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 한국경제신문 9월23일자 A38면

최근 '좌편향'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사실 이 논란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줄기차게 제기돼온 문제였지만,노 정권은 책임있는 자세로 해법을 강구하기를 거부했다.

하기야 권력을 잡은 정치 386이 좌편향 역사관에 함몰됐으니 합리적 수정보다는 '초록은 동색'이라는 속언을 떠올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좌편향' 역사교과서들이 고쳐지지 않고 버티기를 고집해온 것도 그런 정권차원의 보호막 덕분이었다.

그런 보호막이 벗겨지면서 급기야 논란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게 된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교과서 논란을 두고 단순히 좌파와 우파의 '문화전쟁' 정도로 치부하려는 시각이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불거지는 모든 쟁점을 좌우의 문제로만 가늠하고,그리하여 정론(正論)이나 진실이라는 것은 없고 다만 모든 것이 이해관계나 주관적인 가치체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갖는다면,그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그런 느낌을 부추기는 유비적(類比的) 표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좌충우돌(左衝右突)'이니 '좌고우면(左顧右眄)'이란 말이 바로 그렇다.

이런 언어적 관행에서 좌가 있으면 우가 있게 마련이라는 식의 상대화 경향은 현저하다.

그러나 좌우라는 당파적 입장을 떠나 기본적인 가치를 주장해야할 때도 있다.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인정하는데 좌파라고 해서 다르고 우파라고 해서 다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건국은 물론,산업화와 민주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좌와 우에 따라 다르다면,국민적 정체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히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배우는 역사교과서라면,'편향된 이야기'는 더 이상 곤란하고 오로지 사실에 입각한 '진실된 이야기'만이 들려져야 한다.

학생들이 건전한 역사의식을 가져야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덕적 가치관이 어디 있으며 또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올바로' 또 '정확하게' 인식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국가공동체는 주권과 영토,국민으로 이뤄진 실체다.

하지만 "국가란 영혼으로 존재한다"고 설파한 어니스트 르낭의 통찰에 우리는 각별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영혼으로 존재하는 국가공동체의 역사는 국민들에게 자존감과 정체성 및 정신적 뿌리를 제공한다.

국민으로서의 한 개인은 국가의 영혼에서 도덕적 정체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한다.

바로 이것이 역사교과서에서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이념과잉의 덧칠없이 올바로 기록돼야 할 이유다.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피땀 흘리며 일궈온 수많은 기념비적 사건 가운데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새로운 세대들에게 전해주는 '기억의 사회화'야말로 교과서의 주된 기능일 터이다.

유감스러운 일은 지금 한국사회의 역사교과서에는 '진실에 입각한 기억의 사회화'보다는 '편향된 기억의 정치화'가 현저하다는 점이다.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않게 만들고 또 왜곡된 사실과 잘못된 사관(史觀)을 학생들이 외우고 시험쳐야 할 대상으로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기억의 정치화'다.

또 이념에 과잉 경도된 나머지 역사적 사실들을 마치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듯 임의적으로 교과서에 취사선택해서 실었다면,그것도 '기억의 정치화'다.

그동안 학생들이 좌편향의 내용을 대거 배운 것을 생각하면 만시지탄의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한 국가공동체 내에서 공유해야 할 도덕적 가치나 국민의 정체성을 역사의 어떤 부분에서 찾을 것인지,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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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공의 역사 부정하는 교과서 바로 잡아야

해설

교과서포럼이 지난 3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하면서 역사교과서 개정에 대한 논쟁이 불붙고 있다.

대안교과서는 건국 60주년에 맞춰 나온 교과서로 우리의 현대사를 성공의 역사로 규정하면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역할 등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교과서포럼은 금성교과서를 비롯한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서술해 놓은 6ㆍ25전쟁의 국제적 배경에 대한 부당한 서술과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적 의미 왜소화 등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국방부도 제주 4·3 사건 등과 관련해 교과서 수정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주문하고 있고, 통일부와 대한상공회의소도 역사 교과서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과 전교조 등에서는 교과서 개정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박효종 교수는 좌편향 역사 교과서의 오류 잘못에 대해 마치 좌와 우의 대립으로 보고 문화전쟁하는 모양을 띠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역사교과서의 개정은 좌와 우의 대립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진실된 얘기를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에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헌법에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역사 교과서라면 헌법에 어긋날 뿐더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고등학생들의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면,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 빠져 있다.

피땀 흘려 나라를 세우고,지키고,가꿔온 선조의 모습,삶을 질을 높이고자 개인의 행복을 희생하면서까지 세계가 놀라는 성과를 이룩한 선대의 자화상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독재와 억압,자본주의의 폐단만이 즐비하게 나열되어 있다.

박 교수는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이 피땀 흘려 일구어 온 수많은 기념비적 사건 가운데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해야 하는지를 새로운 세대에 전해주는 '기억의 사회화'야말로 교과서의 주된 기능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우려한다.

기존 교과서는 객관적인 '기억의 사회화' 현상보다는 편향된 '기억의 정치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역사의 권력화'를 부추긴다고 설명한다.

박 교수는 따라서 한 국가공동체 내에서 공유해야 할 도덕적 가치나 국민의 정체성을 역사의 어떤 부분에서 찾을 것인지,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며 하나의 국가공동체로서 '전체 한국인이 공유하는 역사'를 기록해 미래의 약속인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