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노조의 대정부 투쟁은 곧 대국민 투쟁… 美·유럽 등 정치 참여 제한
[Focus] 민노총 가입한 공무원 노조… ‘정치적 중립’ 깬다고?
최근 전국통합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면서 이들의 정치적 중립 훼손 가능성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정부는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후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어 "공무원 노조가 정치투쟁 노선을 유지해 온 민주노총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응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

과거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공무원 노조들이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등 정치적 이슈를 내걸고 시위에 나서거나,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는 등 수많은 정치활동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노총을 비롯한 일부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인간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면 반발하고 있다.

친 노동계 온라인 매체 중 한 곳은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들의 집단운동이라는 본래 속성상 정치세력화를 지향할 수밖에 없다"며 "'경제투쟁'만으로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고,자연스럽게 법제도 개선과 정치권력 획득이라는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한 현행 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공무원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나라에서만 겪는 사항이 아니다.

외국 역시 공무원들의 노동권을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정치 참여와 관련해 논쟁과 갈등을 겪어왔다.

그리고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현재는 대부분 국가가 정치 참여에 대한 선을 그어두고 있다.

한국의 법조계,노동계 학자들도 대부분 노동자로서의 권리보다 공무원으로서의 중립성이 우선한다는 데 공통된 의견을 내놓고 있다.

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이 왜 필요하고 외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이를 규제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왜 필요한가

우리나라 공무원의 정치 중립은 헌법(제7조,제31조)과 국가공무원법(제65조),공무원노조법(제4조),교원노조법(제3조),선거법 (제9조) 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국가공무원법을 예로 들면 "공무원은 정당이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으며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또는 반대하기 위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법 역시 "노동조합과 그 조합원은 정치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공무원노조법은 공무원들의 정치세력화를 규제하다 보니 단체행동도 금하고 있다.

공무원은 노동자의 고유 권리라고 할 수 있는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중 단결권,단체교섭권만 갖는다.

이 때문에 각종 집회나 쟁의행위,집단적 의견 표명 등을 할 수 없다.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학계에서 제시하는 근거는 크게 4가지이다.

우선 행정행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가 또는 지자체 행정행위는 국민의 선택에 따라 선출된 대표자의 고유 권한이다.

공무원들이 자의적 판단으로 압력을 행사할 경우 행정 행위에 차질을 빚게 되고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들의 대정부 투쟁은 곧 대국민 투쟁이 되는 것이다.

일반 기업 노조가 노조 복지,임금 등의 사안에 관해 사측과 교섭을 가질 수 있는 반면,경영진의 고유권한인 경영행위에 간여해 주주의 권리를 해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둘째는 정치적 영향력 행사 가능성 때문이다.

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이 특정 정당에 가입해 선거운동을 한다면 국민들의 표심을 왜곡하거나 선거를 조작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또 검찰이나 판사가 편향성을 가지고 정치적 사건을 재단한다면 법 정의가 흔들리게 된다.

정치적 중립으로 공무원들이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따라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참여정부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유도 이 같은 정치적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빌미가 됐다.

당시 방송토론회에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하겠다"고 발언,선거법 9조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었다.

셋째, 공무원의 정보력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령 전국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으로 국가 행정에 관련된 정보가 민주노총으로 흘러갈 경우 민주노총 정치투쟁에 이용될 수 있다.

야당이나 다른 재야단체의 정쟁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넷째, 3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헌법은 입법,사법,행정부 간 분리와 독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민주주의 실현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공무원 노조는 이들 기관의 공무원들을 모두 아우르다 보니 상호 간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전국통합공무원노조 역시 최근 전국공무원노동조합,민주공무원노동조합,법원노동조합이 통합된 것이어서 이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었다.

⊙ 공무원 정치참여의 선을 긋는 외국

해외 주요 국가의 공무원 정치 참여 허용 정도는 조금씩 다르다.

개인 자격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정치자금 기부 등의 행위를 일절 불허하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차원의 정치적 시위나 의견 표명 등에 대해서는 대체로 금지한다.

독일의 경우 공무원 노조는 단체행동이나 쟁위행위를 하지 못한다.

독일 공무원은 노동3권 중 단결권만 갖을 뿐 단체교섭권과 파업권이 없다.

물론 정치적인 사안을 내건 시위나 의견 표명도 금지된다.

공무원은 국가에 대한 충성복무 의무를 갖는다는 법 조항 때문이다.

일본도 노조의 단체행동이 불가능하다.

공무원은 정당 및 정치단체 가입,정치자금 기부,선거운동 등 어떠한 방식의 정치활동도 허용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원칙적으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파업권이 모두 인정되지만 단체교섭을 통해 체결된 협약은 법률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

파업을 할 경우에도 그만큼 감봉조치된다.

공무원 개인의 정당 가입 등 정치 행위는 허용된다.

하지만 이 역시 업무와 관련해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정치적 사안을 내건 파업,시위는 금지돼있다.

미국은 단결권과 단체교섭권까지 허용하지만 단체교섭권 허용 대상 공무원은 그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연방공무원들은 단체교섭권을 갖지 못한다.

물론 단체행동권은 불허된다.

선거에서 지지후보를 선언하는 등 어느 정도의 정치적 의견 표명은 허용되지만 이를 위한 집단행동은 일절 금하고 있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