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경쟁 지상주의 교육정책 전면수정해야”

반 “시행착오 있었다고 없애자는 건 억지”


10년 만에 부활한 전국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결과 조작 파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일제고사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등 교육 · 시민단체들은 "성적 조작이 있었던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는 무효화해야 한다"며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서열화된 성적공개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 단체는 전국 초등학교 4학년~중학교 3학년생을 대상으로 3월10일 치러지는 학력 진단평가를 거부하기로 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쪽에서는 "학업성취도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 진전이 있어야 한다"며 이번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한 뒤 계속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진단평가를 거부하고 야외학습을 떠나는 학생을 무단결석 처리하고 평가를 거부한 교사를 사안에 따라 징계하겠다는 입장이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학생의 정확한 실력을 측정하고 그에 맞춰 학력신장을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지난해 처음으로 도입됐다.

채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준비도 치밀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전국 단위의 평가를 실시했고 이를 서둘러 공개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시행 첫해에 나타난 일부 부작용이나 폐단을 이유로 초 · 중등학생들에 대한 학력진단평가 이른바 일제고사를 폐지하는 게 과연 바람직하느냐는 점이다.

성적조작 파문을 계기로 불거진 일제고사 폐지 논란을 분석해본다.

⊙ 반대 측, "일부 학교의 성적 조작 빌미로 학력진단 평가 거부해선 안 돼"

일제고사 폐지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이번 평가의 주목적은 어느 지역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집중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성적 조작'은 진단평가를 거부할 만한 구실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중 · 고교 학생의 10%에 이르는 낙오생의 학습능력을 끌어올리지 않고는 인성 교육도 부질없으며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질 좋은 교육만큼 좋은 복지정책도 없다는 점에서 학력평가의 긍정적이고도 순기능적 측면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논리다.

교육당국은 우선 철저한 진상조사로 이번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고,의혹을 밝혀낸 다음 학력평가의 출제 · 감독 · 채점 · 공개 등 전 과정에 걸쳐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전교조 등이 성적 조작을 빌미로 학력평가를 거부할 때가 아니며 교직사회 전체가 내부의 문제점을 스스로 반성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번 조작 사건을 마지막 시행착오로 삼아 '국가수준의 평가'로 자리잡도록 한다는 입장이다.

⊙ 찬성 측, "경쟁 지상주의와 학교 서열화 막기 위해 일제고사 폐지해야"

이에 대해 찬성하는 쪽에서는 "성적 나쁜 학생에게 시험기회도 주지 않고,주관식엔 채점 기준도 명확하지 않았으며, 일부 시 · 도에선 성적 올리는 방법까지 알려줬다"며 일제고사 전 과정에서 나타난 반교육적 행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일제고사식 학업성취도 평가와 결과 공개의 위험성에 대해 수없이 경고했음에도 정부 당국은 오히려 평가결과를 인사 · 재정 지원과 연계시키려 했다고 꼬집는다.

게다가 일제고사의 문제를 지적하며 학생에게 선택권을 준 교사를 해임 · 파면시키고, 좌파교육 망국론 등의 이념 공세로 전교조 죽이기에 나섰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이들은 "평가 시스템의 개편 혹은 보완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며 이번 기회에 일제고사를 통한 경쟁 지상주의 교육정책을 전면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서열화된 성적 공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학교를 '야바위판'으로 만든 교육당국 등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학력진단 정확도 높이고 학력평가 객관성 확보 위해 힘써야

학업성취도 평가의 목적은 '우수한 학교'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학교'를 찾아내 도움을 주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더욱이 교육 발전의 모체는 엄정한 평가에 있으며,평가 없이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나 교사들의 능력 성장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일부 학교의 성적 조작 파문을 빌미로 학력 평가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번에 문제가 드러난 시 · 도교육청과 학교,교사들의 잘못은 철저히 가려내야 하며, 교육부의 관리감독 부재와 신중치 못한 공개방식엔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력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학력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학력 평가와 공개 방식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은 만큼 이번 기회에 교육 당국은 평가 내용, 채점 방식, 결과발표 방식 등 전반에 걸쳐 개선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대책이 나오지 않을 경우 학력평가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일제고사 제도 또한 제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 풀이 >

일제고사 : 초 · 중 · 고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모든 학교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를 치르는 시험으로 흔히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라고 한다. 2008년 10월14일부터 15일까지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과목에 걸쳐 실시됐다. 정부의 교육과정 개편으로 폐지됐다가 10년 만에 부활됐지만 일부 학교의 성적 조작 파문 등으로 또다시 논란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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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2월22일자 보도기사

학업성취도 오류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전교조와 일부 학부모단체가 다음 달 실시되는 전국 초4~중3 학생 대상의 학력 진단평가를 또다시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2일 전교조 서울지부와 평등교육학부모회 등으로 구성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서울시민모임'은 3월10일로 예정된 진단평가 실시일에 체험학습을 떠나기로 하고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밝혔다.

평등교육학부모회도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정책에 항의해 평가 당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사찰로 체험학습을 떠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동대문과 중랑구 등 서울 동부지역 전교조와 민주노동당 지회 및 학부모들로 구성된 '일제고사와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동부지역대책위원회'는 독자적으로 체험학습을 추진,시험 당일에 경기도 양평의 한 생태농장을 방문할 계획이다.

전교조 서울지부 역시 지난해 소속 교사 8명이 학업성취도 평가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에게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알리는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이에 대해 교육 당국은 진단평가를 거부하고 야외학습을 떠나는 학생을 무단결석 처리하고 평가를 거부한 교사를 사안에 따라 징계하겠다는 강경한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