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인종차별은 공동체 의식 깨뜨리고 사회불안 초래”

반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과 범죄 문제부터 해결해야”

인종차별 발언을 한 내국인이 처음으로 검찰에 약식기소된 것을 계기로 인종차별을 법으로 막자는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인종차별금지 법안을 준비 중인 민주당 전병헌 의원실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관련법안을 보완해 발의할 예정이다.

하지만 지난 6일 해당 법안을 인터넷 블로그에 공개한 후 법을 반대하는 댓글이 수없이 달리고 사무실에 항의전화가 쏟아지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반발이 어느 정도인 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인종차별금지 법제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외국인을 먼저 법적으로 보호해 줄 필요가 없고,이주민의 인권을 감싸고 돌면 거꾸로 내국인에 불이익이 돌아가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 쪽에서는 "헌법상 기본권의 주체인 국민은 참정권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편적인 인간'으로 해석하는 게 법조계의 대세"라며 "국외에서 한국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법제화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종차별금지법 제정 문제는 해묵은 논란거리의 하나다.

법무부는 2007년에도 인종과 민족,피부색 등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란 끝에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도 이제는 인종차별 금지를 위한 법을 마련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인종차별금지 법제화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인종차별은 공동체 의식을 훼손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

인종차별 금지 법제화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우리에게는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이 강하다"며 인종차별은 공동체 의식을 훼손할 뿐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110만명에 이르고,2050년이면 국내 거주자의 10%가 외국인이 될 것이란 보고서도 나와 있는 마당에 인종차별 문화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2007년 한국의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하면서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 이주여성의 차별 해소를 위한 법제화를 권고한 것도 새겨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은 개인적 차원의 모욕에 한정되지 않으며 고용과 교육,각종 서비스 이용 등 사회활동 전반에 걸쳐 이뤄지고 있다"며 인종차별금지의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민 개개인의 자각과 인식 전환만 기다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며 인종차별은 비인간적인 범죄행위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반대 측, "불법체류 외국인의 유입 급증과 범죄문제부터 해결해야"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내국인과 외국인 간 버스 내 시비의 원인 설명이 불투명했고, 사태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냄새가 난다"는 한마디 말로 인종차별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외국인을 인종차별하고 있다는 전제 자체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불법체류 자체가 범법행위이며, 이들은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달러를 유출시킨다"며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보다는 오히려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의 무분별한 유입과 범죄 발생, 우리 시민의 생계 위협 등의 문제가 더 심각한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지문날인 폐지와 허술한 출입국 관리로 외국인 불법 체류자가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인종차별금지법까지 서둘러 마련할 필요가 없다고 꼬집는다.

땀흘려 일하고 세금 내고 국방의무를 준수한 우리 국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당면 과제라고 강조한다.

⊙ 외국인 차별 · 모욕 금지하는 법적 · 제도적 장치 마련 서둘러야

국내 거주 외국인은 110만명을 넘어섰다.

결혼 이주여성은 지난해까지 12만8000여 명에 이른다.

40년 뒤 한국 인구의 10명 중 1명은 외국인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아직도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외국인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차별받는 외국인들의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인종차별 문제는 개인적인 모욕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취업 · 교육 · 상거래 등 사회활동 전반에 걸친 차별은 또 얼마나 심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적 · 제도적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법무부가 재작년 인종 · 병력 등 20가지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란 끝에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국회가 앞장서 법적 조치를 강구해나가야 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차별금지 대상 영역에 대한 논란으로 사회적 합의가 자꾸 늦춰질 경우 장애인차별금지법처럼 인종차별을 따로 떼내 법안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김새나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모욕하는 행위는 부끄럽고 야만적인 행동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차별금지법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고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으로, 법무부가 2007년 10월2일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논란 끝에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인종 · 국가 · 민족 · 피부색 등을 이유로 악의적인 인종차별을 하면 인권위의 시정명령을 거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인종차별금지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

국제 결혼이나 문화 무역 정치 공연 등 국제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에 외국인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사회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국제결혼으로 이루어진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어나면서 순수한 민족이 아닌 여러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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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9월6일자 보도기사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한국 남성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소됐다.

6일 법무법인 공감 등에 따르면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형사2부는 지난달 31일 형법상 모욕 혐의로 박모씨(31)를 약식기소했다.

박씨는 지난 7월10일 오후 9시께 버스에 함께 탄 인도인 보노짓 후세인 성공회대 연구교수(28)에게 "더럽다" "냄새 난다" 등의 발언을 해 모욕감을 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박씨도 후세인씨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며 맞고소했다가 취하했다.

일부 선진국과 달리 국내에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위를 규제하는 법규가 없어 박씨는 일반 형법으로 약식기소됐다.

김주선 부천지청 차장검사는 "국내 법은 이런 상황에 대해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을 두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보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