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중앙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6월5일자 A39면

우리나라 경제가 물가는 치솟고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작년 동월 대비 4.9%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9% 증가에 그쳤으며 실질 국민총소득은 1.2% 감소했다.

우리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내 몬 주범은 폭등하고 있는 원유 등 수입원자재 가격이고 공범은 최근 급격히 평가절하된 원화환율이다.

여기에 더해 유류비용 상승으로 원가가 높아진 모든 상품의 가격이 서서히 오르고 있어 물가상승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에 달할 가능성도 있다.

물가상승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한 가계는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유류소비는 물론이고 생활에서 중요도가 떨어지는 통신비지출은 이미 감소세로 돌아섰고 앞으로는 자동차,가전제품 등 내구재와 생필품 지출까지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 내수감소가 지속적으로 이뤄져 경기침체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올해 GDP 증가율은 4%도 안 될 수도 있다.

고용사정도 크게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원유가격를 비롯한 해외원자재 가격이 반대로 급격히 하락하지 않는 한 이 같은 시나리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는 새 정부가 약속한 7% 성장,매년 30만명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수치로 국민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은 대부분 대외적인 요인으로 정부의 통제가능 영역 밖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거시경제 정책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 평가절하를 통한 수출증대로 난국을 돌파하겠다는 구시대적이고 단세포적인 정책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정책당국자는 외환시장의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고 환율이 단기적으로 급격히 변동할 때에 한해,구두로건 행동으로건 제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정부 당국자가 시장 환율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힘들다.

특히 물가상승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상승을 도모하는 것은 수출증대 효과보다 물가상승을 가속화시키고 내수를 침체시키는 데 일조하게 된다.

불붙는데 기름 끼얹는 격이다.

필자는 이미 지난 3월 본 칼럼을 통해 정부의 고환율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정부는 이제 와서 환율을 안정시키려고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그러니 시장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부정책이 시장 불확실성을 증대시킨 것은 환율뿐만 아니다.

금리를 가지고 결정권자인 한국은행과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운 것도 금융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여기다 추경편성문제를 놓고 관련법 개정권을 가진 한나라당과 벌인 설전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이러한 팽창적인 정책을 내세운 것은 새 정부 들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조급증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불확실성 증대로 기대 인플레이션은 필요 이상으로 더욱 높아졌다.

이로 인해 물건 값은 더욱 오르게 되고 노동자의 봉급인상 요구도 커지게 된다.

이미 노동계는 이 문제로 투쟁의 의지를 다지고 있어 올해 노사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장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정책당국자는 시장 위에 군림하는 사고에서 시장을 존중하는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경제정책의 시야를 넓혀,단기적 성과달성이라는 조급증에서 벗어나,장기적으로 점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선진노사관계를 정립하며 대외개방에 노력을 경주해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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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황에 맞는 경제정책이 바람직하다

해설

보통의 경우 약간의 물가상승은 경제를 활력있게 만든다.

그러나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경기가 침체되기도 한다.

그런 현상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고 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지금의 세계 경제가 바로 그런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다.

유가가 지난해에 비해 2배 이상 뛰었으며 농산물 가격도 급등했다.

그러나 가격이 오른 만큼 고용이 늘어나거나 생산량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세계 경제는 이러한 현상을 이미 몇 차례 경험했다.

국내에서도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주 발표한 올해 하반기 전망에서 하반기 성장목표를 3%로 줄여 잡았다.

하반기 경기가 그만큼 침체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유가급등을 비롯 외부 요인으로 초래된 만큼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나가느냐에 있다.

정부는 인플레이션보다 경기침체를 우려해 성장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나라가 성장하려면 수출이 필요하고 수출을 잘하려면 환율이 수출에 유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화가치가 낮아야 하며 이를 위해 고환율 정책, 예를 들어 달러당 900원이던 환율이 달러당 1000원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기에 맞서 환율을 올려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시장의 인식과 동떨어져 오히려 경기의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홍기택 교수는 이번 다산칼럼에서 이 같은 상황 인식을 언급하면서 물가상승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환율상승을 도모하는 것은 수출증대 효과보다는 물가 상승을 가속화시키고 내수를 침체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원화 가격이 낮아진 만큼 우리가 해외에서 사오는 석유 등의 가격이 더 올라가고 이는 경기 회복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국내물가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국제 시장에서 똑같이 10달러짜리를 사오더라도 원화 환율이 900원일 때는 9000원에 불과하지만 1000원이 되면 1만원으로 수입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홍 교수가 지적하듯이 현재의 시장은 국재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대외적인 요인에 의해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따라서 정부는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고 시장과 인식을 같이하기 위해 수출 증대와 같은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규제 완화 등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성과가 나오는 정책에 보다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홍 교수는 밝히고 있다.

오춘호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