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화 전남대 교수·경제학

지난달 2일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됐을 때 이를 주최한 단체는 인터넷의 한 카페였다.

촛불집회가 계속되면서 인터넷은 대중 동원에 위력을 발휘했다.

일부 인터넷 방송은 시위 현장을 생중계했고,시위현장을 담은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퍼져갔다.

시위 진압에 투입된 일부 전경의 신상기록도 인터넷을 통해 유포돼 이들은 수많은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이를 두고 일부 단체는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참여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시민들이 의사소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발전에 새로운 기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동안 진행된 몇 차례의 선거에서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은 1990년대 80%대였다가 작년 선거에서는 63.0%로 떨어졌다.

지난 4월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투표율이 유례없이 46.1%로 추락했다.

따라서 인터넷을 통한 참여정치가 낮은 투표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시민들은 정권 초기의 인사파동을 보면서 대의정치보다 직접적인 참여정치가 더 낫다고 여겼을 수 있다.

사실 정부의 부적절한 대응이 촛불집회를 키운 측면이 있다.

정권이 교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짓고자 서둘렀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터넷을 통한 참여정치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심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가치와 신념이 다양한 개인이 모여 사는 곳이 사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심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하나로 모여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전체주의 사회에 가깝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가치와 신념을 지닌 개인들 간에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타협과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다른 가치나 신념 사이의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

인터넷에 수없이 많은 웹 사이트가 있지만 이들 공간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가치나 신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그래서 가치나 신념을 검증해 잘못된 것을 고칠 기회가 적다.

비록 잘못된 믿음이더라도 오히려 공고하게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믿음이 인터넷 공간에만 머물러 있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거리에서 정치적 주장으로 표출되면 다수의 지지자를 쉽게 동원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사정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영국의 공공정책연구소 소장을 지낸 테일러는 인터넷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들의 불합리한 요구를 정부에 강요하는 데 이용된다면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인터넷이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어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오히려 정부에 대한 요구를 더욱 불합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회가 발전하면 사회적 다양성도 확대되게 마련이다.

수없이 많은 인터넷 공간에서 다양한 가치와 신념이 보호되는 것은 개인적 자유와 자유로운 거래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다양한 가치와 신념은 개인의 자유와 시장경제가 보장돼야 존중될 수 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정책이나 규칙을 정해야 할 경우가 있다.

이때 자신의 가치나 신념만을 고집하면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이나 규칙을 정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타협과 양보는 불가피하다.

이러한 때 인터넷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합리적 문제 해결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 대중 동원을 통해 자신의 가치나 신념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게 되면 인터넷을 통한 거리정치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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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다양한 의견 조정 못하면 무의미

해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인 정치제도다.

흔히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로 불린다.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모든 시민이 큰 광장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며 국가의 정책을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 간 이견으로 인한 갈등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 정치를 하는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상반되는 의견이 많이 나오면 국회에서 결정하기가 힘들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도로 개설을 반대하고 또 다른 사람은 물자 수송을 위해 도로를 개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어떻게 조정할 수 있을까.

더욱이 도로보다 차라리 철도를 깔자거나 운하를 건설하자는 주장이 제시된다면 민주적 방법으로 공통의 의견을 도출하기란 불가능해진다.

정치학자 애로(Arrow)는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처럼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될 경우 민주적이면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를 연구했다.

그러나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합리적인(효율적인) 대안 선택 방법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사람들은 이를 애로의 불가능성의 정리라고 부른다.

정기화 전남대 교수는 칼럼에서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애로의 불가능성의 정리를 가정하고 주장을 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심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중략)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심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것은 불가능하고,하나로 모여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전체주의 사회에 가깝다"라는 표현은 불가능성의 정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하게 나오는 민심을 과연 인터넷 토론방은 조정할 수 있는 것일까?

만일 인터넷이 그러한 기능을 한다면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 교수는 최근 촛불시위 과정을 볼 때 인터넷이 그러한 기능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가치와 신념을 지닌 개인들 간에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타협과 조정이 나타날 수 있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중략) 수많은 웹 사이트 공간에서는 대부분 비슷한 가치나 신념을 가진 사람끼리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인터넷이 다양한 의견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는지는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단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번호 생글생글 커버스토리도 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5면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여론 수렴의 공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글생글 학생기자들의 의견을 실었다.

생글 독자 여러분도 인터넷의 여론 수렴 기능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어 보자.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