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책임경영으로 교육 경쟁력 개선될 것"

반 "등록금 올라 가난한 학생 피해 우려도"

서울대 이장무 총장이 "법인화 문제를 공론화해 임기 내에 서울대의 법인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립대 법인화 문제가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학교 측은 서울대 법인화를 통해 대학의 자율권 보장,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 확보, 학과 개설·폐지를 비롯한 교과 과정의 획기적인 변화 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수협의회 쪽에서는 "지금까지 정부는 대학을 통제하려고만 해왔고 실질적인 지원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며 "기본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인화를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반발한다.

국립대 법인화는 국립대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형 조직으로 전환해 인사, 조직,재정 등의 자율성을 확보하도록 하자는 것으로, 교육개혁심의위원회가 1987년 관련 보고서를 만들어 그 필요성을 권고한 이후 수시로 논의가 이뤄졌지만 대학의 반발 등으로 허송세월해 온 민감한 사안이다.

그나마 지난해 6월 국회에 '국립대학 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으나,전국 국·공립대교수협의회 등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상임위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2004년 89개 국립대를 법인으로 전환한 일본과는 너무도 판이한 모습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대 총장이 처음으로 법인화 추진 의사를 공식 표명하면서 논란의 불씨가 되살아난 것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 법인화 문제의 해법을 모색해본다.

⊙ 반대 측, "등록금 대폭 인상으로 상·하계층 간 교육기회 불평등 유발"

국립대 법인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우리나라의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국가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0.3%로,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3분의 1도 채 안되며, 교원 1인당 학생 수 또한 40명으로, OECD 평균의 2.5배에 이른다"며 이런 마당에 법인화로 재정운용의 자율성을 부여한들 경쟁력이 제고될 리 만무하다고 지적한다.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은 법인화 이후 일본의 대학 등록금이 2~3년 새 5배 정도 인상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인화는 국립대 등록금을 대폭 인상시키고,이는 다시 사립대 등록금 인상을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간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권력과 부의 불평등을 대물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게다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성화,개성화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기초학문과 기초과학이 설자리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서열화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대학들이 무더기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찬성 측, "자율적·효율적 책임경영으로 경쟁력 제고와 교육의 질 개선"

이에 대해 찬성 쪽에서는 "학사를 비롯 인사, 조직, 재정 등에 대해 정부로부터 일일이 규제와 간섭을 받는 현행 체제로는 세계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우리 국립대들도 법인화를 통해 자율적이고 효율적인 책임경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일본이 2004년 87개 국립대를 법인으로 전환했으며,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도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개혁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우리도 법인화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법인화된 사립대학의 경우 등록금이 비싸더라도 장학제도가 충분히 갖춰져 있으며, 기초학문을 홀대하지 않고 있다"며 법인화 반대 측에서 주장하는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기회 박탈과 기초학문 고사 등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한다.

특히 도쿄대를 비롯 일본의 국립대들은 법인으로 전환되면서 수익경영과 비용절감 등으로 대부분 이익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정체에 빠진 국립대를 법인화하지 않고는 경쟁력 제고와 교육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재정독립과 대학교육 개선방안 담은 법인화 마스터플랜 내놔야

현재 국립대는 예산을 편성하거나 조직을 개편할 때도 정부의 법령을 따라야 하며, 심지어 강의실 칸막이 하나 설치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각종 규제와 간섭을 받고 있다.

이러한 구조로 국립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서울대의 경쟁력이 세계 100위권에 들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제 국립대 법인화는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총장이 대학 운영에 전반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자율성을 확대하고 효율성을 끌어올리지 않고는 세계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법인화 추진을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우선 신분보장 문제 등으로 교직원을 비롯 대학 구성원의 반대가 만만찮은 만큼 정부는 교직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고, 대학도 법인화 필요성을 설득해야 한다.

법인화가 되면 기초학문은 고사할 것이란 우려도 불식시켜야 함은 물론이다.

재정 독립을 실현하고 대학교육과 학문연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법인화의 마스터플랜을 내놔야 한다.

이번 서울대의 법인화 추진 발표가 20년 이상 거듭돼 온 논란을 매듭짓고 국립대 법인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 법인(法人) = 법에 의하여 권리·의무의 주체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딘체를 말한다.

자연인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람의 결합이나 특정한 재산에 대하여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법률관계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인정한 것이다.

◆ 국립대 법인화 = 국립대학이 총장을 중심으로 효율적·자율적 책임경영을 할 수 있도록 법률상의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만드는 것.

현재 국립대의 법적 지위는 법인격이 없는 '정부조직의 부속기관' 내지는 '국가가 설치한 영조물'로 돼 있다.

'국립대학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은 2007년 6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상정됐으나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폐기됐다.

일본에서는 2004년 4월부터 89개 국립대가 법인화됐으며 독립법인 도쿄대는 일본 최대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가장 높은 투자등급인 트리플A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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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경제신문 8월6일자 A11면

이장무 서울대 총장은 5일 "서울대가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법인화 문제를 공론화해 임기 내에 서울대의 법인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장의 임기는 2010년 7월까지다. 이 총장은 이날 취임 2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다음 달 중 법인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공식적인 논의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이 서울대 법인화에 대해 공식적인 추진 의사를 강력하게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법인화추진위는 비(非)보직교수와 부총장을 공동위원장으로,평의원회와 교수협의회 등이 참여하는 범대학적인 기구로 꾸릴 예정이다.

외부 인사나 학생들의 참여도 검토 중이다.

그는 △대학의 온전한 자율권 보장 △재정의 변화 △총장의 강력한 리더십 △학과 개설ㆍ폐지를 비롯한 교과 과정의 획기적인 변화 등을 법인화의 강점으로 뽑았다.

또 법인화가 이뤄져도 기초학문 보호와 육성,합리적인 등록금 책정,약자와 소수를 위한 배려 등 국립대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총장은 "싱가포르나 일본의 대학이 법인화될 때는 여건이 성숙돼 있었는데 우리는 10년간 정부와 사회의 국립대 육성 의지가 미약했다"며 "정부의 전체 예산은 대폭 늘어나는데 대학 지원 예산은 수년째 고정돼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성선화 한국경제신문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