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세

<연세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10월29일자 A39면

찰스 폰지는 국제 쿠폰사업을 벌인다며 90일 만에 원금의 1.5배 수익을 조건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당시 은행 이자율이 연 4%였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수익률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모인 투자자는 순식간에 4만여명에 달했고 투자액은 1500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실제로 폰지는 아무런 사업을 벌이지 않았다.

처음 모은 투자액은 자신이 챙긴 후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은 그 다음 투자자들의 납입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피라미드 방식은 결국 더 이상 투자자가 모이지 않자 공중 분해됐다.

대공황을 눈앞에 둔 1920년대 중반 미국 플로리다에서 발생한 희대의 금융사기극이었다.

초기의 건전한 투자와 시장 활동,중기의 기하급수적 성장,과도한 차입으로 인한 말기의 폭탄 돌리기,그리고 종국에는 버블 붕괴에 따른 피해 속출이 금융투기시장 이른바 폰지게임의 핵심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18세기 영국 남해회사 버블 사건,20세기 말의 닷컴 버블,그리고 21세기 초의 부동산 버블 등 폰지게임은 정도의 차이가 있고 금융상품의 종류만 달리한 채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외환위기 속에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총수요 확대를 명분으로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발급과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로 오늘날 500조원이 넘는 가계빚의 단초를 제공했다.

벤처육성 정책의 의도와 시작은 좋았으나 벤처를 창업해 코스닥 등록으로 대박을 보장한다는 금융권 작전세력들이 판을 치면서 폰지게임이 돼 버렸다.

당시 벤처 붐이 정작 기술개발과 경제발전에 기여하기보다 폰지들의 배만 불렸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돈의 본래적 기능은 상품과 자산의 거래를 원활하게 하려는 매개체로서 갖는다.

그런데 상품과 자산을 기초로 금융파생상품을 만들고 그걸 담보로 또 다른 파생상품을 만들어 온갖 희한한 이름으로 판매하며 돈을 뻥튀기했다.

오늘날 대략 500조달러로 추산되는 파생상품은 부동산,원유,곡물,금속 등 상품과 자산의 가격을 폭등시켰다 폭락시켰다 하고 있다.

개의 꼬리가 개를 돌리는 식인데 그걸 배워야 할 '선진 금융기법'이라며 아예 폰지 양성 학교를 만들겠다는 발상도 판을 친다.

정부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

그러나 시장의 질서와 건전성을 유지하고 다수 참여자를 과도한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좋은 규제'는 유지돼야 한다.

마약도 자판기에서 판매토록 허용해야 한다는 식의 편집증적 시카고식 자유주의는 인간의 본성과 자제력에 관한 몰이해에서 출발한다.

마치 정반대의 입장에 섰던 맑스-레닌주의가 같은 이유로 실패했던 것처럼 말이다.

금융이야말로 적절한 규제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장이다.

파생상품 제조 기법을 선진화할 것이 아니라 금융감독 기능과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규제를 강화하라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금융감독을 명분으로 관계 부처들과 공조해 금융기업들의 마케팅 방식에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이중삼중의 '나쁜 규제'는 과감히 정리돼야 한다.

그러나 금융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으로 흩어져 예컨대 금융감독원이 취득한 정보가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등에 적기에 제공되지 못하는 기관 이기주의는 고쳐져야 한다.

벤처기업도 아닌 대형 상업은행들이 연평균 수십%씩 성장률의 외형 경쟁을 불사하고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생한 은행이 국민 혈세를 갚을 돈으로 직원 수천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일이 없도록 감시해야 한다.

금융위기의 실물 파급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위험은 네가 지고 수익은 내가 먹는' 방식의 경영 관행에 제동을 걸어 건전한 금융질서를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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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모럴 해저드를 규제할 장치 마련해야

해설

일정 기간 경제활동으로 얻은 소득 중에서 소비하고 남은 부분이 저축이다.

우리가 흔히 저축이라고 표현하는 말은 대체로 예금과 투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자 수익만을 기대하고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는 것을 예금,자산 자체의 가치 상승과 그로부터 나오는 고유한 수익(배당금, 임대료)을 기대하고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돈을 운용하는 것을 투자라고 한다.

금융기관도 예금과 대출을 주요 업무로 하는 상업은행과 자기자본 조달을 중개하는 투자은행으로 분류된다.

기업들은 은행에서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 쓰기도 하고 증권을 발행해 주식시장에서 필요한 자금을 공급받는다.

즉 생산활동을 하며 만들어진 물건을 시장에 파는 과정에서 돈이 필요하고 금융이 필요하다.

은행의 기능을 간접금융, 증권사 혹은 투자은행(IB)의 역할을 직접금융이라고 부른다.

최근 경제위기를 불러일으킨 새로운 금융기법들은 생산활동을 뒷받침하는 역할보다는 금융시장의 가격 변화를 노린 활동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문제를 낳았다.

여기에 참여한 이른바 첨단 금융업자들은 정부의 어떤 규제도 받지 않은 채 온갖 파생상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거품이 꺼지면서 파생상품을 취급한 금융기관들은 파산위기에 직면했고 파산을 막기 위해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칼럼에서 금융은 적절한 규제 시스템이 요구되는 시장이라고 주장하면서 기존에 방만했던 파생상품에 대한 금융감독 기능과 시스템을 선진화해 엄격한 잣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은행장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 등 은행들이 저지르고 있는 모럴 해저드를 비난하면서 이런 모럴 해저드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금융투기의 역사'의 저자 에드워드 첸슬러는 규제를 혐오하는 시대적 분위기에서 투기적 광기가 한 시대를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반드시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첸슬러는 1930년대 미국 경제 공황 과정에서 정부의 적극 개입을 주장한 케인스적 패러다임이 다시 부활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필자는 규제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어도 금융시장에서는 건전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