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한국경제신문 5월20일자 A39면

과학은 곧 이성이며,객관적 실재에 부합한다는 것은 근대 이후 인류의 굳건한 신뢰다.

그래서 우주에 대한 거대 지식에서부터 유전자와 나노에 이르는 미세 지식에 이르기까지 일단 '과학'이라는 이름이 붙기만 하면 곧바로 객관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과학은 종종 집단 히스테리의 좋은 시발점일 뿐이며 인간의 가장 허약한 감성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와 곧바로 미신화하는 속류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다가오는 몇날 며칠에 혜성이 지구를 스쳐가면서 인류의 종말이 닥칠 것'이라는 종말론적 교의들은 그 대부분이 과학이 만들어낸 용어를 적당히 짜깁기한 구성물에 불과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처럼 근대 과학의 용어를 얼기설기 엮어넣은 사이비 종교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루종일 알코올에 손을 씻어대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의 과학 중독일 뿐이다.

과학의 객관성을 둘러싼 논란은 소위 '소칼의 사기극'을 정점으로 1990년대 미국에서 치열한 학문 간 대립을 낳기도 했다.

당시 미국의 과학사회학계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논쟁은 '과학적 진리가 객관적인 것인가' 아니면 '과학자 그룹의 타협이나 합의에 불과한 것'인가를 둘러싸고 자연과학자들과 철학자들 간에 벌어졌던 논전을 말한다.

과학 역시 상대적 지식일 뿐이라는 주장은 토머스 쿤 이후 한동안 철학계를 풍미했던 논리였지만 유럽의 좌파 그룹들이 과학적 합리성과 근대성 자체를 전면 부정하면서 더욱 격화되었다.

수리물리학자였던 뉴욕대의 소칼 교수가 인문학자들의 무식을 폭로하는 소위 위조 논문을 쓰면서 논쟁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과학자들이 대중의 찬사에 메말라 과장된 언어를 남발한 것인지,대중이 집단광기에 매몰되면서 과학을 사이비 종교로 변질시켜간 것인지는 불명이지만 과학적 지식이 속류화하면서 심각한 오류와 독성을 풀어낸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윈의 진화론과 멘델의 유전학이 대중에게 오독(誤讀)되면서 결과적으로 심각한 우생학적 편견을 낳고 그것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던 것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일이었다.

파스퇴르가 박테리아를 규명하면서 곧바로 전염병 보균자나 가난하고 불결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격리가 정당화되었던 것도 과학에 대한 맹신이 정치적 편견과 결합하면서 초래된 참담한 결과였다.

심각한 결과는 역시 나치즘이었다.

온갖 사이비 과학들이 나치즘의 대중조작에 총동원되었다.

깨끗한 아리안족과 더러운 유대인이라는 구분법은 가장 참혹한 오류로 남게 되었다.

유전자학과 바이러스와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과 각종 과학적,역학적,동물학적 지식들이 한국의 청계천에서 대중들의 증오와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참여정부의 관변 학자들이 그동안 한껏 부채질해왔던 광우병 괴담이 TV등 좌파 매체를 타고 대중화하면서 급기야 집단 히스테리로 확산,전염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정부의 용역을 받아 연구를 수행했던 학자들은 자기 발등을 찍었다고 하겠지만 이미 학자의 손을 떠나 대중의 히스테리로 증폭되어버린 것을 어찌하겠는가.

이것이 세계에서도 과학 예산을 가장 많이 쓴다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여기에 '촛불 시위'라는 대중 동원의 정치미학적 소도구까지 완벽하게 준비된 터다.

촛불은 스스로를 정화하는 의식이요,상황을 선과 악의 대립으로 보는 것이며,순수와 타락을 가르면서 그 자체로 순교적 황홀감에 도취하게 만드는 종교적 소도구다.

청계천에 우리의 선한 이웃들과 여중고생이 그리 많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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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정치적 편견에 의해 악용되면 안돼

해설

침대는 과학이라는 어느 침대회사의 광고 문구가 있다.

자기회사의 침대는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편안하게 잠잘 수 있도록 설계되고 제작됐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은 의도일 것이다.

과학은 이처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어서 반론의 여지가 없는 학문 내지 이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이 실제로는 사람들의 편견에 의해 잘못 활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학 지식이 없는 사람이 잘못 이용하거나 과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을 남용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과학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남용할 경우 과학은 어려워지고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정규재 논설위원이 칼럼에서 지적한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뉴욕대 교수)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장했던 프랑스 과학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과학이론을 난해하게 설명하고 악용하고 있다며 처음으로 문제 삼았던 인물이다.

소칼은 1996년 5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학자들이 쓴 글을 그럴듯하게 짜깁기해서 엉터리 논문으로 만들어 '소셜 텍스트'라는 문화연구 계열의 학술지에 투고한 다음 이 사실을 '링구아 프랑카'라는 다른 잡지에 폭로했다.

그는 '소셜 텍스트'에서 라캉,들뢰즈,크리스테바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이 중력에 대한 최신 물리학 이론의 핵심을 정확하게 집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런 다음 '링구아 프랑카'에서 '소셜 텍스트'에 실린 논문의 인용문들이 왜 터무니없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나갔다.

'소칼의 이러한 속임수에 의한 폭로'는 즉각 과학계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것이 뒷날 '과학전쟁'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과학전쟁은 과학지식의 성격과 과학연구의 본질을 놓고 자연과학자,사회과학자,인문학자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면서 벌인 일종의 국제적 학술토론이다.

'전쟁'이란 극단적 표현이 사용된 이유는 이 논쟁이 자연과학자 대 사회과학자 및 인문학자들 사이의 대결구도로 진행되었고 상대방 연구분야에 대한 비난과 인신공격이 난무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노턴 와이즈라는 과학자는 미국 프린스턴 고등학술원 교수직에 응모했다가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로부터 '반과학적' 학자라는 비난을 받아 탈락하기도 했다.

소칼은 "프랑스 현대철학은 언어의 유희다.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을 거부하고 자연과학 개념과 용어를 멋대로 남용하면서 모호한 주장으로 세계 지성계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과학은 상대적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며 "자신의 상대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철학의 주제 개념 등을 제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과학의 단선적인 객관성을 잣대 삼아 인문학을 바라보려는 시각이야말로 또 다른 권위주의"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쨌든 소칼의 지적 사기 논쟁을 계기로 우리가 절대적인 가치를 가졌다고 보는 과학도 학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자칫 정치적 편견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과학이라는 이름만 빌리면 온갖 공포도 조장할 수 있고 돈도 타 낼 수 있다는 것도 문제의 하나다.

황우석 사건도 그중 하나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