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에 저금리 대출…'밑빠진 독' 논란도
정부가 최근 저소득층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사업에 향후 10년간 2조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말 그대로 소액(micro)을 신용(credit)만 믿고 대출해 준다는 뜻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빈곤층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무담보 · 무보증으로 소액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이 사업은 1970년대 방글라데시,베네수엘라 등 제도 금융권이 발달되지 않은 저개발국에서 빈민에 대한 소자본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민간에 의해 출발했다.
이후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NGO)가 지원하거나 지역조합등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해왔다.
정부는 대출 신청자의 신용과 창업계획의 성공 여부 등을 따져 평균 500만~1억원까지 연 4~5%의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에서는 향후 10년간 25만명 가량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에 필요한 재원은 매년 500억원 가량 발생하는 은행의 휴면예금과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 대기업들의 자발적 기부금 1조원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추진 배경에 대해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출연체 등의 이유로 신용등급에서 7등급 이하는 은행 대출심사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게 되고 높은 이자부담으로 인해 부채증가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동안 대부업체의 대출규모만 5조2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사금융 시장이 커진 것도 이같은 실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 사이에는 정부가 발표한 계획으로는 안정적인 사업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연 5%내외의 저금리로는 대출금 미회수에 따른 손실과 운영 경비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외 대다수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기관들의 대출 이자율은 시장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기관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과 대출금 연체, 사업자의 부도에 따른 대손 부담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5%의 저금리 대출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특혜성 지원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래 마이크로 크레디트라는 것은 저금리가 아닌 최소 연 15~20%의 고금리로 저신용자에게 돈을 꿔주는 것"이라며 "은행 금리와 비교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마치 정부가 지원한 농업보조금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농가 부채'로 쌓인 것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도 미회수 상태의 대출만 쌓이고 기존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도 이같은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한국적인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외국처럼 고금리 수준으로 대출을 하게 될 경우 다시 채무재조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원금와 이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저금리 대출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저금리=안 갚아도 되는 돈'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은 정부로서도 고민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원대상이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사각지대에 있는 저신용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불자는 일단 은행 · 카드사 등 제도권에서 돈을 빌렸다고 이를 갚지 못한 사람들로, 나중에 채무 재조정을 신청하면 원금과 이자 중 일부를 탕감받을 수 있다.
저신용자는 소득이 낮아 은행 대출을 받아볼 꿈도 못꾸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경우 자활 의지도 강하고 능력도 있지만 금융회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성공여부는 대출자에 대한 정확한 신용평가와 철저한 사후관리에 달려있다.
창업에 대한 컨설팅과 밀착 모니터링을 통해 회수율을 높여야만 제한된 대출재원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전국에 최대 300여곳까지 지점을 설치하고 금융회사 근무경력이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실제 은행과 같이 대출심사를 거쳐 돈을 빌려주고 회수도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무급봉사자들이 얼마나 꼼꼼하게 대출자의 신용을 점검하고 사후관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원래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연 소득이나 대출 연체 등 정량화된 신용기준에 미달하지만 성실하고 사업 성공 가능성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며 "연 2~3%의 이자만 받고 대출자를 꼼꼼하게 걸러내거나 사후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은 '복지'가 아닌 '금융'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활의지가 없는 빈곤층을 복지정책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이자를 받고 대출해주는 '비즈니스'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수혜대상에서 제외하고, 중복지원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는 한편 1회성 대출이 아닌 창업 컨설팅과 같은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세심한 지원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sglee@hankyung.com
정부가 최근 저소득층을 위한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 사업에 향후 10년간 2조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말 그대로 소액(micro)을 신용(credit)만 믿고 대출해 준다는 뜻이다.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빈곤층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무담보 · 무보증으로 소액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이 사업은 1970년대 방글라데시,베네수엘라 등 제도 금융권이 발달되지 않은 저개발국에서 빈민에 대한 소자본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민간에 의해 출발했다.
이후 국제기구 또는 비정부기구(NGO)가 지원하거나 지역조합등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해왔다.
정부는 대출 신청자의 신용과 창업계획의 성공 여부 등을 따져 평균 500만~1억원까지 연 4~5%의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에서는 향후 10년간 25만명 가량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에 필요한 재원은 매년 500억원 가량 발생하는 은행의 휴면예금과 삼성 SK 현대차 LG 포스코 등 대기업들의 자발적 기부금 1조원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추진 배경에 대해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서민들의 자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출연체 등의 이유로 신용등급에서 7등급 이하는 은행 대출심사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대부업체나 불법 사금융을 이용하게 되고 높은 이자부담으로 인해 부채증가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동안 대부업체의 대출규모만 5조2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사금융 시장이 커진 것도 이같은 실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 사이에는 정부가 발표한 계획으로는 안정적인 사업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연 5%내외의 저금리로는 대출금 미회수에 따른 손실과 운영 경비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해외 대다수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기관들의 대출 이자율은 시장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기관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과 대출금 연체, 사업자의 부도에 따른 대손 부담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5%의 저금리 대출은 시장원리에 반하는 특혜성 지원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래 마이크로 크레디트라는 것은 저금리가 아닌 최소 연 15~20%의 고금리로 저신용자에게 돈을 꿔주는 것"이라며 "은행 금리와 비교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마치 정부가 지원한 농업보조금이 천문학적인 액수의 '농가 부채'로 쌓인 것과 마찬가지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도 미회수 상태의 대출만 쌓이고 기존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도 이같은 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한국적인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외국처럼 고금리 수준으로 대출을 하게 될 경우 다시 채무재조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원금와 이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저금리 대출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저금리=안 갚아도 되는 돈'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은 정부로서도 고민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원대상이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아니라 금융사각지대에 있는 저신용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불자는 일단 은행 · 카드사 등 제도권에서 돈을 빌렸다고 이를 갚지 못한 사람들로, 나중에 채무 재조정을 신청하면 원금과 이자 중 일부를 탕감받을 수 있다.
저신용자는 소득이 낮아 은행 대출을 받아볼 꿈도 못꾸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경우 자활 의지도 강하고 능력도 있지만 금융회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성공여부는 대출자에 대한 정확한 신용평가와 철저한 사후관리에 달려있다.
창업에 대한 컨설팅과 밀착 모니터링을 통해 회수율을 높여야만 제한된 대출재원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전국에 최대 300여곳까지 지점을 설치하고 금융회사 근무경력이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실제 은행과 같이 대출심사를 거쳐 돈을 빌려주고 회수도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무급봉사자들이 얼마나 꼼꼼하게 대출자의 신용을 점검하고 사후관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원래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연 소득이나 대출 연체 등 정량화된 신용기준에 미달하지만 성실하고 사업 성공 가능성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라며 "연 2~3%의 이자만 받고 대출자를 꼼꼼하게 걸러내거나 사후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은 '복지'가 아닌 '금융'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활의지가 없는 빈곤층을 복지정책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이자를 받고 대출해주는 '비즈니스'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수혜대상에서 제외하고, 중복지원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하는 한편 1회성 대출이 아닌 창업 컨설팅과 같은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세심한 지원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