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시위대에 짓밟히는 ‘법치’ … “이런 나라가 어디에…”
[Focus] 툭하면 두들겨 맞는 공권력… 경찰은 동네북?
공권력이 짓밟히고 있다.

경찰이 서울 한복판에서 두들겨 맞는 일은 이제 예삿일이 됐다.

작년 한 해 내내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부터 용산 철거민 불법 점거농성 참사, 그리고 최근 혜화경찰서 경찰관 폭행사건까지, 경찰은 이제 불법 시위대의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치안총수인 강희락 신임 경찰청장은 지난 9일 취임 일성으로 "불법과 폭력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작년 한 해 내내 정부와 검찰, 경찰이 지겹도록 반복해 온 말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의 지적대로 '도시 게릴라화'하고 있는 시위대의 기습을 막기란 역부족이다.

지난 7일 서울역광장에서 추모집회를 마치고 이동하던 용산철거민 범대위 시위대 일부의 폭력행위는 더 이상 사회 구성원으로서 보호해야 할 '정당한 행위'가 아니다.

이들은 동대문역 근처에서 무전기를 들고 있는 혜화서 박모 경사에게 달려들어 다짜고짜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이 중 한 명인 박모씨(53)는 지갑까지 빼앗아 신용카드로 점퍼 등을 구입했다.

또 혜화서 정보과장 최모 경정이 들고 있는 무전기를 보자 "경찰이다, 죽여라"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다.

최 경정은 "폭도와 같아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중 일부를 구속했지만 한두 명, 나아가 수십 명을 구속하더라도 본질적인 해결책은 못된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제 촛불, 그리고 경찰과 싸우는 불법 시위는 현 정부 내내 감기처럼 달고 살 것 같다"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실 가장 중요시해야 할 원칙은 '다원성'이다.

다원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와 남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와 남의 생각을 동등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즉 내 경험이나 지식에 기반해 생긴 의견과 주장이 소중하고 남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만큼 남의 것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생각에 대한 간격을 좁히려는 '대화'와 '타협'이 자유민주국가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편 자유민주국가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법치국가' 이념이다.

국가 구성뿐 아니라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규정하는 '게임의 룰'이 바로 법이다.

국가기관을 비롯한 헌정질서는 자유민주국가의 법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룰을 어기는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면 국가운영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경찰은 법치를 바로세우는 '공권력'의 상징이다.

바로 그 공권력이 지금 21세기 한국에서 1년 이상 불법 시위대에 유린당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한 발언은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시위대에 대처하는 경찰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시위대의 선전 선동과 일부 언론의 왜곡에 계속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용산참사가 벌어진 지난 1월 20일 오후 7~8시, 사건이 발생한 현장인 서울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건물 앞에는 시위대 1000여명이 속속 모여들였다.

경찰은 도로 밖으로 진출하려는 이들을 의경 13개 중대 1300여명을 동원해 힘겹게 막았다.

경찰은 스피커를 통해 오후 7시께부터 여경 목소리와 함께 "여러분의 심정을 저희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불법시위는 안 됩니다. 해산해주십시오. 해산하지 않는다면 법에 따라 조치하겠습니다"라고 수십 차례에 걸쳐 경고했다.

이에 시위대는 경찰에 "조용히 해 XXX아" "죽여"라고 응수하며 계속 한강로 8차선 도로 진출을 시도했다.

결국 경찰 저지선 일부가 오후 8시반을 전후해 뚫리면서 일부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자"며 돌격했고 경찰은 9시께 살수차로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 중 일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있었으며 경찰차가 파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경찰의 시위대 진압 장면만 골라 편집해 보도하면서 경찰 진압의 과잉성과 폭력성을 부각시켰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상황인데, 작년 촛불집회 상황 그대로다.

용산참사의 비극은 어느 한쪽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유와 과정을 불문하고 고귀한 국민의 목숨 6명이 희생됐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일부 미흡한 점이 있지만 진상규명은 제도적인 부분에서 끝났다.

비극을 담보로 폭력과 불법을 저질러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일부 용산철거민 범대위는 폭력과 불법을 일삼았던 작년 일부 촛불시위대와 다를 것이 없다.

이들은 전통적인 좌익성향의 단체에서부터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 등 구성원은 다양하다.

이들에겐 생각이 다르고 위치가 다르면 '투쟁'의 대상일 뿐이다.

또 정부와 검찰, 경찰에 대체로 증오심을 갖고 있다.

물론 검 · 경이라는 '공권력 중 공권력'에 대해 갖는 국민들의 불신과 적개심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권한이 막강하면 언제 어디서든 그 권한을 보고 달려드는 각종 유혹이 있게 마련이다.

최근 강남 경찰과 안마시술소 업자 간 유착 의혹 등 경찰 관련 비리는 하루이틀 들려오는 것이 아니다.

강 청장이 최근 취임식에서 "경찰조직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비리와 부정,자율을 빙자한 방종과 무책임의 '치명적 결함'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에서다.

수사기관의 고압적 태도와 정치 · 역사적인 문제 등도 고질적인 불신에 한몫한다.

그럼에도 '룰'인 법 자체를 깨부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투쟁의 대상으로 경찰을 택하는 것은 더욱 어불성설이다.

인간의 합리성이란 사실 유리같은 존재다.

극단적으로 경찰이 한 달간 없다고 생각해보자.

소위 말하는'무정부상태'가 된다.

절도 폭행 살인 강간 등 어떤 범죄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일부 경찰의 비리를 이유로 경찰 조직 전체가 매도당하는 상황은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력사건과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각종 과학적 수사기법을 동원해 불철주야 뛰는 경찰들이 많다.

서울 A경찰서의 B부서 팀장(경위)은 "(경찰 조직에) 인간들이 하도 많다 보니 별일이 다 일어나는데 솔직히 어쩔 도리가 없다"며 "한점 부끄럼없이 살고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 청장 역시 취임식에서 "우리 경찰이 온 몸을 던져 불법에 맞서고 있지만,예기치 못한 상황에 힘이 부치고 고단할 때도 있다"며 "경찰에 따스한 눈길과 격려를 보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이해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