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필'의 원조들
2005년 8월 미국 폭스TV에서 첫 방송된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다.
특히 주인공으로 나오는 천재 건축가 '스코필드'의 인기는 압도적이었다.
한국의 극성 팬들은 재빨리 그에게 한국어 이름을 붙여줬는데 '석호필'이 그것이다.
스코필드에서 석호필을 끌어낸 것은 음절 구조와 발음을 고려한 절묘한 취음(取音)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는 또 다른 석호필이 이미 90여년 전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들어온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가 그다.
한국에서의 그의 헌신적 활동은 의료,선교,독립운동 지원 등으로 이어졌으며 광복 후에는 서울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1970년 타계한 뒤 그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한국어에도 능통했던 그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 바로 '석호필'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이든 일제시대 때의 석호필이든 본명의 발음을 살려 한국어 이름을 멋지게 만든 것은 기발한 착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외래어 표기의 역사를 통해 보면 기실 이런 차음을 통한 음역어는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체계적인 한글 맞춤법조차 없던 시절이라 한자음을 이용한 외래 인명이나 지명 표기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한자어권 국가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1900년대 초 우리 신문을 보면 아라샤니 불란셔,셔반아 같은 단어가 이미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표기들이 모두 '석호필'의 원조인 셈이다.
취음에 의한 전통적인 외래어 표기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우리말 속에 완전히 정착한 형태로,일부는 새로운 표기와 혼용되거나 바뀌어 쓰이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가령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한 것으로 읽고 쓰는 '독일(獨逸)'이란 나라 이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독일'은 일본에서 본래 이름인 도이칠란트를 취음해 만든 단어다.
20세기 초 우리 신문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독일'은 일본인들이 도이칠란트의 앞글자 일부(Deutsch)만 따서 '獨逸'로 적고 '도이쓰'라고 읽던 것이다.
이 '獨逸'을 그대로 들여와 발음만 한국 음으로 읽은 게 '독일'이다.
본래 국명인 도이칠란트와는 전혀 다른 발음인 '독일'이 우리나라에서 쓰이게 된 배경이다.
그러니 일본으로선 '도이쓰'가 정상적인 음역어이지만 우리에게 '독일'은 단순히 일본의 말을 들여다 쓴 사이비 외래어인 셈이다.
중국에선 이를 '德意志[더이즈]'라고 취음해 썼는데 우리도 처음에는 이를 줄여 '덕국(德國)'이란 말을 쓰기도 했다.
지금은 '덕국'은 거의 사라졌고 '독일'이 유일하게 도이칠란트를 대신해 쓰이는 말이 됐다.
그만큼 우리말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인데,이는 도이칠란트에 비해 독일이 훨씬 간결해 단어 자체로서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이에 비해 불란서나 서반아는 같은 음역어이면서도 우리말 속에서의 위상은 사뭇 다르다.
우선 불란서(佛蘭西)는 프랑스를 소리에 따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신문 등에서는 줄여서 '佛'로 표기하기도 한다.
20세기 초에 나온 신문에서도 보이는데,당시 표기는 '불란셔'였다.
서반아(西班牙)는 스페인의 음역어이다.
이 역시 20세기 초에 나온 신문에서는 '셔반아'로 쓰였다.
스페인은 에스파니아라는 이름과 함께 쓰이는데,이것이 현지에서 쓰는 본래 국명이다.
스페인은 에스파니아의 영어식 이름이다.
불란서나 서반아는 전통적으로 써오던 말이긴 하지만 요즘은 프랑스 스페인에 밀려 일상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다만 불어불문학이나 서반아어 등에서처럼 학술 명칭 따위에서는 여전히 단단한 쓰임새를 보인다.
러시아를 가리키던 말 '아라사(俄羅斯)'는 더 대조적이다.
20세기 초 일제시대 때 나온 신문에서는 '아라샤'란 표기로 쓰였으며 줄여서 아국(俄國)이라고도 했다.
또 이를 로서아(露西亞)라고도 했다.
아국이든 아라사,로서아이든 이런 말은 이미 사어화해 일상적으론 거의 쓰이지 않으며 '아관파천' 같은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말로나 남아 있을 뿐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개화기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 속에서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거처한 비극적 사건을 말한다.
'아관'이 러시아공관을 뜻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곡절이 담겨있다 .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2005년 8월 미국 폭스TV에서 첫 방송된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는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을 이끌었다.
특히 주인공으로 나오는 천재 건축가 '스코필드'의 인기는 압도적이었다.
한국의 극성 팬들은 재빨리 그에게 한국어 이름을 붙여줬는데 '석호필'이 그것이다.
스코필드에서 석호필을 끌어낸 것은 음절 구조와 발음을 고려한 절묘한 취음(取音)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는 또 다른 석호필이 이미 90여년 전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 당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수로 들어온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가 그다.
한국에서의 그의 헌신적 활동은 의료,선교,독립운동 지원 등으로 이어졌으며 광복 후에는 서울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1970년 타계한 뒤 그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한국어에도 능통했던 그가 스스로 지은 이름이 바로 '석호필'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석호필이든 일제시대 때의 석호필이든 본명의 발음을 살려 한국어 이름을 멋지게 만든 것은 기발한 착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외래어 표기의 역사를 통해 보면 기실 이런 차음을 통한 음역어는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체계적인 한글 맞춤법조차 없던 시절이라 한자음을 이용한 외래 인명이나 지명 표기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한자어권 국가에서 보이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1900년대 초 우리 신문을 보면 아라샤니 불란셔,셔반아 같은 단어가 이미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런 표기들이 모두 '석호필'의 원조인 셈이다.
취음에 의한 전통적인 외래어 표기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우리말 속에 완전히 정착한 형태로,일부는 새로운 표기와 혼용되거나 바뀌어 쓰이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가령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한 것으로 읽고 쓰는 '독일(獨逸)'이란 나라 이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독일'은 일본에서 본래 이름인 도이칠란트를 취음해 만든 단어다.
20세기 초 우리 신문에서도 볼 수 있는 이 '독일'은 일본인들이 도이칠란트의 앞글자 일부(Deutsch)만 따서 '獨逸'로 적고 '도이쓰'라고 읽던 것이다.
이 '獨逸'을 그대로 들여와 발음만 한국 음으로 읽은 게 '독일'이다.
본래 국명인 도이칠란트와는 전혀 다른 발음인 '독일'이 우리나라에서 쓰이게 된 배경이다.
그러니 일본으로선 '도이쓰'가 정상적인 음역어이지만 우리에게 '독일'은 단순히 일본의 말을 들여다 쓴 사이비 외래어인 셈이다.
중국에선 이를 '德意志[더이즈]'라고 취음해 썼는데 우리도 처음에는 이를 줄여 '덕국(德國)'이란 말을 쓰기도 했다.
지금은 '덕국'은 거의 사라졌고 '독일'이 유일하게 도이칠란트를 대신해 쓰이는 말이 됐다.
그만큼 우리말 속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것인데,이는 도이칠란트에 비해 독일이 훨씬 간결해 단어 자체로서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이에 비해 불란서나 서반아는 같은 음역어이면서도 우리말 속에서의 위상은 사뭇 다르다.
우선 불란서(佛蘭西)는 프랑스를 소리에 따라 한자로 옮긴 것이다.
신문 등에서는 줄여서 '佛'로 표기하기도 한다.
20세기 초에 나온 신문에서도 보이는데,당시 표기는 '불란셔'였다.
서반아(西班牙)는 스페인의 음역어이다.
이 역시 20세기 초에 나온 신문에서는 '셔반아'로 쓰였다.
스페인은 에스파니아라는 이름과 함께 쓰이는데,이것이 현지에서 쓰는 본래 국명이다.
스페인은 에스파니아의 영어식 이름이다.
불란서나 서반아는 전통적으로 써오던 말이긴 하지만 요즘은 프랑스 스페인에 밀려 일상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다만 불어불문학이나 서반아어 등에서처럼 학술 명칭 따위에서는 여전히 단단한 쓰임새를 보인다.
러시아를 가리키던 말 '아라사(俄羅斯)'는 더 대조적이다.
20세기 초 일제시대 때 나온 신문에서는 '아라샤'란 표기로 쓰였으며 줄여서 아국(俄國)이라고도 했다.
또 이를 로서아(露西亞)라고도 했다.
아국이든 아라사,로서아이든 이런 말은 이미 사어화해 일상적으론 거의 쓰이지 않으며 '아관파천' 같은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말로나 남아 있을 뿐이다.
아관파천(俄館播遷)은 개화기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 속에서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거처한 비극적 사건을 말한다.
'아관'이 러시아공관을 뜻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곡절이 담겨있다 .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