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빨간 거짓말’?

'샛빨간 단풍들은 계곡의 물까지 붉게 물들였다.

주황빛이나 주홍빛의 단풍들 사이에서 핏빛 선연한 그 단풍들은 수탉의 붉은 볏처럼 싱싱하게 돋아 보였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한 대목이다.

지리산 피아골의 단풍 절경을 묘사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 문구에서 옥에 티는 '샛빨간'이다.

우리 사전에 '샛빨갛다'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새빨갛다'가 있다.

'새빨갛다' '샛노랗다' '시뻘겋다' '싯벌겋다' 이들 단어의 머리에 붙은 '새-,샛-,시-,싯-'은 모두 '색채의 농도가 매우 짙다'란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기능은 모두 같지만 형태는 조금씩 다른데, 한글 맞춤법에서는 이를 섞바꿔 쓸 수 없도록 했다.

각각의 말이 들어갈 집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어떤 접두사를 붙이는가는 뒤에 오는 단어의 음운론적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

우선 '새-'와 '시-'부터 구별하는 게 편리하다.

'새-'는 뒤에 놓이는 말이 양성모음일 때,'시-'는 음성모음일 때 붙인다.

새빨갛다,새까맣다,새파랗다와 시뻘겋다,시꺼멓다,시퍼렇다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이 하나 더 있는데,그것은 '새-'이든 '시-'이든 모두 뒤에 오는 말이 된소리나 거센소리일 때 쓴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사이시옷이 붙은 형태인 '샛-'과 '싯-'은 뒤따르는 말이 유성자음 'ㄴ'이나 'ㅁ'으로 시작하는 단어라는 점을 유념하면 된다.

뒤집어 말하면 된소리나 거센소리로 시작하는 말 앞에는 '새-' 또는 '시-'를 붙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양성이냐 음성이냐에 따라 '새-'와 '시-'의 구별이 이미 돼 있는 상태여야 한다.

'샛노랗다,샛말갛다'와 '싯누렇다,싯멀겋다'가 그런 경우다.

'아랫마을' '윗목'에는 사이시옷을 붙이고 '아래쪽' '위턱'에서는 붙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새빨간/샛빨간 거짓말'에서는 '샛빨간'은 안 되고 '새빨간'만 허용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