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日등 마이너스 성장 전망… 실업자만 늘어난다

[Global Issue] 금융위기 6개월… 세계 경제 날개없는 추락
"세계 경제가 올해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할 것."

세계은행이 지난 8일 내놓은 이 같은 전망은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을 비롯해 신흥국들의 경제 하강이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의 현주소다.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은 경제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말이고 그만큼 실업자가 늘어나고 사람들의 삶이 고단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 다니는 부모님의 소득이 줄어들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가족 전체의 삶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미국의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가 지난해 9월 15일 파산보호를 신청하며 본격화한 세계 금융위기는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파산보호란 회사가 망해 파산하는 절차를 말한다.

금융위기로 시작된 신용경색으로 망하지 않은 기업도 직원들을 해고하고 있다.

직원들이 해고되면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월급이 줄어들게 되면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게 되고 이는 기업을 다시 어렵게 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 끝이 보이지 않는 금융시장 악화

전 세계 경기침체를 불러왔던 미국의 금융시장은 오바마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다시 위기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도 주가 폭락과 위기설에 시달리던 씨티그룹은 결국 국유화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씨티그룹은 지난 2월 27일 정부가 보유한 250억달러 규모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 36%의 지분을 미 재무부에 넘겼다.

세계 최대 금융 왕국을 노리던 씨티그룹이 금융위기 속에 정부로 지배권이 넘어가는 굴욕을 겪게 된 것이다.

기업이 망하면 파산을 하고 남은 재산을 정리해 회사를 청산해 버리지만 은행을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너무 경제에 주는 충격이 크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이 은행을 통째로 사들여 경영하게 된 것이다.

이미 세 차례에 걸쳐 1500억달러를 지원받은 AIG라는 보험회사는 미 정부에 또 손을 벌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지난해 4분기 617억달러라는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AIG는 추가로 300억달러를 지원받기로 결정, 부실의 골이 여전히 깊다는 것을 보여줬다.

AIG는 우리나라에도 진출해있는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다.

⊙ 달러를 구하기 어렵다

이번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먼저 터져나왔다.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 미국 화폐인 달러는 그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의 경우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설적이게도 달러가치가 더욱 올라가고 있다.

위기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그래도 달러가 가장 안전한 돈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탓이다.

더구나 해외에 유출되어 있던 달러화가 위기를 맞아 속속 본국으로 되돌아가면서 전 세계에 달러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원 · 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올라선 것도 이런 이유다.

한국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 달러 가치가 올라가는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신흥국가로 유입된 민간부문 달러화 투자금은 2007년에 9280억달러였으나 지난해 4660억달러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그 액수가 1650억달러로 급감할 전망이라면서 신흥국가들이 달러화를 구하지 못해 파산할 처지에 놓였고 이들이 채무불이행 상태로 빠지면 세계 경제가 다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했다.

⊙ 마이너스 성장하는 세계경제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경기침체는 세계 각국의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돌려세우고 있다.

미국의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2%를 기록해 앞서 발표된 추정치인 -3.8%보다 훨씬 악화됐다.

실업률은 1월의 7.6%에서 2월에는 8.1%로 높아져 25년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대규모 실업사태와 소비 위축으로 올해 1분기에도 미국의 GDP는 5%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1940년대 이후 처음 두 분기 연속 5% 이상 역성장을 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GDP는 일정한 기간 동안 국내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를 모두 합친 것을 말한다.

유럽 경제도 곤두박질치고 있다.

유로존 GDP는 작년 2분기와 3분기 연속 0.2% 감소했고 EU 전체로는 3분기 -0.3%에 이어 4분기에는 GDP가 1.5%나 감소했다.

유럽의 경제대국 독일도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개월 전의 -0.5%에서 -2.7%로 대폭 낮춰 -2.2~-3.2%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만큼 경기가 당초 예상보다 급격히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계 2위 경제국인 일본도 작년 4분기 GDP가 연율 기준으로 12.7%나 줄어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가장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는 등 경제 위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선진 경제권의 추락은 그동안 급성장했던 신흥시장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중국은 작년 4분기 성장률이 6.8%에 그쳐 2001년 4분기의 6.6% 이후 7년 만에 성장률이 6%대로 떨어졌고,인도의 경우도 지난해 10~12월 성장률이 5.3%에 그쳐 6년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또 러시아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면

성장률 -1%가 무엇이 그다지 어렵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경제는 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민들의 삶을 유지하게 된다.

나라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나라는 성장률이 3% 이상 되어야 국민들이 느끼는 생활의 질은 현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만일 3%를 밑돌면 이미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고 더구나 마이너스가 되면 생활이 급속도로 쪼그라들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성장률은 그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해마다 대학에서 수십만의 졸업생이 쏟아지지만 성장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일자리를 얻지 못한 청년실업자가 넘치게 될 것은 뻔하다.

단순히 우리의 용돈을 조금 줄이면 되는 그런 어려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면 그나마 여유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버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생활을 해왔던 저소득 계층은 바로 경제적 궁핍으로 치닫게 된다.

⊙ 멀어지는 조기 회복 기대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최대의 소비국인 미국 경제가 살아나야 하지만 조속한 회복의 기대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금융위기로 인한 손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는 기업들이 종업원을 줄이고 이는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봤던 전문가들도 이제는 기대치를 낮추고,비관론자들은 더 심각한 침체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지금의 금융위기를 예견해 '닥더 둠(종말 박사)'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9일 한 회의에서 금융위기 손실이 3조60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면서 미국의 GDP 증가율이 내년에 '제로'에 그치고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경기침체가 3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1930년대 대공황(Great Depression) 이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꺼려왔던 용어인 '불황'(Depression)이란 단어가 창고에서 먼지를 털어내고 나오고 있다며 현재의 경제위기가 얼마나 심각한 국면에 이르렀는지를 전하기도 했다.

서기열 한국경제신문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