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질서가 유지될 때 인권도 보호된다"

반 "공권력의 횡포이며 인권침해 행위"

경찰이 불심검문 때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는 시민들에 대해 벌금,구류,과료 등 형사처벌을 할 수 있도록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 쪽에서는 "불심검문의 강제 요건이 없어 수배자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범죄 예방 차원에서 이러한 불심검문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일상생활에 다소 불편을 준다고 해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불심검문 불응자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불심검문 강화는 인권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며 경찰의 법 개정 움직임에 반발하고 있다.

더욱이 경찰이 4년 전에도 비슷한 법 개정을 추진했다가 '위헌성 논란과 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비판에 따라 이를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를 추진하는 것은 공권력 횡포라고 지적한다.

불심검문 불응자 처벌 방침을 놓고 치안 강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찬성론과 인권 침해라는 반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개인의 권리와 공공의 질서 유지라는 사회적 이익 가운데 어느 쪽을 우선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냐는 점이다.

⊙ 찬성 측, "국민 생명과 안전 위해 불심검문 강화해야"

불심검문 불응자 처벌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현행법상 경찰은 불심검문을 위해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지만 이에 불응할 경우 제재할 방법이 없어 법률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군사정권 때 불심검문을 악용한 사례가 많아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런 권한도 없으면 범죄 예방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불심검문의 강제 요건이 없기 때문에 수배자 여부를 확인하려고 해도 행인들이 대부분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더욱이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피의자에 의해 피살되는 등 공권력이 수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무력화되면 그 폐해는 결국 개인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질서가 유지될 때 인권도 보호될 수 있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독일,미국도 불심검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때문에 우리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불심검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 반대 측, "불심검문 불응 처벌은 공권력 횡포이며 인권유린 행위"

이에 대해 반대하는 쪽에서는 범죄자 검거율을 높이려고 시민들을 잠재적 범인 취급하려는 것은 인권을 도외시한 경찰의 편의만을 위한 구시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고 반발한다.

더욱이 현행법마저 '상당한 의심'이라는 모호한 규정으로 자의적인 불심검문이 가능하도록 규정돼 있는 마당에 불응에 따른 처벌 규정까지 만들겠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히 불심검문에 불응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한다면 이는 공권력의 횡포이며,우리의 헌법 이념을 정면으로 유린하는 인권 침해 행위라고 꼬집는다.

말하자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면서 공공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은 경찰국가,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엄정한 법 집행과 법 질서 확립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 경찰이 백골단 부활 같은 코드 맞추기식 행정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한다.

⊙ 경찰은 불심검문 강화보다 사회안녕 지키는 일에 더 신경써야

불심검문 대상자가 신원확인 요구에 불응해도 현행법상 강제할 도리가 없는 경찰의 어려움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신분증 확인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시민을 처벌한다는 것은 '형벌권 과잉'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며, 경찰이 국민 위에 군림하겠다는 초헌법적인 발상에 다름아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시민까지 잠재적 범죄자로 의심하고 마구잡이로 불심검문을 해서야 어디 될 법한 일인가.

때문에 경찰이 불심검문 불응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신설하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더욱이 경찰은 몇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법 개정을 추진하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중단한 바 있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또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 등을 위해 직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취지로 삼고 있음은 물론이다.

경찰은 불심검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민생치안 능력이 떨어졌다고 강변해서는 결코 안 되며, 시민 불안을 없애고 사회 안녕을 지키는 일에 보다 신경을 쏟지 않으면 안 된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경찰관직무집행법 = 경찰관이 법령 집행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법률로, 1981년 4월에 공포되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사회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제정됐으며 대인적 즉시 강제, 대가택 즉시 강제, 사실확인 및 유치장, 경찰장비와 장구 사용, 무기 사용 등을 담고 있다.

경찰권 발동의 한계 및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는 등 경찰권으로 인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침해를 방지하는 쪽으로 개정이 이뤄져 왔다.

▶불심검문(不審檢問) = 경찰관이 수상한 거동, 기타 주위의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죄를 범하였거나 또는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또는 이미 행하여졌거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에 대하여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를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경찰관직무집행법 3조에 규정돼 있다.

주로 통행인에 대하여 우발적으로 행하여지며 범인 체포 또는 범죄 예방,혹은 수사 단서가 되는 정보 수집,증인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 대인적 강제 작용이다.

신원 확인에는 대상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불심검문에 불응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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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4월25일자 보도

경찰청이 불심검문에서 신분증 제시를 하지 않는 시민들을 형사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이런 추진 계획이 담긴 책자를 1주일 전 만들어 일선 경찰에 배포했으면서도 '인쇄가 덜 됐다'는 이유를 대며 언론의 열람 요청을 거부해 위헌 소지가 큰 법안을 비밀리에 추진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25일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주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 방향을 담은 '2008~2009 치안정책 실행 계획' 책자 3000부를 만들어 최근 일선 경찰서,지구대,파출소에 배포했다.

책자에 실린 방침에 따르면 경찰청은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관으로부터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은 시민이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과료의 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은 또 현재 '죄를 범했거나 범하려고 한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나 '이미 행해졌거나 행해지려고 하는 범죄에 대해 그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자'로 한정돼 있는 불심검문 대상자의 범위를 '위험 야기자' '특정 시설 출입·체류자'로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런 경찰의 계획대로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은 무고한 시민도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