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 조선일보 12월9일자 A30면

요즘 북한에 대한 논쟁은 개성공단 문제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 위기를 불붙이기 시작할 무렵 북한 당국자들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이 정말 실현된다면 북한 사회의 미래에 대해 개성공단 폐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1월 초 북한 내각은 각 시·군에 종합시장 개편에 대한 지시문을 전달했다.

지시문에 의하면 내년부터 전국 종합시장은 농산물만 판매하는 농민 시장으로 개편될 것이다.

공업품은 개인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국영상점에서만 판매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내년부터는 북한 전국에서 1일,11일,21일 이렇게 열흘마다 한 번씩만 장이 설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시장 폐업과 거의 다름없는 조치이다.

이 소식이 보여주듯이 최근 북한 정권은 1990년대에 자발적으로 탄생한 시장 세력에 대한 전면 공격을 계속 펼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시장경제에 대한 토벌을 2004년쯤부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국영 경제의 붕괴 및 기근에 직면한 북한 사회 내에서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공업 대부분이 더 가동하지 못하는 조건하에서 배고픈 서민들은 시장 장사,중국과의 밀무역,그리고 가내 수공업 등을 해야만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결국 북한 민중은 10여 년 전에 자본주의를 재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자발적인 변화는 국가가 계획,실현하려는 개혁과 거리가 멀었다.

중국과 달리 북한 위정자들은 시장화의 경향을 촉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로막았다.

중국의 새로운 시장경제는 공산당 정권의 주도와 보호하에 자라났다.

북한의 경우 시장경제는 정권의 단속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이러한 자발적인 시장화는 기근에 빠진 나라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2002년 북한 정부가 실시한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경제개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7·1조치'의 배경에 대해서 연구를 해본 필자는 이러한 평가가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7·1조치'는 사회주의 북한에서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경제난을 벗어나 보려는 고육지책의 하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7·1조치'를 통해서 북한 정부는 단속하지 못할 시장 현실을 뒤늦게 인정할 뿐이었다.

예를 들면 공업품이 팔리는 종합시장은 '7·1조치'에 의하면 합법화되었지만 사실상 1990년대부터 전국 모든 시장은 농산물보다 공업품을 더 많이 팔았다.

그래도 '7·1조치'는 북한 내부 시장 자유화의 절정을 의미했다.

그 후부터 이북 반동세력은 시장 세력에 양보를 더 주지 않고 반격을 시작했다.

북한 정권은 남쪽에 자유롭고 풍요한 동일 민족국가인 남한이 있는 한 자기들은 중국 같은 개혁과 개방을 시도하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그들은 백성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힘들어지고 외부 지식의 국내 확산을 허용하면 중국식 고도경제 성장보다 동독식 붕괴와 흡수통일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04년부터 북한 정부는 시장 세력에 대한 단속을 본격화하였다.

2005년에 배급제를 재개했고 2006년에 남성들의 장사를 금지했고 2007년에 50세 미만 여성들의 장사를 금지하였다.

이들 조치의 유일한 목표는 주민들을 자유의 분위기와 위험한 이야기가 가득 찬 시장으로부터 분리해 국가 감시의 조건이 편리한 공장에 다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종합시장개편 조치는 이 방향으로의 또 하나의 걸음이다.

체제 붕괴의 위험에 직면한 북한 위정자들은 개혁을 정치적인 자살처럼 보고 있어서 체제를 그대로 냉동시키려고 노력한다.

요즘 그들은 성공적인 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성공할 때마다 백성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북한 사회의 장래는 점점 더 암울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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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정권 개혁 기대하고 대북정책 펴는 건 위험하다

해설

흔히 사회주의 국가에는 시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

사회주의 국가에도 시장은 존재한다.

중앙정부의 국가 경제 계획이 완벽할 수 없어 항상 원재료나 제품이 분야별로 남거나 모자라 교환해야 할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사회주의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국가는 이러한 시장을 체제안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어떤 국가는 체제를 위협한다며 이를 억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베트남 동구권 국가들은 전자에 속한다.

하지만 북한은 후자에 속한다고 필자는 강조하고 있다.

북한에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진 것은 1990년 이후 부터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협동농장에서 생계를 꾸려가기 힘들어진 주민들이 중국과의 밀무역이나 가내수공업, 자투리 땅 개간에 적극 나섰던 것이다.

물론 당시 장사를 하거나 자투리 땅에 농작물을 지어 파는 것은 불법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주민들이 크게 늘어나자 북한은 2002년 7월1일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다.

여론을 달래기 위해 마지 못해 시장을 합법화한 것이다.

7·1 조치 후 시장이 커지자 북한 계획경제의 한계점은 곳곳에서 노출되었다.

예를 들어 많은 주민들이 시장에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고 농산물을 팔기 위해 텃밭을 가꾸었는데 그 결과 협동농장은 점차 주민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일부 주민은 아예 협동농장에 나가지도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농장에서 배급된 비료를 뿌리는 척 하면서 땅속에 묻어 두었다가 밤에 파내어 자기 밭에 뿌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개인 텃밭의 옥수수는 팔뚝처럼 큰 반면 협동농장 옥수수는 주먹만하게 작아 보여 금방 구별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북한은 시장의 이점을 알고 있지만 체제 붕괴 위험을 우려해 시장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언제까지 시장 억누르기 정책을 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시장경제가 계획경제보다 우월하다는 점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이 됐다.

체제전환 국가의 전례를 보면 시장경제를 선택하는데는 항상 체제 붕괴 위험이 따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공산당 지도자가 바뀐 후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중국은 모택동이 사망한 후 등소평이, 베트남은 호찌민 후 집단지도체제가 계획경제 노선을 과감히 버렸다.

계획경제를 신앙처럼 주창하던 초기 지도자들이 물러난 후 비로소 개혁을 선택한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개혁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개혁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낙관적인 대북 정책을 펴는 것은 위험하다는 메시지를 필자는 전하고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