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 보장없고 계약 어겨 신뢰성 잃어
[Cover Story] '불확실성' 너무 큰 북한…남북 경협은 아슬아슬 '외줄 타기'
북한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언덕에는 1987년 착공했지만 아직도 완공되지 않은 105층짜리 피라미드형 대형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323m 높이의 유경(柳京)호텔이다.

고 김일성 주석이 80세를 맞는1992년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1989년 외부 골조공사가 완료된 이후 합작파
트너인 프랑스 기업이 공사대금 체불과 계약 위반을 이유로 철수해버렸다.

유경호텔은 이후 20년 가까이 공사를 진행하지 못해 콘크리트 외벽이 떨어져 나가 일부 철근이 노출되고 부식이 진행되면서 평양의 흉물로 남아 있었다.

지난해 1월 미국 남성지 ‘에스콰이어(Esquire)’는 유경호텔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건물(The Worst Building in the History of Mankind)’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은 지난해 3월에야 이집트의 오라스콤그룹 등을 공사에 참여시켜 외관공사를 진행 중이다.

완공 목표는 2012년이다.

북한이 이집트 · 홍콩 · 프랑스 · 일본기업의 합작 투자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관광객이 적어 현재 평양의 외국인 전용 호텔도 텅텅 비어있는 상태에서 유경호텔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경호텔은 북한 개혁 · 개방 정책의 한계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제성'을 따지지 않고 '정치적 목적'에서 추진됐으며 자본 부족으로 공사를 진행하지 못했고 계약을 수시로 위반해 합작 파트너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자유로운 관광이 허용되지 않아 호텔 객실에 대한 수요도 불확실하다.

⊙ 북한 경제개혁 · 개방의 한계

북한은 2002년 7월 '7 · 1 경제관리조치'(7 · 1 조치)를 발표해 '북한식' 경제 개혁 · 개방을 추진했다.

계획경제의 틀 내에서 시장경제 기능을 일부 도입한 조치로 경제 분권화,화폐화,시장화를 추진했다.

우선 기업관리와 농업관리를 분권화해 기업 단위,30~40명의 분임 단위로 재정을 독립시키고 임금 차등 배분을 도입하는 등 자율화 정책을 추진했다.

생산물 가격을 제한했던 가격체계도 현실화시켜 모든 재화 가격을 시장가격 수준과 비슷하게 평균 25배 이상 올렸다.

유통망에도 시장기능을 도입해 사적 상업활동도 허용했다.

하지만 북한은 7 · 1조치를 시행하면서 경제목표로 "원칙을 지키되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실리사회주의 노선'을 제기하면서도 곧바로 2002년 9월 '선군시대 경제건설 노선'이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시장경제 기능을 일부 도입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획경제의 기본틀 내에서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즉 중국처럼 장기적으로 시장화를 지향하는 개혁 · 개방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식 개혁 · 개방 모델은 북한식 체제유지에 부정적이라고 보고 개혁 · 개방의 속도를 최대한 완만하게 조절해 가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 신변 안전 위협하고… 계약 어기고…

이 같은 개혁 · 개방 원칙의 한계는 구체적으로 금강산 사업이나 개성공단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은 경제 발전보다는 체제 안정이 우선이다.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경협이나 금강산관광 사업도 체제 안정을 전제로 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시장경제 원칙이나 우리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도 많이 벌어졌다.

일부 금강산 관광객들이 북한 체제 비판 발언을 했다고 해서 며칠간 억류돼 조사받기도 했고 급기야 새벽 산책길을 잘못 들어섰던 관광객이 북한 초병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

남북 관계의 악화에 따라 금강산 관광이 일정 기간 중단되기도 했다.

이번에는 개성공단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북한의 임금 인상 요구로 시작돼 현대 아산 직원의 억류,우리 측의 원칙적인 대응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개성공단 기업들에 대한 주문이 감소했고 생산액도 그에 따라 줄어들고 있다.

입주기업들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유급휴가를 보내기 시작해 최근 그 숫자가 5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경제에서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북한에서는 상시적인 일이다.

⊙ '원칙적 대응' 목소리 높아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북한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북한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는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최근 현대아산 직원 억류 사태와 관련 "(개성공단은)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우리 국민을 볼모로 잡을 수 있는 상황"이라며 "개성공단을 폐쇄하자는 것이 아니라 공단 내에서 우리 국민을 철수하는 게 정부로서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북한과 경협 사업을 추진한다면 먼저 법적 · 제도적 투명성과 신변 안전이 철저히 보장돼야 하는 게 순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단절된 남북대화는 역설적이지만 남북관계의 재정립 기회가 될 수 있다.

잘못된 대북정책과 왜곡된 남북관계를 바로잡지 않으면 앞으로도 남북관계는 정상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정재형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jh@hankyung.com

-------------------------------------------------------------

‘초코파이 효과’가 두려워?

자본주의 ‘단맛’ 본 북한 주민들

[Cover Story] '불확실성' 너무 큰 북한…남북 경협은 아슬아슬 '외줄 타기'
북한이 금강산 사업이나 개성공단 문제에서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체제 안정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적인 사고와 생활방식이 북한 주민들에게 익숙해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개성공단에서 남한 문화가 북한 사회에 스며드는 현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다름 아닌 초코파이 얘기다.

북한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업체들이 북한 근로자들에게 아침 · 점심 사이 간식으로 나눠주는 초코파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2005년부터 일부 업체들이 근로자들에게 사기 진작 차원에서 나눠주던 것이 입소문을 통해 이제는 대부분의 업체에서 고정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처음에 초코파이를 1개씩 나눠줬는데 빈 봉지가 나오지 않기에 알아 보니 아이들에게 주려고 먹지 않고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2개씩 줬다. 지금은 4개까지 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근로자들 사이에는 '초코파이 계(契)'라는 것도 생겼다.

각자 받은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가 순번을 정해 한 사람에게 몇십 개를 몰아줘 가족이 나눠 먹고 친지에게 선물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반출된 초코파이는 평양 근처의 시장은 물론 신의주 · 용천 등 북한 전역에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초코파이 한 개가 북한돈 500원(약 0.14달러)에 판매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 당국이 처음에는 개성공단에서 초코파이가 반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썼지만 수많은 근로자들을 일일이 검색할 수 없어 이제는 거의 포기한 상태"라며 "초코파이는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 단맛을 보여주는 대표적 상품"이라고 했다.

가히 '초코파이 효과'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