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SSM의 출현…소비자 편익이냐, 동네 상인 생존권이냐
대기업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중소 상인들이 SSM 출점을 막기 위해 정부에 사업조정을 신청하고 천막 농성과 집회, 불매 운동 등 집단 행동에 나서자 물리적인 충돌을 우려한 유통업체들이 마찰을 빚고 있는 지역의 출점(점포를 새로 여는 것)을 잇따라 보류하고 있다.

지역 상인들의 거센 저항과 집단적인 반발에 유통업체들이 한발 물러선 형국이다.

정부의 중재로 양측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모여 상생 방안을 찾는 등 자율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SSM에 대한 시각차가 워낙 커 쉽게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양측간 갈등이 힘겨루기 양상으로 비화돼 정면 충돌할 소지도 남아 있다.

유통업체들은 상인들의 반발이 적은 지역 위주로 정부의 법적규제가 발동되기 전에 출점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맞서 상인들도 사업조정 신청 대상을 신규 점포뿐 아니라 이미 문을 열어 영업 중인 기존 SSM으로 확대하고 있다.

⊙ 영세상인 위기감 고조

대형 유통업체들과 지역 중소 상인간 마찰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대형마트 출점을 둘러싸고 충돌한 사례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마찰을 빚으며 지역 상인들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유통업체들이 지난해부터 SSM을 급속도로 늘리며 동네 상권을 급속도로 파고들자 중소 상인들이 대형마트도 SSM에 대해 더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삼성테스코),‘롯데슈퍼’(롯데쇼핑),‘GS수퍼마켓’(GS리테일) 등 SSM ‘빅3’의 점포 수는 2007년말 218개에서 지난해말 328개,지난달말 현재 422개로 급증했다.

1년반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마트도 지난달부터 소형 점포(이마트 에브리데이)를 본격적으로 열기 시작해 8호점까지 냈다.

국내 대형마트 시장이 포화상태에 도달해 새로 점포를 내기 힘들어 지지면서 성장의 한계를 느낀 대형업체들이 새로 동네 상권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는 전략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 대형 유통업체들이 골목까지 파고 들면서 동네 구멍가게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기 시작한 점이다.

일반 슈퍼나 정육점,과일·야채가게를 운영하는 영세 상인들이 불황으로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는 상황에서 바로 코앞에 생계를 위협하는 덩치 큰 SSM이 등장하자 ‘출점 저지 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에 맞춰 정부가 서민지원대책의 일환으로 SSM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지원 사격에 나서면서 중소 상인들의 저항이 조직화됐다.
[Cover Story] SSM의 출현…소비자 편익이냐, 동네 상인 생존권이냐
⊙ 소비자 편익 증대 VS 동네상권 몰락

SSM 확산이 소비자 이익과 유통산업 발전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양측의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SSM은 집 근처에서 양질의 신선식품과 생활용품을 값싸게 구매하려는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는 게 대형 유통업체들의 주장이다.

소비자들도 우호적이다.

실제로 MBC가 전문조사업체인 멤브레인에 의뢰해 소비자 299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4%가 SSM 입점에 찬성했고 반대는 29.4%에 불과했다.

반면 중소 상인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마케팅력을 갖춘 SSM때문에 결국 동네슈퍼나 정육점,야채가게 등이 모두 문을 닫게 돼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대형마트나 백화점, 편의점 등에 이어 슈퍼마켓까지 모든 유통채널을 싹쓸이해 독과점을 초래하면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기업형 슈퍼마켓은 지역 상인들을 몰락시켜 동네상권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유통업체들은 손님을 끌어 모으는 힘(집객력)이 높은 SSM이 오히려 동네상권을 활성화시킨다고 맞서고 있다.

SSM이 들어선 이후 문닫은 슈퍼보다 새로 문을 연 슈퍼가 더 많았고 폐업한 곳도 다른 업종으로 전환해 상권력이 더 커졌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상반된 견해는 SSM 규제 문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김경배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SSM규제는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며 “신규 출점 제한은 물론 기존 점포에 대해서도 영업시간 제한이나 품목조정 등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대형 유통업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SSM규제는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며 “시장 경쟁 원리에 어긋나고 유통산업 발전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자발적인 ‘상생협력’ 방안 찾아야

SSM 갈등에서 중소상인들의 무기로 등장한 것이 ‘사업조정제도’다.

지역 중소상인들이 사업조정 신청으로 대기업들의 SSM 개점이 잇따라 보류됐다.

하지만 이 제도는 자율 조정에 실패할 경우 양측의 갈등을 심화하고 장기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등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일부 지역에서 나타는 것처럼 아파트 부녀회 등 SSM을 지지하는 소비자들이 조직화될 경우 지역내 갈등도 발생시킬 소지도 있다.

이의준 중소기업청 소상공인정책국장은 “정부가 개입하기 전에 업계 스스로 지역 현실에 맞게 문제를 푸는 게 바람직하다”며 “최근 부산의 농협 하나로마트와 용호시장이 매장면적 축소와 영업시간 조정에 서로 합의한 게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도 정부가 시장 원리에 거스르는 규제에 나서기보다는 업계 스스로 상생협력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정희 유통학회장(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은 “대형 업체들은 시장논리뿐 아니라 사회 현실을 고려해 과도한 마케팅 자제,영업시간 제한 등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중소상인들은 경쟁력을 높이고 공정거래 환경을 조성하는 협력방안을 얻어내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용어설명

사업조정제

대기업이 중소기업 시장에 뛰어들어 경영에 피해를 줄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중재에 나서 자율 조정에 실패할 경우 대기업에 사업 진출을 늦추거나 생산(판매)품목·수량 등의 축소를 권고하는 제도다.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기업활동에는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중소기업 단체가 신청을 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실태 조사를 한 뒤 중소기업청에 의견서를 내게 된다.이후 중기청이 심의해 90일내 대기업의 진출을 최장 6년까지 연기하거나,생산 축소를 권고할 수 있다.

SSM

슈퍼 슈퍼마켓(Super Supermarket)의 약자로 원래 동네 슈퍼마켓보다 크고 대형마트보다 작은 소매점을 이르는 말.660~1650㎡(200~500평)사이의 점포를 뜻했으나 최근 대형 유통업체들이 330㎡(100평)안팎의 소형 점포를 주로 내면서 규모에 상관없이 대기업이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을 통칭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