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자질 부족한 국회의원들의 직위 박탈은 당연”

반 “국민의 대표 신분보장 안되면 선동정치 우려”


선출직인 국회의원을 임기 도중 국민의 손으로 물러나게 하는 국민소환제 도입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국회폭력행위는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징계나 처벌,수사가 어렵다"며 "국회폭력사태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국민소환제나 국민고발제로 자질이 부족한 국회의원의 직위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사태는 국민이 용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만큼 국민이 단죄와 책임추궁을 하며 권한을 당당하게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민소환제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학계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주민소환의 사유에 대한 제한이 없다"며 "폭력행위 외에 국회의원의 발언이나 표결,그 밖의 활동에 대해서도 국민소환의 사유에 포함된다면 소신 있는 의정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며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법률을 제정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고 꼬집는다.

국회의원이 국민 의사를 왜곡하거나 무능 · 부패한 경우 선거 외에 정치적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기는 하다.

특히 최근의 국회의원 폭력사태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국민소환제 도입이 의원에 대한 국민통제권을 확보하고 국민과 의원 간 의사표시의 괴리현상을 극복하는 등 실효를 거둘 수 있느냐는 점이다.

국민소환제 도입논란을 분석해본다.

⊙ 찬성 측, "국회의원 부정부패, 직권남용, 총선공약 남발 등 방지"

국민소환제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의사당 폭력은 국가 신인도와 민주헌정질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해악을 남긴다"며 폭력으로 합법적 의사진행을 가로막는 의원들에게는 일반 형사범보다 엄한 가중처벌과 함께 의원직 영구제명까지도 검토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소환제가 도입되면 국회의원들이 유권자를 의식해 의정활동을 보다 성실히 수행하게 될 것은 물론 국민 대표자들의 부정부패와 직권남용, 총선공약의 남발 등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현행 국회의원 임기는 최장 4년을 의미하므로 국민소환에 의해 의원직을 상실하더라도 헌법의 임기보장 규정에는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선 시민단체가 제안한 폭력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나 국민직접고발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소환 및 해임요건을 강화함으로써 소환이 남발되는 부작용을 미리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 반대 측, "대의민주제 원칙에 어긋나고 임기보장 규정에도 위배"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국회의원을 임기 중 소환한다는 것은 대의민주제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임기를 보장한 헌법 규정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한다.

국민 대표자들의 신분을 보장해주지 않을 경우 정치세력 간 견제와 타협보다는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선동정치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

특히 의원들이 민감한 현안에 대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국회의원의 발언이나 표결 등도 소환사유에 포함될 경우 소신 있는 의정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현재와 같은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정적 발목잡기 수단으로 소환이 남발될 것이며 이로 인해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는 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국민참여 허용이 정치시스템의 불안정과 비효율을 초래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폭력 범죄는 사법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국회 윤리특위 대신 외부인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 폭력국회 막기 위해선 국민소환제 도입 서둘러야

여야 의원들은 난투극과 국회 본회의장 점거 농성도 모자라 가까스로 합의문이란 것을 만든 뒤에도 진솔한 반성은커녕 상대에게 '폭력국회'의 책임을 전가하며 물어뜯기에 여념이 없다.

게다가 일부 의원은 5일간의 초미니 임시국회일정이 끝난 직후 외유를 떠나기도 했다.

한마디로 추태의 연속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국민소환제 도입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폭력의원을 국민이 고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자정능력을 상실한 채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있는 여야 의원들이 자초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폭력 국회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져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여야 정치권은 언제든지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자세로 국민소환제 도입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폭력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을 손보는 데 보다 많은 국민들이 동참함으로써 유권자들이 매서운 맛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국민소환제(recall) = 선거로 뽑은 국가기구의 공직자를 일정 수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 임기 만료 전에 해임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 국민파면 또는 국민해직이라고도 한다. 스위스 일부 지역과 일본 지자체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지난 16대총선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공약사항으로 내세운 바 있으며 김재윤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자동폐기됐다. 김 의원은 지난해12월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도 1월13일부터 입법청원을 위한 국민서명운동에 나섰다.

◆ 주민소환제 = 주민들이 지방자치체제의 행정처분이나 결정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일정한 절차를 거쳐 해당 지역의 단체장을 소환해 문제사안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투표를 통해 단체장을 제재하는 것을 말한다. 지자체장들의 독단적인 행정운영과 비리 등 폐단을 막기 위한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7월부터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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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1월9일자 A5면

정치권이 국회 폭력 근절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다.

시민 · 사회단체도 폭력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의원들의 폭력 행위를 뿌리뽑기 위해 국회의장석이나 상임위원장석을 임의로 점거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질서 문란 행위를 한 의원에게는 직무정지 명령이 떨어지고 해당 의원은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세 번 이상 직무정지 명령을 받으면 본회의 의결을 통해서만 직무정지를 해제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또한 회의장 내에서 폭력이 발생했을시 국회 사무총장이 의무적으로 고발하도록 하는 내용의 가칭 '국회에서의 질서유지법' 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폭력 의원의 배지를 떼게 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폭력을 행사한 민주당 문학진,민노당 강기갑 이정희 의원 등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도 폭력을 행사하는 등 자질에 문제가 있는 국회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한 관계자는 "오는 13일 국회 폭력 근절 방안 토론회를 연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즉각 주민소환제 추진을 위한 국민서명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균 한국경제신문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