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생명윤리 문제로 연구개발 막는건 국가적 불행”

반 “생명을 희생해서 난치병 잡겠다는 건 反윤리적”

미국 정부가 최근 줄기세포 연구를 적극 지원키로 방침을 선회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배아 줄기세포 연구 허용문제를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산업계 등에서는 각종 난치병 치료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우리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하루빨리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결단으로 미국을 비롯 주요국들 간 줄기세포 연구 경쟁이 가열될 수밖에 없게 된 만큼 우리도 관련 규제를 풀고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계와 일부 학계 등에서는 "배아 자체도 존엄한 생명이기 때문에 과학연구의 재료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배아 줄기세포 연구 허용에 반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로선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줄기세포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한때 체세포 배아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 연구흐름을 주도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배아 줄기세포 관련 논문조작 파문을 몰고온 '황우석 덫'에 걸려 4년째 연구가 사실상 멈춰선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이 미국은 배아 줄기세포 임상시험을 시작했으며 일본과 유럽,중국 등도 연구성과를 속속 내놓았다.

세계 줄기세포 연구 흐름을 주도해 온 우리가 이제는 경쟁대열에서 낙오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할 상황에 몰리고 만 셈이다.

문제는 이런데도 우리만 생명윤리를 명분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규제하는 게 과연 바람직하느냐는 점이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미래 성장동력 확보 위해 연구 지원에 발 벗고 나서야"

배아 줄기세포 연구 허용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주요국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당뇨병 등 난치병을 퇴치할 수 있다는 의학적 중요성뿐 아니라 바이오 분야가 미래성장 동력이기 때문"이라며 우리 정부도 줄기세포 연구 지원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미국 등 선진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만큼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계획을 조속히 승인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우리는 황우석 사태로 인한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생명윤리 문제로 연구개발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윤리 문제에 관한 보완작업을 통해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하루속히 재개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줄기세포 연구 지원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념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해 과학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힌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 반대 측, "생명을 희생시켜 난치병 환자 돕겠다는 건 잘못된 발상"

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배아는 인간이 될 수 있는 생명체"라며 "생명을 희생해서 난치병 불치병 환자를 돕겠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존엄한 생명을 소재로 무슨 연구를 한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수단과 방법을 무시하고 목표만 바라보고 달리면 된다는 분위기와 경제성만 있으면 사회성이나 도덕성은 무시해도 된다는 풍토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황우석 사태에서도 잘 입증됐다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여성 취약계층이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연구용 난자를 제공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배아 줄기세포 기술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간 심장 콩팥과 같은 장기는 쉽게 만들 수 없다"며 관련 기술만 있으면 모든 난치병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줘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술만 있다면 기능인에 불과하다"며 과학자는 기술 외에도 철학적 의미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세포 복제연구 대신 역분화 줄기세포 연구에 주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연구는 지원하되 부작용 막을 엄격한 감독체계 구축에 힘써야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생명윤리 문제는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사안이다.

종교계 등이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생명과학자 중 상당수도 체세포 복제 대신 '역분화방식 연구'에 힘을 쏟도록 요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처럼 논란을 벌이는 사이 주요국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생명공학 분야 연구는 일단 한번 뒤처지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지원에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 당국은 그동안의 위축된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지원 체제를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계획을 승인하고 지원하는 것은 물론 엄격한 감독체계를 마련하는 데도 온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 난자를 많이 사용해야 하고 인간 복제문제 등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미리부터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풀이 >

역분화 줄기세포(iPS) : 분화가 끝난 체세포에 유전자를 넣어 만든 줄기세포를 말한다. 배아 줄기세포처럼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고 분열능력에 한계가 없으면서도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할 수 있는 유도만능 줄기세포로, 대표적인 '꿈의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황우석 사태 : 사람 난자로 부터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추출했다는 내용으로 2005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당시)의 논문 조작파문을 말한다.

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거나 인체에 해를 끼치는 것을 막고,생명과학기술이 인간의 질병예방 및 치료 등을 위해 이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4년에 제정됐다. 대통령 소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배아연구기관 · 유전자은행 · 유전자치료기관 등에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두며,인간을 복제하기 위해 체세포 복제배아를 자궁에 착상 · 유지 또는 출산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 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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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2월 17일자 A2면

미국 정부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재정지원을 재개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조만간 연방정부의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 재정지원 금지를 철회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할 것이라고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고문이 15일 밝혔다.

액설로드 고문은 이날 "대통령이 관련 검토를 하고 있으며 곧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을 재개함에 따라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선 2006년 '황우석 사태' 이후 줄기세포연구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와 수정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는 3년째 중단된 상태다.

다만 생명윤리법상 연구 목적 및 방법 등에서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현재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기관은 황 박사가 연구 책임자인 수암생명공학연구원과 차병원 두 곳뿐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지난 5일 차병원이 신청한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심의했으나 연구계획서에 미비점이 많다는 이유로 보류했다.

생명윤리위는 두 달 안에 수정 · 보완한 연구계획서를 다시 제출받아 재심의하기로 결정했다.

워싱턴=김홍열 한국경제신문 특파원/황경남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