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미친 소 수입하나" vs "과장하지 말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지만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굴욕적 협상이었다'는 주장과 '국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반박이 맞부딪치면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농민·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야당 등 정치권도 연일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은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과연 어떤 이익과 손해를 안겨다 주었을까.

국익과 소비자 편익, 축산농가에 미치는 영향 등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 소비자 편익 향상되나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면 수입쇠고기뿐 아니라 한우고기 가격도 떨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올초 발표한 '축산물 수급동향과 전망'에 따르면 갈비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경우 올해 전체 쇠고기 공급량은 지난해보다 21.6% 증가한 49만4000t에 이르게 된다.

공급 증가에 따라 한우(600㎏) 수소의 산지가격은 지난해 474만원에서 올해 424만원으로 10%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쇠고기 소비도 늘어 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지난해 7.5㎏에서 올해 9.0㎏으로 19.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쇠고기와 대체관계에 있는 돼지고기도 산지가격이 9%가량 떨어질 것으로 추산됐다.

결국 미국산 쇠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소비자라 하더라도 한우나 국산 돼지고기를 지금보다 싼 값에 사먹을 수 있는 혜택을 보게 되는 셈이다.

가격 측면에서만 보면 소비자 편익은 분명 증진되는 셈이다.

그러나 소비자 편익을 가격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안전성도 따져봐야 한다.

가격이 아무리 내려간다 하더라도 인간광우병 위험이 높아진다면 소비자에게 유리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반대론자와 정부 간에 입장이 엇갈린다.

어떤 주장이 맞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안전하다'는 정부 측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엔 찜찜한 구석이 많다.

일단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면 광우병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세계적으로 광우병에 걸린 소는 대부분 30개월령 이상의 소였기 때문에 그렇다.

'뼈 붙은 쇠고기' 수입을 허용한 것도 안전도를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다.

특정위험물질(SRM)이 뼈에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해도 우리 정부가 즉각 수입·검역 중단을 할 수 없다는 조항도 우려되는 점이다.

종전에는 미국의 검역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우리 정부가 자체 판단에 따라 수입을 전면 금지할 수 있었지만 이번 협상에 따라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박탈당하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시킬 수 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미국이 OIE로부터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받았다는 것은 광우병이 통제된다는 의미"라며 " 실제로, 그리고 과학적으로도 99.9%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SRM만 완벽히 제거하면 광우병 위험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이 SRM을 제대로 제거할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SRM만 제거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쇠고기가 판매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FTA에 도움 되나

이번 쇠고기 협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다수인 미 의회는 쇠고기 시장이 개방되지 않으면 한·미 FTA를 비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시로 밝혀왔다.

펠로시 하원의장 등 의회 지도부들은 한·미 FTA가 타결된 직후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FTA 이행법률안 제출과 통과는 없다"고 못박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협상은 미국 의회가 FTA 비준을 반대할 명분을 없애버리는 의미가 있다고 우리 정부 측은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에 비준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달라고 더욱 강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됐다"면서 "미 의회도 본격적으로 한·미 FTA 비준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백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FTA 팀장도 "FTA 비준을 위한 미국 측 요구를 하나 들어준 셈이어서 미국 의회의 비준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축산농가 대책은?

쇠고기 협상 타결로 축산농가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는 지난 22일 축산농가 보호 대책을 발표했다.

소비자들이 한우고기와 수입 쇠고기를 제대로 구별할 수 있도록 식육 음식점을 상대로 원산지 표시 여부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고급 한우를 생산하는 농가에 마리당 10만~2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고, 모든 한우에 대해 인증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축산농가 보호대책은 일회성 보조금 지급이 아니라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한우고기는 수입 쇠고기와 차별화된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고급·친환경 이미지를 계속 살리면서 수입 쇠고기와 차별화된 고객층을 확보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축산업계의 판단이다.

이를 위해 수입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하지 않도록 하는 원산지 표시제와 이력추적제 등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축사개량 등 현대화, 규모의 대형화, 자체 브랜드 개발과 엄격한 품질관리, 투명한 유통 구조 등도 필수과제로 꼽히고 있다.

김인식 한국경제신문 기자 sskis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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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쇠고기 협상의 역사

LA갈비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는 2003년 12월 광우병 발병으로 수입이 중단되기 전까지 한 해 전체 수입 쇠고기의 75%(8억4700만달러)를 차지하며 한국 시장에서 절대적 지위를 누렸다.

수입 중단 1년여 만인 2005년 2월부터 재수입을 위한 양국 검역 전문가 회의가 시작돼 2006년 1월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라는 쇠고기 수입 조건이 타결됐다.

우리 검역 당국은 미국 37개 수출작업장에 대한 현장점검을 거쳐 2006년 9월8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최종 승인했다.

그러나 이때 합의된 '뼈 없는'이라는 애매한 조건이 결국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이른바 '뼛조각 논란'의 불씨가 됐다.

2006년 10월30일 미국산 쇠고기 9t이 2년10개월여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으나, X-레이 이물질 조사 과정에서 손톱보다 작은 뼛조각이 발견됨에 따라 검역 당국은 수입 물량을 모두 반송 또는 폐기했다.

뼛조각은 이후 2006년 12월까지 들어온 2차, 3차 수입분에서도 발견됐고 모두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미국 측의 항의로 이듬해인 2007년 2~3월 한·미 양국은 다시 협상을 벌였고, 결국 뼛조각이 발견된 박스만 받지 않는 '부분 반송·폐기' 방식 도입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실질적 교역을 보장했다.

같은해 4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고 5월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위험 통제국' 지위를 얻자 양국의 쇠고기 갈등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OIE 권고지침을 내세워 "모든 연령과 부위 제한 없이 쇠고기를 수입하라"고 요구해왔고, 쇠고기 전면 개방을 FTA 비준의 전제 조건으로 거론하며 우리 측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권오규 당시 경제 부총리는 작년 5월28일 수입위생조건 개정 절차 착수를 공식 선언했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8단계 수입위험 평가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나 4월 이후 수입량이 빠르게 늘던 미국산 쇠고기에서 현행 조건상 수입 금지 품목인 등뼈와 갈비통뼈 등이 10월까지 10여차례나 발견됨에 따라 결국 검역 당국은 10월 5일 다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 중지와 미국 측의 수출선적 중단을 선언했다.

양국은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 금수 상태에서 수입조건 개정을 위해 10월11~12일 검역 전문가 회의를 진행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헤어졌다.

이후 양국의 대선 및 총선 등 정치 일정에 밀려 늦춰지던 2차 협상이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지난 11일부터 과천 청사 농림수산식품부 대회의실에서 시작됐고, 18일 마침내 협상 타결 발표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