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배기'와 그 아류들

서울 지하철 7호선 역 가운데 '장승배기역'이 있다.

동작구에 속한 이 일대는 조선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 세자의 묘소에 참배하러 가는 길에 잠시 쉬어가던 곳이다.

당시 이곳 숲이 우거지고 음산해 장승을 세웠는데,이는 왕명으로 세워진 유일한 장승으로 전국 팔도 장승의 우두머리였으며 '장승배기'라는 지명의 근원이 됐다고 한다.

장승배기는 '장승이 박혀 있는 곳'이라는 뜻의 말이다.

이 말이 사람에 따라 장승백이,장승박이,장승빼기,장승백 등 통일성 없이 여러 가지로 쓰이기도 한다.

본래 '무엇이 박혀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은 '-박이'이다.

점박이,차돌박이,금니박이,붙박이,오이소박이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이들은 각각 점·차돌·금니가 '박혀 있음',한 곳에 일정하게 '박혀 있음',오이에 소를 '박음'이란 뜻이 살아 있으므로 그 형태를 유지해 '-박이'를 쓰는 것이다.

자꾸 헷갈리면 '붙박이장'을 기억해 두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장승이 박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은 '장승박이'이다.

'장승배기'는 맞춤법 정신으로는 '장승박이'로 써야 할 말이지만 역사적으로 '-배기'가 입에 익숙해 있고 이미 지명으로 정착한 단어란 점이 고려된 표기이다.

'-박이'는 그나마 의미적으로 구분해 낼 수 있는데,비슷한 형태인 '-배기'와 '-빼기'는 더 헷갈린다.

이들을 가르는 기준은 오로지 '소리'이다.

다시 말해 '-배기'로 소리 나면 '-배기'로 적고(세 살배기,나이배기,공짜배기,진짜배기,육자배기,혀짤배기,주정배기,귀퉁배기 등) '-빼기'로 발음되는 것은 '대갈빼기,곱빼기/맛빼기,언덕빼기,억척빼기,고들빼기,그루빼기'처럼 소리대로 적으면 된다.

'-박이'와 '-배기/-빼기' 이외에 '-백이'나 '-바기' 등은 쓰지 않는다.

그럼 이제 '뚝배기'가 남게 된다.

이 말은 지금까지의 기준에 따르면 '뚝빼기'로 적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경우는 '-빼기'로 발음되긴 하지만 앞의 예들처럼 '어떤 어근에 접미사 -배기 또는 -빼기가 붙어 이뤄진 말'이 아니므로 '뚝배기'는 '배기'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