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인간에게 일을 하라고 손발을 줬다"… 자본주의 사상 전도
[Focus] 종교 개혁의 주역 '존 칼빈' 탄생 500주년
칼빈은 1509년 7월10일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 느와용(Noyon)에서 태어났다.

칼빈의 아버지는 지방 귀족의 비서 · 경리 등으로 일한 소시민이었다.

그는 파리대에서 신학을, 보르주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533년 교회를 초기 사도시대의 순수한 모습으로 복귀시킬 것을 다짐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 교회 개혁 운동을 펼쳐 나갔다.

1535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이단을 박해하자 스위스의 바젤로 피신해 있던 중 당시 종교개혁가인 파렐의 요청을 받고 그와 함께 스위스의 종교개혁 운동에 참가했다.

그는 자신이 생각을 집약한 '기독교 강요'라는 저서를 펴냈다.

그는 1540년부터 제네바 목사를 맡아 교회 제도를 정비하는 등 신권정치에 기반을 둔 엄격한 개혁을 추진해나갔다.

그는 루터와 츠빙글리 등 종교 개혁자와 동료들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기초를 만들기도 했다.

그가 1559년 스위스에 세운 '제네바 아카데미'는 한 해 1600여명의 학생이 몰렸고 이들이 출신 국가로 돌아가 종교개혁의 주역이 됐다.

⊙ 칼빈주의의 핵심은 예정설

칼빈은 이중(二重) 예정설에 입각한 현실적 신앙을 강조했다.

이중 예정설은 유일신이 구원과 멸망을 이미 예정해 놓았으며,아무리 착한 일을 하더라도 이것을 바꿀 수 없고 사람은 단지 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교리이다.

그러나 예정됐다는 사실은 확인될 수 없으며 단지 개인이 스스로 선택된 자라고 믿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칼빈이 확인 방법으로 제시하는 유일한 수단은 소명(Calling)이다.

소명은 하늘의 부름이며 이에 대한 응답은 직업과 직분을 충실하는 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업은 곧 하나님의 부름이므로 거기에 충성하면 곧 신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칼빈은 강조했다.

노동자들은 임금이 많든 적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사업가들도 사업으로 번 돈을 노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재투자해 사업을 더욱 번창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특히 근검하고 절약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게으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손발을 주었고 산업을 주었기 때문이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 자신 또한 죽기 직전까지 병석에 누워서도 저작활동을 계속했다.

이러한 사상은 부의 축적을 정당화하고 경제적 활동을 보장하는 것이어서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다.

그는 또한 가톨릭 교회의 미사를 폐지하고 예배를 설교 중심으로 만들었으며,교회 제도에 관해서는 목사 · 교사 · 장로 · 집사 등 4개의 직무를 정하고,목사와 장로로 이뤄진 콘시스토리움에 따라 교회가 운영되도록 했다.

오늘날 예수교 장로회를 창시한 이도 칼빈이다.

⊙ 근대국가의 기틀 마련

칼빈의 사상은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 파급돼 프랑스의 위그노파,스코틀랜드의 장로파,잉글랜드의 침례파 등 다양한 개혁교회를 탄생시켰다.

그의 사상은 교회 신학뿐만 아니라 근대 서구 문화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서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두 이념이 모두 칼빈의 사상에서 유래하였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서구 자본주의가 칼빈주의의 금욕주의 정신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원천인 자본 축적과 시장 경제의 자유스런 활동, 이윤 추구, 노동의 자유, 기술의 발전 등이 칼빈의 예정설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이윤만을 추구하는 경제 체제는 칼빈의 입장으로 볼 때는 신의 소명과 어긋나 있다.

칼빈의 사상은 또 영국의 명예혁명을 비롯 프랑스 혁명, 청교도 혁명, 미국의 독립 혁명 등 각국 근대 시민 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미국 건국의 정신적 기틀이 된 퓨리터니즘(청교도)정신은 이러한 칼빈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소명의식'이 현대 미국인의 정신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

즉 부를 쌓고 사회적으로 성공함으로써,그리고 신이 베푼 자유를 세계에 널리 퍼트림으로써 소명을 확인하는 것이 미국인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와 미국을 이해하려면 이러한 칼빈주의 사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본을 투기화하고 물신주의만을 강조하는 투기 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칼빈주의의 가치는 그 빛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