 명분도 얻은 셈이다.

오바마 정부 들어 스노우 의원이 공화당 내 중도 협상파의 기수로 기여한 것은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2월 7870억달러의 경기부양법안에 찬성했다.

공화당의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스노우 의원이 협상에 나선 데다 찬성표를 던져 부양법안이 통과됐다는 평가다.

스노우 의원은 2005년 존 로버츠 대법원장과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의 인준을 둘러싸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대립했을 당시에도 타협안을 도출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번 재무위 표결 직전까지 입장 표명을 미룬 채 민주당의 애간장을 녹이며 양보를 받아낼 정도로 협상의 내공도 갖췄다.

스노우 의원은 "오늘 재무위에서 던진 찬성표는 단지 오늘의 투표일 뿐"이라면서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법안에 문제점이 드러나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파를 고집하지 않는 스노우 의원의 정치적 공력은 결코 허명이 아니다.

그는 26세 때 정계에 입문해 메인주 하원과 상원의원을 지냈다.

연방 하원의원도 거쳤다.

지난 110차 회기 때는 상원 본회의의 657차례 표결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성실함을 보였다.

유력 주간지인 타임은 2006년 스노우 의원을 '미국의 톱10 상원의원'으로 선정했다.

미 경제주간지 포천도 당론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소신투표를 높이 평가해 그를 지난달 '미 정가의 파워 여성 10걸'에 선정했다.

스노우 의원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미 의회 의원들은 당리당략 우선과 법안 기습처리,철새 정치인 등으로 국민에게 매번 실망을 안겨온 한국 국회의원들과는 매우 다른 면모를 보인다.

우선 아주 부지런하다.

지난 8월 말 사망한 고(故)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의 경우 47년간 의정활동을 하며 2500개의 법안 발의에 깊이 관여했고, 이 중 550여개를 통과시켰다.

매주 1개씩 제안되는 법안에는 그의 이름이 꼭 포함돼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반대와 북아일랜드 평화정착,독재정권 칠레에의 무기판매 금지,베트남전 반대 등 미국의 각종 진보적 정책 행보에서 케네디 의원의 영향력은 컸다.

무조건 당론에만 떠밀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 소신을 지킨다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 미 대선 당시 오바마와 경쟁했던 '매버릭(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는 이단아)'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 초반 매케인은 민주당 존 케리 상원의원이 의장으로 있던 전쟁포로와 실종자 문제를 다루는 특별위원회의 멤버로 활동했다.

여기서 그는 베트남 수출금지 조치 철회,관계 정상화 추진 결의안을 함께 협력해 성공시키면서 공화당 내의 비판을 받았다.

1995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베트남과 관계를 정상화 하게 된다.

불법이민과 감세,정치자금 개혁 등의 이슈에선 공화당보다 오히려 민주당 쪽에 가까운 정책을 주도하기도 했다.

또 국가를 위해서라면 초당적 협력도 아끼지 않지만 당적은 쉽게 바꾸지 않아 이른바 '철새 정치인들'이 거의 없다.

최근 수년간 미 정계에서 당적 변경 사례는 지난 4월 5선으로 29년간 상원의원직을 유지해온 공화당의 앨런 스펙터 의원(79 · 펜실베이니아주)이 민주당으로 옮겨간 게 유일하다.

미국에서 상원의원의 당적변경은 일반 유권자들의 직접 선거로 상원의원을 뽑기 시작한 1913년 이후 지금까지 13차례에 불과하다.

이미아 한국경제신문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