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생활 현장에서 인간을 대신해 궂은 일 ‘척척’

로봇이 인간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산업현장은 물론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전쟁터, 가정의 크고 작은 일까지 로봇의 영역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각국의 로봇 상품화 경쟁도 후끈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 인간 목숨 대신하는 전쟁터의 로봇들

[Global Issue] 성큼 다가온 로봇 시대…전쟁까지 대신해준다
건물 안에 숨은 한 저격병이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저 앞 교차로를 지나갈 것이 틀림없는 적을 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타난 건 1m 남짓한 높이의 무인 로봇.

병사는 상대적으로 약한 바퀴 부분을 노리고 총을 쏘아보지만 어림없다.

오히려 센서로 병사가 숨어있는 곳을 파악한 로봇이 기관총으로 역공을 가한다.

이라크전 당시 작은 전차 모양의 무인 전투로봇을 투입한 미군과 현지 게릴라의 전투 모습이다.

최근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상 전투로봇과 무인기 사용을 급격히 늘렸다.

위험 임무를 인명손실 없이 수행할 수 있고, 피로 · 공포 등 인간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도 작전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헬파이어 미사일 2발을 싣고 한번에 10시간을 비행할 수 있는 프레데터 무인기의 지난해 비행시간은 무려 13만8400시간.

2007년보다 97% 증가한 수치다.

캐터필러로 움직이며 차대 위에 로봇팔과 기관총을 장착한 채 폭발물 제거, 정찰 등 임무를 수행하는 지상전투용 로봇은 현재 이라크에만 1만2000대가 배치돼 있다.

군사용 로봇은 최근 일고 있는 '로봇 붐'의 한 단편일 뿐이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공장에서 쓰이는 산업용 로봇 수요는 10년 내 정체상태에 이르지만 개인용 서비스 로봇 시장은 2015년에 현재의 5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해 청소기, 창문닦기 등에 사용되는 서비스 로봇의 숫자는 700만여대에 달했다.

또 수술용 로봇, 노인수발용 로봇, 애완용 로봇 등 일상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 미국은 군사용… 일본은 개인용에 초점

현재 로봇 개발을 선도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과 일본이다.

미국은 주로 군사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미군은 10년 내에 보유 무인기를 전체 지상 공격기의 3분의 1 수준으로 늘리고, 15년 후엔 지상 전투차량의 3분의 1 이상을 로봇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2012년까지 기술 개발에만 1000억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이런 대대적 지원 탓에 기술개발 속도도 빠르다.

일본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던 다족보행로봇의 경우 최근 공개된 4족 보행 견마형 로봇 빅 풋은 실제 당나귀처럼 돌부리에 걸려도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고 웬만한 지형에서 모두 운용이 가능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무거운 짐을 운반하느라 고생하는 미군을 위해 개발한 지 몇 년 만에 일군 성과다.

일본의 로봇 개발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서비스 로봇, 특히 인간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혼다에서 개발하고 있는 '아시모'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높이 130㎝, 무게 54㎏인 '아시모' 최신형은 인간의 느린 걸음 정도로 보행할 수 있다.

또 사람의 표정과 제스처를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10여가지 표정을 얼굴에 장착된 스크린을 통해 지어 보일 수 있다.

2007년 인간의 아기를 닮은 '아기로봇 CB2'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던 오사카대의 아사다 미노루 박사 연구팀은 최근 'CB2'가 인간의 표정을 흉내내고, 이에 반응하는 등 '사회성'을 습득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키 130㎝에 몸무게 33㎏으로,올해 두살인 이 아기로봇은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거리거나 방안에 있는 물건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눈동자를 굴리는 등 이 시기의 어린아이와 영락없이 똑같은 모습이다.

로봇 붐을 일으킨 요인으론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따른 인건비 급등 전망을 꼽을 수 있다.

또 사회가 개인화되면서 생활 보조 로봇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노인수발 간병 건강관리 청소 집안경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본의 경우 이미 저출산 · 고령화로 심각해진 노인 간병 인력 부족을 로봇으로 채울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둔 상황이다.

실제 마이크로 로봇이란 회사는 자체 개발한 헬스케어 로봇 '실버로봇'을 내달중 노인 요양시설과 실버타운 등에 시제품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이 실버로봇은 실시간 원격진료와 통신 기능을 갖추고 있다.

전자기술 발달로 로봇의 성능은 빠르게 향상되고 있지만 단가는 오히려 내려가는 추세다.

움직임을 감지하는 모션 센서의 가격은 5년 전에 개당 20달러 안팎이었지만, 최근 2달러 미만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센서성능 크기 전력소모량은 오히려 크게 줄었다.

로봇 제어 기술의 핵심인 인공지능기술도 급속도로 발달해 현재 개발되고 있는 로봇 중엔 6~7세 아동의 지능을 갖춘 것도 존재한다.

'현대판 기계 하인'이 속속 등장하는 셈이다.

⊙ 10년 내 로봇 생활화 예상

[Global Issue] 성큼 다가온 로봇 시대…전쟁까지 대신해준다
최근 로봇 기술의 화두는 네트워크다.

로봇의 기능은 △외부 환경감지 △판단 △행동의 세가지로 나뉜다.

네트워크 로봇 기술은 이 세 가지 기능을 다수의 로봇에서 분산해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대의 로봇이 획득한 정보를 결합해 더 정확한 인식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복수의 컴퓨터에서 정보가 분산처리 돼 로봇에 장착된 인공지능(AI)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멀리 떨어진 로봇도 네트워크로 묶이면 한 대의 로봇처럼 행동할 수 있다.

인간의 팔에 가까운 행동을 할 수 있는 다관절 로봇의 연구도 활발하다.

유연성과 정밀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다관절 로봇은 의료용 로봇이나 산업용 로봇등에 파급효과가 크다.

물컹한 돼지고기에서 작은 뼈들을 자동으로 발라내는 기계를 만들어낸 독일 생산기술자동화연구소(IPA)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뇌 또는 척추를 0.1㎜ 정밀도로 시술하는 의료용 로봇을 개발했다.

아직은 시장이 넓지 않고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전문가들은 10년 내로 생활 곳곳에서 로봇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일본로봇협회(JRA)는 2010년 서비스 로봇의 매출이 산업용 로봇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JRA는 특히 가정에서 가사 엔터테인먼트 경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홈로봇 시장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로봇 시대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한편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한 윤리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 연구팀은 "로봇이 프로그램대로만 행동할 것이라는 통념은 완전히 낡은 생각"이라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제대로 된 답변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제조업자,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로봇 소유자, 로봇 이용자 모두 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비로봇의 인공지능이 잘못돼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만들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지, 병원에서 환자에게 약을 나르는 로봇이 잘못된 약을 나눠주어 의료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 지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는 실정이다.

조귀동 한국경제신문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