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화

전남대 교수·경제학

☞한국경제신문 4월15일자 A39면

지난주에 끝난 총선 이후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당선을 자축하면서 18대 국회를 차분히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률안에 대한 제출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국민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법률의 제정을 위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법안 제출에 고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국회의원들의 법안제출 건수가 의정활동 평가의 주요 지표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정당은 현역 국회의원이 국회의 각종 회의에 얼마나 출석했는지,그리고 몇 건의 법률을 제출했는지를 점수화해 공천 여부에 반영하고 있다.

시민단체도 이와 유사한 지표를 가지고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에 따르면 부정한 정치자금을 받지 않고,국민들의 민원을 잘 해결해주며 많은 법률안을 제출하면 '좋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국회의원이 제출한 법률안이라고 해서 좋은 법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법률이란 국민 생활수준을 개선하는 것을 말한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국민들의 조세부담을 줄일 수 있고,누구나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국민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과 일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법 제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좋은 법률이 된다.

이러한 원칙에 벗어난 나쁜 법률의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17대 국회에서 제정 또는 개정된 성매매금지법,비정규직보호법,주택 분양원가 공개를 규정한 법조항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법률들은 좋은 입법 의도에도 불구하고 원래 의도했던 결과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국민들로 하여금 법 적용을 회피하도록 하거나 비생산적 로비를 부추겨 국민들을 부도덕하게 만들었다.

나쁜 법률들은 잦은 법 개정을 가져와 법적 안정성을 해치고 국민생활 개선을 더디게 한다.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보더라도 2000년 이후 현행 법 조항 중에서 70%가 넘게 개정됐다.

변덕스러운 법률의 재개정으로 안정적인 기업 활동을 어렵게 만들고,국민 생활 수준의 개선도 더뎌진 것이 현실이다.

좋은 법률이 제정되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국회의원들에게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수 세대에 걸쳐 자유무역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개선할 수 있다고 논증해 왔지만 아직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쉽게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잘못된 지식이나 정보 부족 때문에 나쁜 법률이 제정되는 측면도 있다.

한반도 대운하를 둘러싼 논쟁을 보면 국가적 사업의 평가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익과 비용의 추산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누구도 이들 사업이 환경이나 물류,관광 등에 어떤 영향을 줄지 잘 알 수 없고,이를 평가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완벽하게 제공될 수 없다.

선거를 여러 번 치르면서 점차 '좋은' 국회의원들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나쁜' 법 제정을 막기에는 부족하며,법 제정의 일반적인 원칙이 충실히 지켜져야 가능하다.

특히 특정 집단 및 지역을 보호하거나 규제하는 법은 피해야 한다.

그리고 법안을 제출할 때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를 첨부하도록 하는 것도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줄여 나쁜 법 제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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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자 정치인 관료 국민 전체를 위한 정책펴야

해설

정부가 발의한 모든 법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시행된다.

정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법은 국회의원들이 모여 직접 만들어 전체 동의를 얻는다.

전자를 정부입법,후자를 의원입법이라고 한다.

정부입법이든 의원입법이든 모두 국회의원의 손을 거쳐 만들어 진다.

좋은 법이냐 나쁜 법이냐는 사실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 판단 기준 역시 자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치인에 대한 투표 정보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고,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 지역주민의 관심사에 몰두하며, 정부 관료들은 국가보다 자기부처 덩치 키우기에 더 관심이 있어, 따지고 보면 국회에서 제정되는 모든 법이 항상 국민을 위한 법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학자들은 공공선택이론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정기화 교수는 다산칼럼에서 일부 국민을 위한 법은 잘못된 법이며 이를 제정하는 국회의원도 나쁜 국회의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회는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국가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 약자를 위한 법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역시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는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공공선택이론은 투표자 정치인 관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항상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선 투표자는 국회의원을 고를 때 정보를 충분히 수집하지 않는다.

선거 정보를 확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시장의 상품 구입 정보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해 훨씬 적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된다는 것이다.

투표자들의 이러한 정치적 무지로 인해 국회의원들은 정책을 선택할 때 효과가 눈에 쉽게 드러나지 않거나 장기에 걸쳐 나타나는 안보다 단기적이고 뚜렷하게 나타나는 안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 역시 표를 얻기 위해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는 특정집단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정책이 다수에게 작은 손실을 주고 소수에게 큰 혜택을 줄 경우 손실을 입은 다수는 강하게 반대하지 않은 반면, 혜택을 받는 소수 집단은 적극 지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후보자는 소수 집단에 큰 혜택을 주는 갖가지 정책을 모두 찬성하는 경향이 생긴다.

정부 관료는 비영리기관이고 독점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국가를 위한 정책을 편다고 보기 힘들다.

관료들은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확대에 관심이 있다.

예산을 확보하려고 경쟁하고 자신들의 권한과 권위를 증대시키려고 노력한다.

정책도 눈에 잘 띄고 쉽게 계량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다수결투표제는 이러한 불가피한 단점이 있다.

국민 개개인의 선진화된 시민의식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