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성적 지상주의 개선하고 공교육 되살릴것”

반 “대학들 입맛에 맞는 학생 뽑기 위한 도구”

시험 점수에 구애받지 않고 입시전문가가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선발하는 입학사정관 제도가 2010년 대입의 화두로 떠올랐다.

KAIST가 일반고 학생 150명을 입학사정관에 의해 선발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포스텍이 신입생 전원을 입학사정관제로 뽑겠다고 나섰다.

고려대,한국외대,성균관대 등이 올해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 확충 계획을 내놨다.

뿐만 아니라 홍익대 미술대학도 대입전형에서 실기고사 비중을 단계적으로 줄여 2013학년도 입시부터는 실기고사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에서도 정책적 지원에 나서 입학사정관제를 위해 올해에만 236억원의 예산을 쓴다고 한다.

대학마다 세부사항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입학사정관제는 기본적으로 대학이 입학업무에 밝은 전문가를 채용해 이들의 눈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은 내신과 수능 등 성적뿐 아니라 소질과 경험,성장 환경,성취도,창의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입학생을 선발한다.

시험성적은 좋지 않아도 다른 분야에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인재를 골라내는 권한과 임무를 입학사정관에게 부여하는 셈이다.

오로지 성적순에 의해서만 선발해온 지금까지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입학사정관제가 제대로 운영되고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입시를 둘러싼 폐단을 해결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과연 이 제도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느냐는 점이다.

입학사정관제도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본다.

⊙ 찬성 측, "성적 지상주의 풍토 개선하고 공교육 되살릴 것"

입학사정관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단순히 수능 성적 순으로 학생을 뽑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학력수준은 높지 않지만 인성이 바르고 잠재력이 풍부하며 창의성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학교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운 표현력과 창의력을 키워온 학생들을 선발함으로써 성적 지상주의 풍토도 사라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학들이 학교장 추천과 심층면접 등을 통해 자질이 뛰어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마다 입시를 다르게 치르고 면접이나 시험방법을 미리 결정하지 않는 등 운용의 묘를 살린다면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한 사교육 유발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또 "그동안 미술 실기고사로 인해 고액 과외가 성행하고 입시 과정에서 교수와 입시학원 간 유착 의혹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며 실기고사가 폐지되면 미술 사교육 문제도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입시를 둘러싼 폐단을 해결하고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새 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대학이 입맛에 맞는 학생 뽑기 위한 도구로 전락 우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입시정책은 3년 전에 예고하는 게 보통"이라며 대학들이 불쑥 발표한 입시제도에 맞추기 위해 고등학교가 기존 학업평가제도와 별개의 평가 틀을 만들어야 할 판이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특히 "입학사정관의 판단이 선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정성과 신뢰가 생명"이라며 우리 사회와 대학이 과연 새 제도를 시행할 만큼 성숙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꼬집는다.

자칫 이 제도가 대학들이 입맛에 맞는 학생들을 골라 뽑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미술가에게 창의성이 필요하지만 작품으로 표현해내는 능력도 중요한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실기고사 자체를 없애고 미술 전문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대학별 입시 안이 속속 발표되면 공교육은 일일이 적응하기 어렵게 되고 결국 사교육만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입시제도의 개혁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수시로 제도를 바꿔서는 결코 안 된다는 입장이다.

⊙ 입학사정관 전형 큰 틀부터 마련하고 철저한 관리 감독 뒤따라야

입학사정관제는 입시의 점수 경쟁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취지는 바람직하다.

특히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어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풍토와 현실을 감안할 때 조금만 삐끗하면 말썽나기 십상인 제도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학 측의 철저한 준비와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성과 신뢰도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이 선발하려는 인재의 개념을 먼저 규정하고 이런 인재를 어떤 원칙과 기준에서 뽑을 것인지 입학사정관 전형의 큰 틀부터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다음 고도의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갖춘 입학사정관을 많이 확보해 전형에 나서야 한다.

선발한 뒤에도 사후 검증을 통해 연구 데이터를 축적해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사람을 보고 뽑는 정성적 평가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입학사정관제 도입 대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철저한 관리 · 감독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풀이 >

입학사정관(admissions officer) : 학생의 성적과 개인 환경,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학생을 선발하고,연중 입학업무를 전담하는 사람을 말한다.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대학의 학생선발 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이다. 학생들의 성적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평가하기 위해 직접 일선 고교를 찾아가 '학생 발굴'에 나서는 작업도 수행하게 된다.

입학사정관제도 : 대학이 입학사정관을 채용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로, 1920년대 미국에서 처음으로 도입됐다. 대학이나 모집단위별 특성에 따라 보다 자유로운 방법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게 되며 특별활동,봉사활동,자기소개서,에세이,인터뷰 등이 주요 평가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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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3월13일자 보도 기사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13일 최근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해 "학교별로 어떻게 학생을 뽑을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안 장관은 이날 오전 SBS 라디오 '이승열,한수진의 SBS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제도가 새로 전개되면 혼동이 있다.

그건 불가피하게 따라오는 것"이라며 "그 혼동을 빨리 없애기 위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시비에 대해 "당장에 잘될 거라 얘기하긴 힘들고 시간이 좀 필요하다"며 "지금 각 대학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고,정부로서도 대교협을 중심으로 워크숍을 열어 올바른 방향으로 제도를 정착시키려 한다"고 소개했다.

안 장관은 "가이드라인의 첫 번째는 학생을 제대로 뽑을 수 있도록 입학사정관에 대한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학교 규모에 따라 사정관 수도 달라져야 하며 같은 수능 점수를 놓고서도 달리 판별할 수 있어야 입학사정관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장관은 "학생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성,미래 가능성,학생이 자란 환경,학교 등을 전부 고려해 뽑는 이 제도가 정착된다면 지금처럼 시험에만 매달려 사교육비를 쏟아붓는 비정상적인 교육제도가 없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