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더 부활 불구 빈부·지역격차 …부패·비민주는 아킬레스건
[Global Issue] 중국 건국 60주년 …강국과 감시의 ‘두 얼굴’
지난 1일 건국 60주년을 맞은 중국에선 화려한 축제가 펼쳐졌다.

수도 베이징은 홍색(紅色)의 도시로 변했다. 대로변에는 붉은 등이 줄줄이 달렸다.

'개혁 · 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의 위대한 승리'라는 붉은 플래카드도 도처에 널렸다.

서점에는 붉은 글자의 '혁명'이란 단어가 들어간 책들이 진열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자극적인 붉은색 뒤엔 또 다른 베이징이 있다.

지난달부터 6500여명이 구금됐다. 우범지역의 상가는 문을 닫았다. 시내엔 '완장 반 시민 반'이다.

공안(경찰)과 순찰이란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행인들을 예사롭지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건국 60주년을 맞은 중국은 이처럼 축제를 여는 사람과 축제를 감시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그러나 정작 축제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강성대국 중국과 통제 · 감시의 중국이 혼재해 있는 모습.

이것이 공산정권 60년의 중국이다.

⊙ 대내외에 공산당의 중화부흥 과시

화려하게 진행됐던 건국 60주년 기념식은 중국 공산당으로선 대내외적으로 존재 의미를 확인시키는 행사였다.

서구 열강의 수탈로 중국(당시 청)이라는 대제국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은 중국민들에게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증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마오쩌둥이 혁명을 완수한 뒤 한국전쟁에 참전,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대결한 뒤 곧바로 초영간미(영국을 추월하고 미국을 따라잡음)를 국정목표로 제시한 것은 제국주의에 의한 수탈의 아픔이라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서방을 넘어서야 한다는 중국의 염원은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마오쩌둥이 톈안먼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선포했던 1949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679억위안에 불과했다.

59년이 지난 작년 말 현재는 30조670억위안으로 당시보다 442배 늘었다.

같은 기간 연간 무역액은 11억달러에서 2조5616억달러로 2328배로 증가했다.

2조2000억달러가 넘는 외환을 보유, 세계에서 외국돈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나라도 중국이다.

게다가 작년에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힘은 더욱 돋보이고 있다.

미국조차도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고 있는 중국에 채권을 사달라며 머리를 숙였고, 중국은 이 돈을 들고 유럽등에 투자를 위한 구매사절단을 보내며 자국의 힘을 국내외에 알렸다.

2007년엔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 원수 50여명이 한꺼번에 베이징에 찾아와 채무를 탕감받기도 했을 정도로 중국의 영향력은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을 변방의 골목대장이 아니라 중심국가의 수장으로 만들었다.

작년 베이징 올림픽이 중화(中華)의 부활을 알린 전주곡이라면, 금융위기 이후의 지금까지 이어진 과정은 강성대국으로서 중국을 전 세계에 확인시켜준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펼쳐진 건국 60주년 기념행사는 중국의 파워를 과시하는 절정의 이벤트로서 의미를 가진다.

10월1일 톈안먼 광장에서 펼쳐진 행사는 18만명이 대형 군무를 선보이며 웅장함을 뽐냈다.

60여개의 낙하편대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500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혁명가를 부르며 강성대국 중국을 표현했다.

8만명의 초중학교 학생들이 49가지의 인간 카드섹션도 펼치며 사회주의국가의 일사불란함을 보여줬다.

인민해방군은 최첨단 무기를 앞세워 열병식을 진행하며 중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국내외에 알렸다.

⊙ 화려함 속에 깃든 외강내유의 위기

중국의 발전은 분명 경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발전의 그림자도 그만큼 짙다.

작년 말 현재 도시민의 연평균 소득은 1만5781위안이다.

농촌의 평균 소득인 4760위안보다 세 배 이상 많다.

7억명의 농민은 이처럼 중국의 빠른 경제발전에서 소외돼 있다.

도농간의 격차뿐 아니라 동부연안과 중서부지역 간, 한족과 소수민족 간 갈등도 심하다.

공산정권 60년은 개혁 · 개방 이전과 이후의 시기로 나뉜다.

가난한 평등의 시기였던 마오쩌둥의 시대와 부유한 불평등의 시대인 개혁 · 개방 이후의 경계는 분명히 나타난다.

경제 발전과 발맞춰 신좌파가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덩샤오핑과 그의 후계자인 장쩌민은 발전지상주의를 추구했지만 후진타오 현 국가주석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빈부 격차에 따른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정부는 이에 따라 통제의 칼을 거두지 않고 있다.

최근엔 택배법을 개정해 50g이하의 물건은 우체국을 통해서만 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등 불온문서가 민간배달업체를 통해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비록 거센 저항에 밀려 실패했지만 중국 정부가 중국 내 모든 개인용 컴퓨터에 특정 사이트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깔겠다는 녹색댐 정책을 시도한 것은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다는 뜻이다.

밖으로는 중국의 파워가 더욱 강해지고 있지만, 안으로는 갈등도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잇달아 터진 신장과 시짱의 소수민족 유혈진압사건이나,각 지역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는 집단시위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 중국 위협하는 부패와 비민주

중국 공산정권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톈안먼 사건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989년 중국의 대학생들은 톈안먼에서 부패 관리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정부가 탱크로 진압하자 민주화시위로 발전했다.

따라서 톈안먼 사태는 중국 공산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비민주와 부패라는 두 가지 핵심 문제를 건드린 셈이다.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경제 발전과 더불어 지금까지 확대되고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지만 홍콩신문들에 따르면 부패 관리로 인한 시위가 중국 전역에서 사실상 끊이지 않고 있다.

상팡런(上訪人)이라 불리는 민원인들이 '나라님'께 직접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겠다며 베이징에 집단 거주하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민주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아래로부터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작년 중국지식인 303인이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의 나라'라며 중국을 통렬히 비판한 08헌장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기도 했다.

올초엔 원로들이 공산당의 당내 민주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공개해 파장이 일었다.

이런 점에서 이달초 열린 중국 공산당 17기 중앙위원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중앙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못 오른 것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4중전회에서 시진핑이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올라 후진타오 주석의 후계자임을 확정할 것이라던 예상이 빗나갔다.

이유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중국정부가 과거와는 다른 형식을 통해 이를 발표,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도구로 이용하려 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만큼 지도부들도 대내외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반부패'를 건국 60주년을 앞둔 4중전회의 아젠다로 채택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러나 공산당 영도라는 중국헌법의 전문이 존재하는 이상 민주적 개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절대권력에 따르는 부패 역시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건국 60주년을 맞이한 중국 공산당의 딜레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